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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뉴딜펀드②] 어디 쓰일지도 모르는데 액수부터…주객전도 '묻지마 투자'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9.08 05:00 수정 2020.09.08 04:34

명확한 투자처도 못 정한 채 민간 금융권에 13조원 할당

액수만 크면 뭐하나…정부 입맛에 맞춘 '관제투자'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한국형 뉴딜에 자금을 대기 위해 내놓은 뉴딜펀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투자의 기초 접근 방식부터 뒤집은 주객전도 상품이란 비판이 나온다. 펀드 성과의 관건은 얼마나 우량한 투자처를 발굴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에 앞서 액수부터 못 박고 시작한 뉴딜펀드는 애초에 잘못 끼워진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가 사업 규모를 부풀리며 묻지마 식 투자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제기되는 와중, 일각에서는 정부가 점찍은 회사에 돈을 넣는 관제투자로 귀결될 것이란 날선 반응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야심차게 발표한 한국판 뉴딜 금융 지원 방안의 핵심은 20조원에 달하는 뉴딜펀드다. 정책금융기관을 포함한 정부가 7조원, 민간이 13조원을 채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우리 경제의 반등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뉴딜펀드의 중심은 국민의 직접 투자에 있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할 모(母)펀드를 만들 테니, 여기에 금융권에서 자금을 더해 자(子)펀드를 꾸려 달라는 설명이다. 국민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정책펀드로는 역대 가장 큰 규모다.


현장에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의도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앞선다. 문제로 꼽히는 점은 투자 대상이다. 정부는 뉴딜펀드로 모인 자금을 스마트 스쿨과 수소충전소 구축 같은 민자사업, 디지털 사회간접자본 안전관리시스템,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뉴딜 인프라 등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처럼 큰 대분류만 정해져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업종과 업체에 얼마를 넣겠다는 식의 세부 플랜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못한 채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종합해 보면 투자처가 명확치도 않은 상태에서 13조원이란 돈부터 미리 민간에 할당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투자금융(IB)업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발상이란 평이 줄을 잇는다. 좋은 투자 대상에 대한 설득보다 정해진 돈부터 마련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은 금융 상식에 비춰봤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불만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분명한 투자 대상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금액부터 정하는 펀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상품"이라며 "말 그대로 정부가 알아서 잘 할 테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투자하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어떻게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 지부터 먼저 보여주고 투자를 권유하는 건 펀드 자금 모집의 기본 개념"이라며 "뉴딜펀드는 이런 과정 자체를 건너뛴 채 금액 측면의 사업 규모만 강조하는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뉴딜펀드에 대해 급조된 상품이라는 혹평마저 나온다. 정책 펀드 가운데서는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만 있을 뿐, 금융 상품으로서 바라보면 엉성한 구석이 많다는 평가다. 특히 조성 기간이 5년에 달해 장기간 돈이 묶이게 되는데도, 불분명한 투자처로 인해 수익률을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은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제한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청사진만 나왔을 뿐 뉴딜펀드의 본격 가동까지는 아직 꽤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위는 운용사 모집 공고 등 본격적인 뉴딜펀드 조성 절차를 내년 1월부터 본격 진행할 예정이이어서, 실제 국민 투자는 일러야 2021년 2분기쯤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장기화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이 변수가 상당할 수 있다. 또 차기 대선이 1년도 안 남은 와중 현 정권의 정책펀드가 문을 열게 되면서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와 더불어 관제펀드가 될 것이란 의구심도 이번 뉴딜펀드를 둘러싼 논쟁거리 중 하나다. 실제 뉴딜펀드를 운용해야 할 금융사가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발굴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우선 정부의 눈치부터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비판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입맛에 맞는 회사가 어디인지부터 따지는 관제 투자가 될 것이란 볼멘소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 산업인 국내 금융의 특성 상 뉴딜펀드 운용사는 정책 취지에 적합한 투자처가 어디일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과거 야당 시절 정권을 향해 관제 금융 사업을 벌여선 안 된다고 날을 세우던 현 정부도 집권 후에는 끝내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금융 논리를 역행해 정책을 수립하기 보다는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정립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억지로 투자를 강요하지 않아도 금융권 스스로 새로운 경제 동력을 찾아 나설 것이란 조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직설적으로 말해 돈이 되기만 한다면 민간 금융사가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다"며 "특정 업권을 지정해 투자 할당량을 강제하기 보다는 뉴딜 영역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을 조성해 자연스런 자금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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