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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함정 경고등①] 역대급 돈폭탄에도 경기회복 깜깜…제로금리의 배신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10.12 05:00 수정 2020.10.08 14:22

통화량 사상 첫 3000조 돌파…올해만 180조 급증

시중에선 돈맥경화만 심화…통화정책 부작용 우려

국내 광의 통화량(M2)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광의 통화량(M2)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시중에 풀린 돈이 역대 처음으로 3000조원을 훌쩍 넘어섰지만 경기는 좀처럼 회복될 줄 모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통화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유래 없는 제로금리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도리어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만 심해지면서 통화정책을 둘러싼 실망감만 점차 커지는 형국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이 아무리 경기 부양에 나서도 실물경제가 반등하지 못하는 흐름에 우려가 번지는 가운데 저금리로 인한 역효과와 그에 따른 유동성함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7월 원계열·평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094조2784억원으로 지난해 말(2912조4341억원)보다 6.2%(181조8443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M2는 현금을 비롯해 요구불예금과 머니마켓펀드,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과 금융채 등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국내 M2가 3000조원을 넘어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풍부해진 유동성의 배경에는 중앙은행인 한은의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리는 통화정책이었다. 코로나19로 경제 침체가 가속화하자 저금리 정책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계산이었다.


한은은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0%대까지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어 한은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아울러 한은이 직접 투입하는 통화량도 몸집을 불렸다. 한은이 화폐를 발행해 시장에 공급한 본원통화는 올해 들어서만 20조원 넘게 확대됐다. 평잔·원계열 기준 본원통화는 지난해 12월 186조5759억원에서 올해 7월 말 207조716억원으로 11.0%(20조4957억원)나 늘었다.


하지만 정작 돈길은 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 이후 정책적으로 풀린 돈이 실제로 필요한 곳에 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M2를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는 올해 상반기 말 14.85배로 역대 최저 기록을 다시 썼다. 통화승수는 은행들의 신용 창출을 통해 얼마만큼의 통화를 공급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돈의 활동 속도를 보여준다. 또 통화유통속도 역시 올해 상반기 동안 0.67에서 0.62로 떨어졌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단위 통화가 거래에 사용된 횟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명목 국내총생산을 M2로 나눠 계산한다.


이렇게 풀려 있는 자금은 눈에 띄게 불어났지만 돈이 제대로 돌지는 않는 돈맥경화의 이유로는 우선 코로나19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꼽힌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자 사람들이 돈을 쓰기 보다는 만약을 대비해 현금으로 쥐고 있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유동성 역설을 단순히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사정 악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기치 못한 저금리의 역풍이 구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 돈을 맡겼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자가 크게 축소되자 그냥 현금의 형태로 자산을 들고 있으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여기에 낮은 금리로 인해 투자 수익률까지 함께 하락하면서 이런 흐름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같은 저금리의 악영향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유동성 함정으로 이끌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새 나온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충분히 낮아지더라도 가계와 기업이 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시장에서 현금을 구하기 쉬운 상황임에도 기업의 생산·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아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문제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경우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계속 금리를 내리다가 어느 순간 추가 인하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결국 통화정책 수단을 상실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0.5%까지 내리면서 유동성 함정에 대한 경고 메시지는 한층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이제 인하가 불가능한 실효하한까지 떨어진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실효하한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의 경우 사실상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릴 수 없다는 측면을 감안할 때 감내할 수 있는 금리 마지노선을 가리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처럼 유동성이 확대돼도 실제로 돈은 묶여 있는 분위기 속에서 기계적인 통화정책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게 될 수 있다"며 "미국 중앙은행이 실시하고 있는 무제한 양적완화 등 전통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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