'배드파더스' 2심 유죄…구본창 "양육비 미지급, 아동학대 아니라는 판결"
입력 2021.12.25 06:10
수정 2021.12.25 15:47
1심 '무죄' 뒤집고 2심 '유죄'…"사적제재 제한 없이 허용시 인격권 침해"
구본창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 알려도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처벌된다 의미"
여가부 채무자 신상공개, 얼굴사진 빠져 실효성 부족…절차도 복잡해 2년 넘게 걸려
법조계 의견 다양…"아동 생존권 외면한 유죄 판결 유감" "공익목적도 개인이 직접 응징은 불법"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 대표 구본창 씨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수원고법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는 23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는 지난해 1월 1심에서는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선 이것이 뒤집힌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양육비 지급과 관련한 문제는 공적 관심 사안인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개인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적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구씨는 2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이번 유죄판결이 사회적으로 피해자들의 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어 우려스러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구씨는 "선고유예 판결은 일정 기간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처벌이 실제로 시행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사회적으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려도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처벌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양육비·미투 운동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 생존권을 위협하는 아동학대인데, 2심 재판부는 아동학대까지는 아니라고 보고 사이트 운영을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했다"며 "그동안 양육비 지급을 촉구할 수 있는 법이 마땅히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했어야 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구씨는 여성가족부 채무자 신상공개도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9일 양육비 채무자 2명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이름, 생년월일, 직업,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채무금액 등 6개 항목만 포함되고 얼굴 사진은 빠졌다.
구씨는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에 얼굴 사진이 없으면 채무자가 특정되지 않고, 도로명 주소로 표시된 건물에도 회사 수가 많으면 누군지 추측이 안 된다"며 "신상공개의 목적은 채무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기 위해서인데, 채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부담을 느끼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채무자 신상공개까지 절차와 복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상공개 신청을 위해서는 채무자가 법원으로부터 감치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양육비 이행 명령소송, 감치 신청을 거치면 통상 2년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구씨는 "양육자들은 아이도 키우고 생계를 위해 돈도 벌어야 하는데 두 가지 소송도 해야 한다"며 "설사 감치 판결을 받아도 지금의 여가부 신상공개 제도가 양육비 지급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되면서 양육비를 주기 시작한 채무자들이 사이트가 폐쇄되고 나서는 다시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는 전화가 쏟아진다"며 "채무자 신상공개 제도가 생겨도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얼굴 공개 등 여가부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다만 구씨는 다시 배드파더스 활동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 지난 2018년 7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개설했다. 배드파더스가 이른바 '나쁜 부모들' 신상을 공개하면서 해결한 양육비 사건만 930여건에 이른다. 무엇보다 배드파더스 취지가 여론의 공감을 얻으면서 지난해 12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 형사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양육비 이행법)이 통과됐다. 지난 7월 법이 시행되면서 구씨는 10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폐쇄했다.
통계를 보면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받는 사람은 비율은 10명 중 3명도 안 된다. 여성가족부에서 2018년 실시한 한부모가정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다는 비율도 73%에 달했다. 여가부의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도움을 요청한 건수도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2만3184건에 달했지만, 이 가운데 30%인 6680건만 양육비가 지원됐다.
법조계에서는 구씨의 2심 판결 이후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양육비의 의미를 외면한 유죄 판결에 유감"이라며 "재판부의 지적대로 인터넷상에 사진, 거주지 등을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실에서 배드파더스로 인해 아동의 생존에 필수적인 양육비를 지급받게 된 가정이 많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공익적 목적이라도 사적제재 행위는 용이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김대근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익적 목적으로 신상공개를 하고 실제 공익적 효과를 냈더라도 개인이 직접 상대를 응징하는 행위는 불법이고,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입법적 개선, 제도적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