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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⑱] 1990년대 이영애가 생각났다, ‘삼진그룹’ 이솜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0.10.20 10:36 수정 2020.10.20 10:37


배우 이솜 ⓒ이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솜 ⓒ이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규모가 크든 작든 이 배우 나오는 영화면 꼭 본다, 생각하는 배우가 몇 명 있다. 그중 한 명이 이솜이다. 그런 설렘 또는 기대, 의지를 갖게 하는 원인은 여럿인데 이솜의 경우엔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이려나’ 하는 궁금증이다.


이솜의 연기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캐릭터를 만들기에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또 어떤 상대배우를 만나도 그게 아우라를 지닌 정우성이든(영화 ‘마담 뺑덕’),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안재홍이든(영화 ‘소공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줄 아는 에너지는 기본. 본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타고난 신체 조건이 좋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가꾼 몸매가 좋아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 등에 각별히 신경 쓴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확 띄는 건 장점. 그래도 최고인 건 그 인물이 되려고 깨알같이 노력한 부분들, 대충 타협하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인생사를 틀어쥐려고 마음 쓴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캐릭터에, 영화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는 21일, 내일 개봉하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 제작 더 램프㈜,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도 마찬가지다. 패션모델 이력 덕분인지 뽀글뽀글 헤어 스타일에 칼국수처럼 넓적한 금목걸이, 가죽 치마에 오버핏 트렌치코트로 한껏 1990년대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갈매기가 나는 모양으로 그린 눈썹, 블루블랙으로 그린 립라인이 더해지니 정유나를 보는데 자꾸만 1990년대 여름 화장품 광고 속 이영애가 연상됐다.


특히 검정 폴라스웨터에 가죽 치마를 입었을 때, 칼국수 금목걸이의 길이가 이전 장면보다 길어진 것을 보며 웃음이 빵 터지는 이들 꽤 있을 것이다. 갈매기 모양 눈썹, 짙은 립라인을 보면서 ‘그땐 그랬지’ 추억에 젖는 이도 많을 것이다. 바로 과거의 내 모습을 이솜을 통해 만나게 될 테니까. 이영애가 생각난 것, 추억이 책장 속 나를 보는 것, 이솜과 의상팀이 챙긴 디테일의 결과다. 정유나가 존재하는 공기, 공간을 연출하고 디자인한 이종필 감독과 미술팀, 소품팀이 바탕을 깔아준 공은 두말할 필요 없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

외형만이 아니다. 이솜은 정유나의 내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어느 때보다 집요하게 파고든 정유나라는 인물. 정유나는 또래 동료보다 아는 게 많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지식을 방출한다. ‘걸어 다니는 잡학사전’형 친구다. 누구보다 잡심부름 사환에서 벗어나 제대로 일하고픈 사회적 욕구가 강하고, 회사가 은폐한 기밀을 파헤치려는 이자영(고아성 분)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냉철하게 ‘증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입으로만 아니고 행동으로 함께한다. 그리고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비서실 근무 당시 한 차례 큰 아픔을 겪은 바 있고, 그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회사와의 싸움에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 이솜은 ‘왜’에 파고들었다. 최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 말을 들어볼까.


“마냥 걸 크러시(여자가 당찬 매력을 지닌 여자를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 또는 그런 대상이 되는 여자) 느낌은 스스로 흥미롭지 않아요. 유나라는 캐릭터를 해야 하나, 생각도 있었죠. 감독님이 긍정적으로 시나리오를 볼 수 있게 해 주셨고, 또래 배우들과 함께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선택했죠. 결정을 하고 나서는 캐릭터 이면에 정서적인 면을 많이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냥 강한 척하고, 그냥 말이 많은 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유나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인정욕구를 담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유나가 친근해졌고 자연스레 회사 상사들과 있을 때, 또래 친구들과 있을 때 다른 톤이 나오더라고요.”


“유나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어요. 탐정 소설 좋아하고 미스터리 좋아하고, 세상에 관한 많은 정보를 흡수했던 거죠. 친구들, 동료들에게 아는 척 많이 하는 인물 아닐까,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유나는 어느 동에 살았을까요?’ 촬영 중간에 묻기도 하셨는데, 제가 ‘옥수동?’ 했던 기억도 납니다. 비서실에 있을 때 꽃뱀 사건 등 전사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는데, 박 전무라는 상사 한 명 때문에 비서실 전체가 피해를 본 거죠. (영화에도 나오듯) 나 혼자 당하는 건 괜찮은데 주변 인물이 당하는 건 못 참아서 들고 일어선 인물이고요. 그게 배경이 돼서 자영이가 사건 파헤치자고 했을 때 정확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하는 인물이 된 것 같아요. 그런 생각들 속에 유나를 만들었습니다.”


