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확진자' 신상털이…화풀이 대상 필요할 뿐, 방역엔 독 된다
입력 2021.12.11 01:16
수정 2021.12.11 19:23
확진자·접촉자, 신상공개 두려워 역학조사에 거짓 진술할 우려
시민 "신상공개해도 상황 달라지지 않아…확진자 숨어버릴까 걱정"
"피해줬다고 확진자 기본권 침해할 권리 없어…처벌 필요"
전문가 "미성숙한 시민의식…나도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미크론 최초 확진자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방문 후 확진됐기 때문에 오미크론 변이를 국내로 전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신상털이가 이렇게 계속되면 확진자나 접촉자들이 개인신상정보가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역학조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상털이가 역학조사 과정에서 거짓진술 등 나쁜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6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확진환자의 이동경로 등 정보공개 안내'에 따르면 확진자의 동선은 성별, 연령, 국적, 거주지, 직장명 등을 특정하지 않으며 해당 공간 내 모든 접촉자가 파악된 경우 공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 최초 확진자의 경우 몇몇 커뮤니티를 통해 확진자 부부의 사진과 실명, 자녀가 다니는 학교 이름까지 공개되고 있다.
시민들은 최초 감염자 부부에 대한 공분을 이해한다면서도, 그들에 대한 신상털이는 개인을 죽이는 방법일 뿐 코로나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확진자가 숨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근무하는 이모(28)씨는 "신상을 공개한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데 왜 신상털이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물론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안전을 위협했다는 대목과 거짓말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분을 살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비난과 분노는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코로나 초기 유행 때처럼 확진자가 숨어버리는 일이 벌어질까봐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윤모(24)씨는 "그 사람들이 오미크론 변이를 국내로 전파했다고 단정짓기 어렵고, 개인의 잘못으로 낙인찍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확산이 번지지 않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씨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도 시민들은 확진될 경우 개인에 대한 험담이 퍼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며 "개인에 대한 신상털이나 혐오는 개인을 죽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이모(32)씨는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 부부가 피해를 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은 어떤 이슈가 생기면 불타오르는 경향이 있어 신상 공개가 더 크게 번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씨는 "공공기관이 아닌 네티즌들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상당한 기본권 침해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람들이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오미크론 변이는 유입됐을 것이라고 본다. 신상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상털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신상털이가 역학조사 과정에서 거짓진술을 하는 등의 나쁜 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나와 가족, 누구나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부적절한 일을 했다고 화살을 동원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제2, 제3의 인권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만큼만 법적인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지, 온 가족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동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가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이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는데, 이것은 미성숙한 시민의식"이라며 "특히 개인정보 공개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게 될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은 회사나 가족에 폐를 끼칠까봐 두려워하는 집단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에 대한 애착이 심해지면 더 공격하게 된다"며 "이때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 투사 심리가 생겨 신상털이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그러나 이렇게 신상털이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신상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거짓 진술을 하거나 동선을 숨기는 등 나쁜 작용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반대로 누구든지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상대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이나 혐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