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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히든캐스트㉘] ‘베르테르’ 강기연, 무대 위에서 전하는 작지만 큰 울림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10.24 00:00 수정 2020.10.23 18:49

뮤지컬 '베르테르', 11월 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공연

강기연, 극중 꽃처녀 역으로 열연

ⓒCJ ENM ⓒCJ ENM

뮤지컬을 관람하고 느꼈던 감동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특별한 경험으로 그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꿈에 도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강기연 역시 그렇게 뮤지컬 배우가 됐다. ‘명성황후’(2003)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2005) 등을 보고 막연히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을 동경해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강기연이지만, 뮤지컬 공연을 통해 받았던 감동은 그를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했다.


2014년 연극 ‘이상적 도시’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페드라’ ‘잃어버린 세계’ ‘슈가크래프트’ ‘시라노’ ‘브로드웨이 42번가’ 연극 ‘아브라소’ ‘갈매기’ ‘리차드 3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 왔다. 현재는 지난 8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출연 중이다. 자신이 관객석에서 받았던 그 감동을, 이젠 직접 무대 위에 올라 관객들에게 전달하면서 말이다.


- 데뷔 당시, 첫 무대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나요.


연극(음악극) ‘이상적 도시’라는 작품으로 2014년에 데뷔를 했어요. 뮤지컬로는 2016년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첫 작품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처음’은 저에게 늘 긴장되는 때입니다. 아직까지도 매 작품의 첫 공연엔 긴장을 꽤나 하는 편이다보니 ‘그때도 지금처럼 긴장했었겠지, 어쩌면 더했겠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긴장을 해서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걸까요. 첫 무대에 올랐을 때보다 처음 합격한 기쁨의 순간이 제겐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도 있었나요?


감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웃음), 감사하게도 저는 슬럼프를 겪진 않았어요. 슬럼프를 겪기에는 저는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과정 중에 있고 아직 경험한 것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감사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주변에 슬럼프를 극복하고 더 좋은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선배, 동료들이 많은데 그들을 보면 슬럼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슬럼프를 잘 겪어내고 극복하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슬럼프를 경험하지 못한 것보다 더 멋진 일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지금 슬럼프를 겪느라 힘든 분들이 이 글을 보게 되신다면 안 겪어봤으니 쉽게 말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하. 어쨌든 슬럼프라는 건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또 누구든지 잘 극복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과 소요되는 시간이 다 다르겠지만요. 이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제가 슬럼프를 겪게 된다면 어떤 종류의 것일지, 그리고 어떻게 겪어내게 될지 참 궁금해지네요.


- 보통 앙상블 배우 분들이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요.


네, 공감이 됩니다. 그 부분은 배우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 그리고 다른 직종의 프리랜서 분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직업 특성상 수익 구조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수입원을 일정하게 만들고자 다른 일들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며 또 다른 일을 찾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면 정말 좋겠죠. 모두가 바라는 바 일 것 같습니다(웃음).


- 현재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그 계기가 있나요?


이 질문엔 고민도 않고 바로 말 할 수 있어요! 정확히 ‘음악이 좋아서’였습니다. 저는 한 작품의 오디션에 지원하기 전에 꼭 그 작품의 대본이나 음악들, 공연 영상 등 자료란 자료는 될 수 있는 대로 다 찾아보고 지원을 하는 편입니다. 어떤 내용의 작품인지 그리고 어떤 질감의 작품인지 알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찾아본 자료를 통해 ‘정말 좋다’ ‘하고싶다’ 등의 생각으로 이어지면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하게 생기기 때문이에요. 뮤지컬 ‘베르테르’는 확실히 음악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클래식 악기 중에서 피아노와, 현악기를 좋아하는데 ‘베르테르’의 음악은 건반과 현악으로만 이루어져있으니 음악을 들으며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게 음악을 듣고 반해서 지원하게 되었고, 감사히 오디션에 합격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요?


‘파도’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겐 ‘격정’을 누군가에겐 ‘슬픔’을 누군가에겐 ‘상실’을, ‘아픔’을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저희 작품을 보시는 많은 분들이 다 같은 것을 느끼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 분들이 느끼시는 여러 가지 것들이 무엇이든 각각의 마음에 각기 다른 정도의 일렁임을 만들어주는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파도’라는 표현을 하게 되었습니다.


ⓒCJ ENM ⓒCJ ENM

- 오디션이나 연습 중 재미있었던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데요. 하하. 먼저 오디션 때 이야기를 하자면, 극중 롯데가 부르는 ‘불길한 내 마음’과, 극중 꽃처녀가 부르는 ‘꽃을 사세요’ 이렇게 두 곡이 오디션 지정곡이었어요. 지정곡 연습을 처음 해보고 꽃처녀 노래는 너무 어려워서 자신이 없더라고요. 물론 ‘불길한 내 마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땐 차라리 조금 천천히 부르는 노래가 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답니다(웃음). 빠른 템포, 반음계씩 왔다 갔다 하는 어려운 음정들, 제 음역대에서 너무 힘든 구간의 반복이었던 ‘꽃을 사세요’를 불러보자마자 ‘어휴, 이건 절대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오디션을 치르고 감사하게도 작품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꽃처녀 역할을 연기하게 되어 그 어렵던 노래를 공연 때 매일 부르게 됐어요.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지만 속으로는 ‘으악, 큰일 났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연출님과 음악감독님께서 정말 많이 애써주시며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제가 꽃처녀로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네요(웃음).