궁금한 배우, 궁금한 채로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 ⓒ 궁금한 배우, 궁금한 채로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에너지 넘치는 영화이고,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넘치지 않는 무게감으로 소화했다. 송편으로 치면 알맞게 익반죽해 빚고, 알맞게 쪘다. 겉으로 보기엔 소로 들어간 게 동부 팥인지, 콩인지, 깨인지, 밤인지 잘 보이지 않는데 굳이 배 갈라 김 빼지 말고 우선 입안에 넣어 씹어먹기를 권한다. 맛있는 떡이다.


영화 참 재미있는데 미리 뭐라고 말할 수 없어서 갑갑한 가운데,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판타지 같은 쾌감과 승리감을 지닌 영화에 발랄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건 배우들이다. 그만큼 삼진그룹 삼인방 이자영, 심보람 그리고 정유나의 역할이 크다. 이솜은 고아성이 연기한 이자영, 박혜수가 연기한 심보람과의 관계를 다진 건 기본이고 극 중 중요한 연결지점이 되는 송소라(이주영 분)와의 접점이 생뚱맞지 않도록 고심했다.


합숙의 보람, 찰떡궁합 삼진그룹 삼인방 ⓒ 합숙의 보람, 찰떡궁합 삼진그룹 삼인방 ⓒ

“현장에서는 연기를 집중적으로 하며 캐릭터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촬영 끝난 후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합숙했어요(웃음). 촬영 어땠냐, 이야기도 나누고 잠도 자고요. 너무 잘 맞았죠. 제가 가장 큰 언니긴 한데, 같이 찍는 동료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고아성, 박혜수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표현은 많이 안 했지만. 아성이가 제일 일찍 일어나고 그다음 나, 다음은 혜수. 청소는 다 같이 하고요. 요리는 거의 제가 하고. 친구들에게 해주는 걸 좋아해요. 5~6인분을 한꺼번에 하는 거, 파스타나 김치볶음밥. 두 배우가 편하게 대해줘서 친근함이 영화에 잘 담긴 것 같아 좋습니다.”


“극 중에서 세 친구가 어떻게 친해졌을까가 고민이었어요. 너무 다르게 생겼고, 각자 개성도 강하니까요. 이들이 어떻게 친구가 됐지? 특히 보람이와 명확한 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국수 가게에서 울먹거리다가, 증거만 있었어도 하다가, 분위기 전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무얼까. ‘이자영한테는 얘기하지 마!’, 그 말이 들어가고 나니까 분위기 전환되고 보람과의 관계도 형성이 됐죠. 송소라와의 관계도 고민을 했었는데, 그 당시에 ‘슬램덩크’를 재밌게 보던 참이었어요. 나는 강백호고 너는 서태웅이다, 그런 구도로 가자 했죠. 영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 더 많지만,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며 유나가 되어 촬영했고 감독님께서 다 좋다며 잘 받아 주셨어요.”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까, 배우 이솜 ⓒ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까, 배우 이솜 ⓒ

현장 얘기를 들으니 배우 이솜이 스크린 위에서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명실상부하게 주연의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작품씩 하면서 성장하지 않았어요. 어제의 저보다 나은, 바로 오늘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 마음가짐은 항상 있어요”라고 배우로 살아가는 결의를 다부지게 밝히는 이솜인 만큼, 내일은 한 뼘 더 성장해 주연의 자리를 넘어 주연의 역할을 고민하는 배우가 돼 있을 것이다. 의욕 넘치는 열정 배우의 마지막 말은 이거였다. 세련된 도시 미인은 온데간데없고 초심을 잃지 않은 대중 배우 이솜의 다짐이다.


“1월에 촬영이 끝나고 8개월을 쉬었어요. 코로나19 겹치고 하면서 ‘나. 이대로 아무 작품도 없이 끝나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해서, 요새 홍보하는 게 행복해요(웃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많이 봐주셨으면 해서, 홍보 열심히 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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