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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국민의 생명 지켜줄 책임 누구에게 있나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9.28 09:01 수정 2020.09.28 08:19

김정은과의 화친에만 꽂혔나

‘사과’ 傳言에 감격한 모습이라니

책임 추궁 의지 애초에 없었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이 담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 서명한 뒤 포옹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이 담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 서명한 뒤 포옹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모씨는, 적어도 정부 여당 안에서는 잊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친서교환 분위기를 냉각시킬까봐 노심초사했던 듯하다. 그러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김정은의 사과를 담은 통지문을 보내오자 쾌재를 부르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겐 이 일련의 과정이 오히려 ‘문재인-김정은 밀월’ 부활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인상이다. 살인자 측이 사과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전화위복’ 운운하는 사람까지 있다. 문 대통령 주변에!


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팽목항 방명록 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헌재에 의해 ‘파면’당한 지난 2017년 3월 10일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김정은과의 화친에만 꽂혔나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공무원 이 모씨의 죽음에 대해서도 청와대와 정부 여당 안엔 똑 같이 말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고맙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줘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정권을 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끔찍하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처럼 철저히 이기주의적일 수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 절망스럽다.


문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누구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인식을 그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간에도 그랬지만 이번 북한의 만행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는 자신의 직책 직분 정체성 모두를 잊고 사는 사람 같다. 오직 김정은과의 화친에만 마음이 꽂혀 있는 인상이다.


그는 22일 오후 6시 36분에 공무원 이 모씨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 이전 오후 3시 30분에 이 모씨는 서해 NLL 북측 수역에서 북한군의 수상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그로부터 3시간 10분쯤 후에 북측이 쏜 10여발의 총탄에 살해 당하고 불태워졌다. 북한 측이 이 모씨를 발견한 후 6시간여 만이었다. 그 사실을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30분에 처음으로 대면 보고를 받았다.


이날 새벽 1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1시 26분부터 42분까지 문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었다. 이 시간까지는 대통령이 깨어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남북한이 ‘생명공동체’라고 전제하면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한 연설이었다. 그걸 안 지켜보고 잤으리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는 이해가 된다고 하자. 연설이 끝난 후에도 관계장관회의는 계속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라면 확인되지 않은 첩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개요 정도는 보고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어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고 안보실은 아침에야 보고를 했다. 곧 잠자리에 들 대통령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서? 하급 공무원 한 사람이 북한 수역으로 떠밀려 갔다가, 아니면 자기 의지로 월북했다가(정부와 군의 판단) 사살된 사건 정도로는 대통령의 잠을 방해할 수는 없다고 여겨서?


‘사과’ 傳言에 감격한 모습이라니


아침에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특별한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날 청와대에서 합참의장 윤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등 장성들의 진급 및 보직신고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연설을 하면서 그는 ‘평화’만 유난히 강조했다. 24일 낮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열렸으나 대통령은 경기도 김포시에서 열린 ‘디지털 뉴딜’ 관련회의에 참석하고 아카펠라 공연을 보느라(?) 불참했다. 25일 국군의 잘 기념식에서도 우리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서 총격에 사살돼 불태워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체했다. 역시 ‘평화’를 강조했을 뿐이다.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린 그날 오전 북한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이 청와대에 왔다. 이때부터 청와대, 정부, 여당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최근 한 달 안쪽에 친서를 교환했다고 청와대가 밝히더니 나중에 그 내용까지 공개했다. 그리고 27일엔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를 문 대통령이 주재했다.


이 가벼운 행동과 얄팍한 계산,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친서가 오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우정이 돈독해서 이런 사과편지도 오는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문 대통령과 그의 안보 참모들이 제대로 체면을 세웠다. 그래서 내친 김에 우정이 뚝뚝 듣는 편지 내용까지 공개했을 터이다.


이날 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 발표된 내용은 이렇다.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남북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가 막힐 일이다. 고인이 설령 월북을 시도했다고 해도 최후까지 우리 국민이었다. 북측 통지문에는 신원확인을 하려고 물었더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두 번 대답하고 그 다음 말은 얼버무리더라고 했다. 우리 국민임을 알면서도 사살하고 불태웠다는 뜻이다. 이게 사과 같지 않은 사과 한 마디 듣고 그냥 넘길 일인가?


문 대통령은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고인에 대해 애도는커녕 아예 모르쇠로 일관한다. 북한의 통지문에만 반응할 뿐이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의리가 이 지경이어도 되는지 누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책임 추궁 의지 애초에 없었나


김정은과 그토록 깊은 우정을 맺고 있다면서 이 모씨가 살해당할 때까지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 문 대통령은 대답해 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에 중앙대책본부를 찾았다고 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의 처지가 되었고, 그게 단초가 되어 결국 대통령에서 밀려나는 상황으로 몰렸다.


그가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구조 가능성이 없어진 상태였는데도 그 이후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온갖 해괴한 추측과 함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모진 추궁을 받았었다. 문 대통령은 보고 받은 후로도 3시간 넘게 살아 있었던 우리 국민의 구명을 위해 그 우정 깊은 김정은을 상대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정부와 군은 이 모씨가 북한 측에 발견된 것을 인지한 이후 6시간 여 동안 무엇을 했는가?


김정은의 ‘사과’라고 북한 통일전선부가 보낸 통지문에 감격해 하는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 관계자들에게 앞으로도 별로 기대할 게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그 자리에 있는 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맡겨진 책무를 다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에 대해 문 대통령이 요구해야 할 사항은 최소한 다음의 네 가지이다.


①대한민국 국민을 해상에서 총격으로 살해한 자들과 그것을 명령한 자를 색출해 엄벌할 것. ②피살자와 그 유족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할 것. ③그것이 대한민국 민간인임을 인지하고서도 일방적으로 총격을 가해 살해한 범죄행위임을 인정할 것. ④앞으로 이 같은 행위가 다시는 없을 것임을 서약할 것.


[사족(蛇足)]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황이 히틀러의 패배 쪽으로 기운 결정적 계기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이었다. 그걸 소재로 한 영화 지상최대의 작전(원제: The Longest DaY)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프랑스 점령군 사령부의 귄터 블루멘트리 장군(쿨트 율겐스)가 총사령부의 알프레드 요들 장군에게 기갑부대를 해안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연합군 낙하산 부대가 프랑스를 공격해 온 걸로 미루어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요들은 전화기에 대고 “총통께선 잠이 드셨소. 이 문제로 깨울 순 없소. 깨면 보고 드리겠소”라며 거절했다.


“총통의 명령 없이 기갑부대는 움직이지 못해. 총통은 아직 자고 있고….”


율겐스는 부관을 옆에 두고, 분노를 억누르며 독백하듯 시니컬하게 말을 이어간다.


“이게 역사야. 우린 역사적 순간에 살고 있어. 우리는 패배한다. 히틀러가 수면제를 먹고 곯아 떨어져 깨어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어. 히틀러는 깨지 않을 거야.”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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