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69)] 뮤지컬 배우 ‘유신’을 뛰게 하는 것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12.18 11:16
수정 2021.12.18 11:16

2022년 2월 2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뮤지컬 배우 유신은 2007년, 23살의 어린 나이에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뮤지컬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데뷔작인 ‘라이온킹’에서 단번에 조연인 ‘쉔지’ 역할을 꿰찼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몸을 담고 있는 터라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그를 버티게 하는 건 동료들이었다.


함께 무대를 하는 사람들에겐 설명하기 힘든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함께 땀을 흘리고, 몸을 부딪혀가며 하나의 작품을 올리면서 쌓은 일종의 ‘전우애’ 같은. 특히 유신은 동료들과의 호흡, 애정이 남다르다. 지난달 16일부터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레베카’에서 역시 유신은 ‘루더포드 부인’ 역의 개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하는 배우들과의 ‘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첫 데뷔를 일본뮤지컬극단 ‘사계’에서 했다고요. 타국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뮤지컬과가 아닌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기 때문에 연기적으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노래나 춤은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노래 레슨을 받아야했어요. 그런데 보컬 선생님께서 ‘사계’라는 곳을 추천해 주셨고 그렇게 처음 본 뮤지컬 오디션이었던 일본극단 사계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어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보컬 선생님 덕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네요.


맞아요. 처음으로 노래를 가르쳐주신 김지현 선생님과 이상호 선생님인데요, 그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극단 사계를 추천해주신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절 응원해주시고, 믿어주시고, 못난 제자인데도 늘 최고라고 말씀해주시거든요. 선생님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웃음).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친 또 다른 한 분이 계시는데, 김문정 음악 감독님이세요. 한국에 와서 1년을 다시 준비하면서 좌절도 많았고 적응하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저에게 처음으로 오디션을 통해 기회를 주셨어요. 처음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뮤지컬은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들을 보고 정말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감독님은 제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는 큰 원동력이에요. 감독님께는 부끄럼이 많아 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유신이라는 배우를 믿고 뽑아주신 만큼 감독님과 하는 무대를 최고로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데뷔작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가 되더라고요. 유신 배우는 더더욱 데뷔작이 소중했을 것 같아요.


정말 소중하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죠. ‘라이온킹’이었는데요.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조연인 하이에나 리더 ‘쉔지’ 역을 맡았어요. 하이에나 다리가 너무 무거운 탓에 손목에 물이 찼어요. 아침마다 병원에 가서 손목 치료를 받고, 공연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팠지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타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설레고 배울 수 있다는 기쁨에 행복했지만, 그곳은 프로들로 가득한 최상의 극단이었고 그 자리를 지켜 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매년 발레, 재즈, 노래, 연기를 보는 실력 평가가 두 번씩 치러졌고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또 모든 배역은 오디션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불합격하게 되면 역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요. 그래서 정말 무대에 서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면서 가족들도 너무 보고 싶었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매일을 눈물로 보낸 것 같네요.


-그래서 국내로 활동 무대를 옮긴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웃음). 7~8년 정도 사계에서 활동했는데 너무 운이 좋게도 많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요. 약 8개 작품 이상의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기회보다 이전 참여했던 역할로 작품에서 필요할 때마다 투입되는 식으로 진행 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던 터라 ‘이제 한국으로 가야될 때가 왔구나’싶더라고요. 또 한국 창작 작품을 정말 하고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한국어로 공연하고 싶었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테고요.


15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들도 너무 많았지만, 힘든 순간도 있었죠. 위기도 있었고요. 25살쯤이었나, 아픔 몸이지만 어렸기에 무조건 열심히 하고 있었던 때였어요. 분명 전 극단으로 출근하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더라고요. 수술을 두 번이나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들었는데,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매일을 절 찾아와 위로하는 사람들을 다 제치고 혼자 울며 지냈던 것 같아요.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엄마가 바로 일본으로 오셔서 수술을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긴 수술 시간에 엄마 역시 눈물로 절 기다리셨어요. 다행히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서 하나님과 의사선생님 그리고 엄마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위기를 겪었던 만큼 더 단단해지던가요?


그럼요! 회복 기간 동안 전 저를 위해 수술비를 모아 도와준 극단 사계의 한국 배우들과 가족들,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은 극단 관계자들을 보면서 ‘절대 포기하면 안 되겠다’ ‘날 이렇게까지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데 넘어지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끝까지 이겨내고 싶었어요.


사실 지금도 노래할 때마다 아프고 힘들지만 그때 절 도와준 배우들과 노래하고 싶었던 간절했던 마음들을 잊지 않고 무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어떤 일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어요(웃음).


-앞서 말씀하신 대로 김문정 감독과 인연이 깊어요. ‘모래시계’ ‘엘리자벳’ ‘맨 오브 라만차’ ‘마리 앙투아네트’는 물론 현재 공연 중인 ‘레베카’도 김문정 감독과 함께 하고 있죠.


네, 전작이 ‘마리 앙투아네트’였는데 당시 ‘라모트’ 역을 하면서 많이 부족했지만 좋게 봐주신 연출님과 감독님들 그리고 EMK뮤지컬 컴퍼니 관계자 분들께서 이렇게 ‘레베카’까지 기회를 주셔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루더포드 부인’ 역은 그동안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이 거쳐 간 역할이기도 하죠. 부담감은 없었나요?


