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칼잡이의 꿈, 윤석열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입력 2021.07.29 00:04
수정 2024.02.14 16:10

윤석열 전 검찰총장.ⓒ연합뉴스

법조계에 밝은 한 인사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칼잡이 윤석열은 정통 특수부의 칼잡이들과는 결이 달랐다는 것이다. 심재륜 전 고검장(1997년 한보사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구속했던 국민검사)을 본령으로 하는 ‘찌르되 비틀지 않고 환부만 도려내 피의자마저 인정하게 만드는’ 외과식 수사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별건 수사를 너무 많이 하고 자살자가 속출할 정도로 잔인하게 수사하고 무엇보다 뭔가 나올 때까지 무한대로 털고 또 터는 ‘먼지털이 수사’의 본좌였다고 혹평했다. 직권남용죄를 남발해 무죄 비율이 너무 높았다는 홍준표 의원이나 이상돈 전 의원의 성토가 허언만은 아닌 듯싶었다.


율사 윤석열의 장점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깡다구와 맷집을 꼽는 후배 검사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초반에는 일개 차장급으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를 입에 담았고, 검사들의 궁극적인 지향인 검찰의 수장에 오른 뒤에는 조국,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나라를 두 동강 내는 일전들을 물 먹은 소처럼 버티며 끝내 승리했다. 조국 일가가 지옥의 삶을 살며 유죄 판결을 받고 추미애 전 장관이 국민적 비난 속에 사실상 경질됐음에도, 본인은 당당히 야권 1위 대선후보로 등극했으니 2년간의 성적표로만 보면 완벽한 승리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윤석열에 대한 지지는 의외로 소소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 전 장관 등에 대한 반감과 반발 심리의 차선책으로 선호할 뿐이다. 노골적으로 자기 사람만을 챙기는 인사스타일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혼만큼이나 말이 많은 게 인사였다.


윤석열이 문재인 정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임기 말 권력게이트를 잠재운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도 해봤다. 원래 없는 것인지, 있는데 관리를 잘해 아직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윤석열이 검찰총장 임기 내내 두 전직 법무장관과 살벌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을 벌이고 여야 모두에게 으르렁거려 정치권 인사들의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했던 측면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주는 놈이나 받는 놈이나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덕분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의 철옹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호남과 40대 정규직, 여성 등 핵심지지층을 잘 지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미 상당수 국민들의 ‘욕받이 무녀’로 전락한 대통령이 임기를 몇 달 남기지도 않은 시점까지 국정수행에 필요한 최소지지율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부패스캔들이 없기 때문이고, 이는 청와대의 주장대로 정말 측근 비리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길목을 지켰던 윤석열의 공이 크다.


사실 문 대통령만큼 핵심지지층에 휘둘리고 눈치를 보는 대통령도 없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나 이라크 파병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설사 지지층에게 쌍욕을 먹더라도 밀어붙이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어쨌든 여권의 그 어떤 대선주자도 지금의 대통령 지지율을 뛰어넘지 못하니 이맘때면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던 ‘대통령과 각 세우기’ ‘탈당 요구’ ‘당청갈등’은 입방아에도 오르지 못하고, 날마다 자신들이 적통(嫡統)이라며 구애하는 악다구니만 난무하고 있다. 윤석열의 지지층은 윤석열 자체에 대한 지지보다는 문 대통령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문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선택된 측면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작금의 윤석열의 대권행보는 ‘아무 소리 말고 꽃가마 태워 청와대로 보내 달라’는 ‘반기문 시즌2’의 성격도 있겠지만 ‘황교안 시즌2’에 더 가깝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2020년 11월 2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를 단행했다. 사진은 정직 다음날, 장애견 토리와 함께 아파트를 산책하고 있는 윤 전 총장.ⓒ

요사이 윤석열이 위태롭다고 한다. 예견된 악재, ‘처가리스크’에 유권자를 파고드는 알맹이가 없다 보니 실속없이 요란스러울 뿐 지지율만 까먹고 있다. “이대로는 두 달도 못갈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수군거림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무엇보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놓고 공방전이 치열한 듯한데, 당장 들어갈 경우 이런 저런 의구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다 차치하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과 수십 차례 경선 토론회를 치러야하는데 윤석열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령 홍준표 의원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탈탈 털어 감옥 보내놓고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와있습니까?”의 콘셉트로 파상공세를 펴면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같은 매도 홍 의원에게 맞는 것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맞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아플 것이다. 부동산 운운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경제적 식견과 비전으로는 유승민 전 의원의 공격에 1도 못 견딜 것이고 “대통령이 다 알 필요는 없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거목(巨木)이나 할 수 있는 얘기다. 한마디로 국민의힘 경선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고, 이겨도 만신창이가 다 될 것이다. 정치권 최대 대목인 대선 판에서 후보도 아니면서 작은 정부 운운하며 자기 정치에 여념이 없는 이준석 대표도 영 미덥지 못하다. 막말로 이 대표 입장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윤석열이 대통령이 돼도 이것은 윤석열의 승리이지, 이준석의 승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장외 제3지대에 머문다고 해서 반드시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돈이 없다. 지난 87년 민주화 이후 제3지대를 주유하면서 대선을 완주한 대권주자는 정주영, 정몽준(거의 완주), 안철수 단 세 사람뿐이다. 모두들 본인이 최소 수천억대의 자산가였다. 적어도 총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처가도 상당한 재력을 갖췄다고 알려졌지만 와이프에게 매주 용돈 받아가며 대선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허허벌판에 있으니 연일 계속되는 캠프의 헛발질도 안타깝기만 하다. ‘이동훈 해프닝’은 그렇다쳐도 캠프가 구성됐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권주자의 동선과 일정이 엇나가고 특히나 메시지 전달이 엉망이다. 톤 조절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사석에서는 두주불사(斗酒不辭)에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라는 윤석열의 사인(私人)기질이 아직도 희석되지 못해 아무 곳에 가서 아무 얘기나 막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수많은 호위 무사들이 쉴드(shield, 방패) 쳐주는 검찰총장이 아니고, 홀로 고개 숙이고 뛰어다녀야하는 엉덩이탐정(윤석열의 별명)이라고 거듭 각인시켜야한다.


김종인계로 헐거운 캠프를 수선해 다시 출항하려는 것을 보니 당분간은 윤석열의 독자행보가 점쳐진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에 국민의힘에 입당하겠다는 것인데, 단일화 시점과 분당 시나리오 등이 앞으로 남은 대선기간 야권 진영을 도배할 듯싶다. “분열은 필패다” “정권교체를 위해 우리는 하나가 돼야한다”는 헛구호도 매일 매일 유권자들의 귀에 소음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야권의 유일한 대안재로 급부상해 지금에 이른 것이 윤석열이다.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 야권의 모든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높다. 지금의 지지율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바람은 결코 조직을 이길 수 없으니 어느 시점에선가 입당도 해야겠지만 만약 국민의힘 최종후보와 원샷(one shot) 단일화에 승리한 뒤 입당하려는 속내라면 한 가지, 본선을 위해 단일화 협상을 너무 끌어서는 안 된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이유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너무 진을 뺀 나머지 자기 선거운동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두 번 잃게 된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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