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영화 뷰] 역사 속 한 줄 문장·사진 한장이 스크린으로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12.16 13:55 수정 2021.12.17 17:11

'킹메이커' 고 전 김대종 대통령 자선에 기록된 한 줄로 시작

이준익 감독 '박열'·'동주'·'자산어보'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조명

실화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몰입을 높이기 쉽다. 실화라는 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더 드라마틱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작품이 만들어질 때 관객은 역사를 배우듯 호기심을 갖고 접근한다.


그러나 약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부각시키거나 축소하는 등의 역사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을 포장하는 미화의 가능성도 주의해야 한다. 극 영화라는 장치 안에서 시대적 배경의 고증과 해석, 그리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에 감독들은 같은 사건이라도 새로운 시각이나 재조명,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조명해 실화의 힘을 지키면서도 영화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킹메이커'의 변성현 감독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서 '선거 귀재'라고 짧게 언급된 엄창록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었다.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분)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분)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영화에서는 실명이 쓰이진 않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숨은 선거 참모 엄창록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극화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변성현 감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았다기보다 그분의 자서전을 읽다가 단 몇 줄 밖에 쓰이지 않은 남자에 호기심을 가졌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기 좋게 정보가 없고 선거의 귀재였다. 기사나 자료보다 야사로 불리는 이야기가 많더라. 이런 인물이면 장르적으로 영화적으로 상상을 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연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을 새로 조명하는 작업을 자주 한다. '박열'은 일제에 정면에 맞선 청년 박열과 그의 연인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동주'에서는 일제강점기,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송몽규에게 카메라를 가져갔다. 올해 개봉했던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그의 곁에서 함께했던 청년 창대를 조명했다.


이준익 감독은 이 같은 작업에 대해 주목받지 않았지만 뜨거움을 살았던 사람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감독은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긴 하지만 그 안에 모든 진실을 포함하고 진 않다. 사실을 근거로 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찍진 않되 위대한 가치관의 뒤에 있는 또 다른 위대한 가치관을 보여주고 싶다. 사실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이야기 창작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강형철 감독의 '스윙 키즈'는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댄스단 탄생기를 그린 작품으로 한국전쟁 당시 종군 기자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복면을 쓴 채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포로들을 촬영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실화에 상상력이 더해질 때 서사가 강한 드라마가 된다. 대표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다른 시각이나 신념을 가진 인물 혹은 사건을 통해 그 시대와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영화와 실화가 가진 힘은 조금 더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 하지만 상상력이 가미되더라도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편향적인 시각으로 그려내는 건 지향해야 한다. 잘 알려진 인물은 이미 지식이 있어 관객이 스스로 구분할 수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은 영화 그대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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