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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문인데 결과는 딴 판…보험설계사 아전인수 설문 '촌극'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10.26 06:00 수정 2020.10.23 10:20

고용보험 의무화 법률안 국무회의 의결…설계사 일자리 축소 우려 커

업계·연구기관 반대 응답 70%, 노동계는 찬성 우위…사회 갈등만 확산

정부가 고용보험 의무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이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보험설계사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정부가 고용보험 의무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이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보험설계사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국내 40여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 의무화 법안의 찬반을 둘러싸고 관련 단체들이 저마다 크게 엇갈리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업계와 연구기관은 보험설계사들 대부분이 해당 정책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 반면, 정부 방침을 옹호하는 노동계에서는 정 반대 자료를 근거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서다. 자신의 입장에 맞는 결과를 얻기 위한 아전인수 식 통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 추진이 분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고용보험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법안의 골자는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적용을 가능케 하는 것을 넘어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특수고용직은 보험설계사를 비롯해 학습지 교사와 택배·퀵서비스 기사, 골프장 캐디, 건설기계 조종사 등 독립적으로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얻는 계약을 체결한 이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들은 자영업자처럼 여러 사업주와 일하는 만큼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정부의 이번 고용보험 정책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일자리 축소를 염려하고 있다. 최저임금 고율 인상으로 취약 계층의 취업 감소가 불거졌듯,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의무화도 비용을 증대시켜 일자리를 감소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걱정이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특수고용직 상당수가 특정 몇몇 사업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만큼, 고용보험을 마땅히 제공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갑론을박이 가장 심한 영역은 보험업계다. 우선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의 숫자 자체가 가장 많다. 특수고용직 77만명 중 보험설계사만 42만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그리고 보험설계사는 개정안 시행 시 고용보험의 우선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다. 특수고용직 중에서도 사실상 특정 사업주에게 귀속되는 특성인 이른바 전속성이 강한 직종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보험설계사들 간에는 상반된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런 와중 최근 여러 단체에서 잇따라 대비되는 내용의 설문조사 자료를 내면서 잡음은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번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의무화에 대해 한 쪽에서는 보험설계사들이 적극 찬성하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쪽에서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포문을 연 건 민간 정책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었다. 한경연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특수고용직 234명을 대상으로 견해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 10명 중 6명이 넘는 63%가 일괄적인 고용보험 의무화에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보험설계사(67%)는 물론 골프장 캐디(74%)와 택배기사(70%), 가전제품 설치기사(64%) 등 조사 대상 특수고용직 전 직군에서 고용보험 의무 적용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험업계에서도 이에 힘을 보태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번 달 초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법인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 12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3%(784명)가 고용보험 무조건 가입에 따라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을 염려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보다 많은 77%(955명)가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했다는 설명이다.


그러자 노조 측에서는 아예 다른 통계로 맞불을 놨다. 앞선 조사 결과들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사무금융서비스노조 보험설계사지부는 보험설계사 91명을 상대로 한 온라인 설문에서 특수고용직에 고용보험이 도입돼야 한다고 응답한 비중이 67%에 달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당사자인 보험설계사들 사이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조사 대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결과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똑같이 보험설계사들을 놓고 벌인 설문조사가 이처럼 완벽히 다를 수 있냐는 반문이다. 결국 각 기관들이 제대로 된 실태 파악에 힘쓰기보다, 설문조사 대상을 미리 특정함으로써 자신의 이해에 맞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난이다.


보험 영업 현장에선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일방통행 식 정책 강행이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의 소란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직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정책을 추진하면서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정부는 이번 달 안에 특수고용직읜 고용보험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연내 입법화하겠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같은 상황을 두고 기관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의 설문조사가 나오는 최근의 현상은 특수고용직을 둘러싼 논의가 얼마나 비생산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며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라는 슬로건을 굽히지 않겠다는 자세를 전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탓에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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