또 하나는 연습 초반에 서로 너무 낯을 가리는 모습을 보고 안무 감독님께서 ‘지금 다들 너무 어색해해서 안무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하시며 ‘모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자기소개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성격 등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들어가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 명씩 나와서 소개를 시작했는데 저를 포함한 모두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입니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결국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고서도 한 달을 넘게 항상 잔잔하고, 조심스럽고,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어색해하며 연습했던 것 같아요.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늘 시끄럽고, 쉴 새 없이 깔깔깔 웃음꽃이 만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는 자기소개였던 것 같네요. 우리끼리만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회자되는 이야기랍니다. 하하.


- 분위기가 매우 좋은 것 같네요. 이전에 참여했던 작품들과 다른 지점도 있나요?


드라마가 굉장히 강한 작품이고, 세밀한 감정들을 다뤄야하는 장면이 많다보니 연습분위기는 항상 매우 진지하고 진중했던 것 같습니다. 창작 초연이나 새롭게 리메이크 되는 공연들과는 다르게 똑같은 버전으로 재 공연되는 작품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잘 이해한 상태로 장면에 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예를 들어 무대 도면이나 무대 디자인 사진 그리고 장면마다 어떤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지, 어떤 소품을 쓰는지가 모두에게 명확하게 공유된 상태로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 점이 좋았습니다.


- 꽃처녀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꽃처녀는 사랑의 아픔을 지닌 인물들을 위로해줘요. 상심한 여인에게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요’라고 이야기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이 꽃을 선물하면 사랑이 이루어질 거예요’라고 그녀를 위로하죠. 상심한 베르테르에게는 ‘사랑은 욕망이 아니에요, 그저 마음에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귀하고 소중하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해줘요.


또 총성이 오가며 모두가 두려워 움츠린 상황에서 총을 겨눈 위병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 꽃으로 총구를 마주하는 용기 있는 모습도 보여주죠. 결국 사랑을 기반으로 한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이 그녀를 총구 앞에 설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해요. 꽃처녀가 극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작품 ‘베르테르’가 관객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인 것 같습니다.


-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해볼까요?


빅토르 위고는 “바다보다 더 거창한 광경을 펼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거창한 광경을 펼치는 것도 있는 바. 그것은 인간의 내면이다”라고 말 했어요. 자연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자연보다 위대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내면이다’라고 말 하는 것 같았어요. 꽃처녀의 내면은 아주 따뜻하고 말랑말랑해요 또 동시에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꽃처녀의 아름다운 심성, 고귀하고 순수한 내면 자체로 이 역할의 매력은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앙상블로서 작품에 출연할 때 가장 힘든 점, 보람을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원 캐스트로 공연을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시기를 지나며 매 공연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다른 공연을 할 때보다 유독 이번 ‘베르테르’를 공연하면서는 힘든 것이 많지 않다고 느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들이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고 소중하게 공연을 하고 있답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지점은 앙상블(Ensemble)이 좋다는 평가를 받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모두가 무대 위에서 잘 어우러졌다는 뜻일 테니까요. 아, 이번 ‘베르테르’를 하면서 앙상블들이 합창을 하는 곡들의 가사가 잘 들린다는 후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었어요. 음악감독님과 함께 연습 기간 내내 정말 열심히 연습 했는데, 이렇게 감사한 후기 들으니 그간의 연습이 보람되고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하.


- 작품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배우로서, ‘베르테르’의 가장 큰 매력을 말씀해주세요.


‘베르테르’는 정말 많은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단연 최고는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게는 오디션 지원의 이유이기도 했던 아름다운 음악.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수많은 뮤지컬 중 이런 실내악 형식의 음악으로 구성된 작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드럼 등의 타악기나 전자악기 없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만으로 구성된 11인조 실내악은 베르테르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켜줍니다. 이렇듯 ‘베르테르’가 가진 아름다운 실내악 선율은 다른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한 멋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 ‘베르테르’에 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배역을 하고 싶나요?


아마 다시 ‘베르테르’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제가 절대로 연기 할 수 없는 배역일 거예요. 저는 연습부터 지금까지 매우 한결같이 알베르트 역에 가장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 여자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 깊고 넓은 마음. 그래서 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아픈 알베르트. 이 역할을 맡은 이상현 배우와 박은석 배우가 알베르트라는 인물을 정말 멋지게 잘 연기하셔서 그런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느낍니다.


- 기존에 했던 작품들 중 흥행 여부, 작품의 크기와 무관하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뮤지컬 ‘시라노’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다신 없을 팀워크가 ‘시라노’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스텝 및 배우들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니면 어쩌죠? 하하. 연습과 공연 내내 기쁨과 행복이 충만했던 참으로 감사한 작품이에요. 아주 조금 때로는 좀 많이 그립습니다(웃음).


- 코로나19로 공연계도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직접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 체감하는 건 더 클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띄어 앉아계신 관객 분들을 볼 때마다 달라진 지금의 공연계 상황을 크게 체감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을 찾아주시고, 한 자리 한 자리 꽉꽉 채워주시는 관객 분들에게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또 환호를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더 열심히 쳐주시곤 하세요. 그런 모습들은 늘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모든 배우들에게 큰 응원과 힘이 된답니다.


-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글쎄요, 사실 최종적으로 ‘저는 어떤 목표를 가졌습니다’라고 뚜렷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보다 많은 중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 ‘어떤 배우가 되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무엇으로 제 삶의 과정들을 채워 나갈 것인지를 많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 과정들은 제 신념을 따르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되겠죠. 그것이 저를 어떤 사람으로, 어떤 배우로 만들어줄 지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기하고 노래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더불어 제가 행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때론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고, 또 위로가 되고, 마음에 작은 울림이라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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