‘루더포드 부인’ 역할이 저에게 주어졌을 때 사실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루더포드 부인’은 억척스럽고 당당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50대 아줌마 역할인데 자꾸 예쁜 척 하는 제가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내려놓지 못하지?’라고 스스로를 탓하고, 힘들었습니다. 현재 ‘반호퍼 부인’ 역을 하고 계신 김지선 배우가 이전에 하셨던 역할이라 연습 때부터 늘 긴장되고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도 컸고요.


생각보다 쉽진 않더라고요. 고민해왔던 것이 잘 표현이 되지 않아서 늘 걱정되고 속상했죠. 하지만 연출님과 감독님께서 늘 절 믿고 기다려주며 응원해주셨고, (김)지선언니가 많이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셔서 지금은 재밌게 잘 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려고 했나요?


맨덜리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이다 보니 거기서 일하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중점을 뒀어요. 또 ‘루더포드 부인’의 성격형성 과정 등을 고민하면서 나이, 성장배경, 가족관계, 상하관계 등의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하기 위해 고민했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맨덜리 저택의 주인 ‘막심’과의 관계를 가장 고민했었습니다. ‘막심’이 다시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 왔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며 반기는 이유는 그 곳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했기에 각별한 사이이며, 주방을 책임지는 헤드 셰프이다 보니까 ‘막심’이 좋아하는 것도 많이 만들어주고 챙겨줬을 것 같아요.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하인인 ‘루더포드 부인’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레베카’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레베카’ 팀은 최고인 것 같아요! 배우 스태프 모든 분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응원하며 사이도 좋아서 가족같이 지내고 있어요. 같이 공연 하는 친구들이랑은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친해서 무대 위에서도 좋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 ‘레베카’에서 가장 애정하는 넘버나 장면이 있다면?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를 향한 곡, ‘나’(I)의 성장하는 과정이 담긴 곡 그리고 ‘막심’의 절절한 곡까지 정말 어느 하나 빠짐없이 다 좋아요. 공연을 실제로 하면서 또 다시 감동하고 있답니다. 정말 한 곡만 고르기 힘들 정도로요. 관객분들께서 직접 보러 오셔서 골라주셨으면 좋겠네요(웃음).


-앙상블로서 무대에 오르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요?


앙상블로써 힘든 점은 혼자가 아닌 여러 앙상블들과 합을 맞추는 것, 끝없이 나오는 코러스, 장면마다 나오는 각기 다른 캐릭터들을 소화해야 한다는 거겠죠. 때문에 목 관리와 체력적으로 잘 버틸 수 있게 운동해야 되는 점인 것 같습니다.


또한 무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매순간 순간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더 많이 긴장하고 에너지 소비가 엄청 난 것 같습니다. 역할 상관없이 앙상블을 하는 저희는 모두 특별하고, 소중하고, 빛나기에 주연과 마찬가지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고요(웃음).


-‘레베카’에서 다른 역할들 중 탐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탐나는 캐릭터는 사실 너무 많아요. 하하. ‘댄버스 부인’ ‘나’ ‘반호퍼 부인’ ‘베아트리체’ 등 다 너무 매력적인 역할들이잖아요. 전 분석하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캐릭터가 다 궁금해요. 예를 들면 ‘댄버스 부인’에 대해서는 ‘레베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왜 그렇게까지 그녀를 지키려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고 ‘나’에 대해서는 ‘막심의 어떤 면이 좋았던 걸까’ ‘맨덜리 저택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궁금증들이요. 이런 궁금증들을 분석해서 노래로, 연기로 표현하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하하. ‘레베카’ 공연을 하면서 이 모든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님들에게 정말 많이 배우고 또 한 번 저를 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15년차인데, 여전히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그런가요? 하하. 처음에는 노래하는 게 좋고, 사람들에게 날 보여 주는 것이 행복해서 시작했어요. 일본에 있었을 당시 대지진으로 인해 모든 분들께서 큰 아픔과 상실감에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요, 전 그 때 ‘맘마미아’라는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커튼콜 때 관객들이 함께 울면서 ‘위로받았다’ ‘감사하다’면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힘든 시기인데 어떻게 공연을 보러 오는 거지’라고 단순한 생각만 했어요.


사실 그들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위로 받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온 거였죠. 배우로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어요. 그때 공연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더더욱 관객분들에게 기쁨과 행복, 감동 그리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도 한 마디해주세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좋아한 만큼 더 슬퍼지고 실망감에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죠. 그래도 우리는 노래와 춤, 연기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직업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스스로를 믿고, 준비한다면 그 시간들이 절대 헛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팁을 하나 주자면, 전 오디션이 있을 때 작품의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부터 스태프진, 작품의 메시지, 넘버, 배우들의 표현 등 찾아볼 수 있는 자료는 다 찾아보고 공부하죠. 그렇게 작품을 이해하고 나면 정말 도움이 될 거예요. 또 오디션 장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우기도 하고요. 꼭 오디션을 많이 보길 추천해요.


-앞으로 활동도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활동들을 보여주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웃음). 지금까지 뮤지컬을 너무 사랑했고, 정말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이 좋았던, 또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행복했던 뮤지컬 배우,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기회만 주신다면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해 하고 싶고, 잘 이겨낸 동료 배우들과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결국 동료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배우로서도 무대 위에서 빛나고 진실 되며 열정 가득한 멋진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고요.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하고 항상 겸손한 배우,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존중하는 배우,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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