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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 어쩐지 ‘가치’와 ‘성찰’없는 당명같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9.01 08:30 수정 2020.09.01 08:12

보수 가치 단어 회피한 보수 정당의 이름은 무의미

어차피 ‘국민당’ 약칭 될 거면 한국국민당 어떤가?

김수민 미래통합당 홍보본부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미래통합당의 새로운 당명 개정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수민 미래통합당 홍보본부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미래통합당의 새로운 당명 개정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한국 주요 정당의 당명 변천사를 보노라면 가히 당명 수난사라는 느낌이 든다.


안 쓴 단어가 없고, 새로 고르고 파격적으로 쓴 이름일수록 흔적도 없이 몇 달, 몇 년 만에 사라졌다. <바른정당> <대안신당> <국민승리21> 등 최근 몇 년 사이에만 떴다가 없어진 정당들의 당명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은 그 당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이자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총선 참패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 체제로 당 재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명 공모를 통해 <국민의 힘>이란 것으로 압축, 간판을 새로 걸 모양이다.


공모(公募)라는 형식을 거쳤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공모가 아니다. 대변인이 <국민의 힘>이라는 제안이 애초에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4건 있었다”고 없는 걸 찾아낸 듯 해명한 모습에서 벌써 ‘작위(作爲)’의 냄새가 난다. 4건이 설사 있었다고 한들 공모에 응한 건수가 약 2만 건이므로 0.02%에 불과하다. 이것이 어떻게 당선작이 될 수 있는가?


또 공모를 한다고 해놓고 뭐 뭐 단어는 안 된다는 식으로 내부적으로 미리 제한을 한 것도,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짜맞추기를 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수의 가치, 즉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아끼는 말들만 골라서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으니 그 당명이 보편적인 게 원천적으로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단어들이란 자유, 한국, 공화, 민주, 정의 같은 것들이다. 탈(脫) 보수 이념에 이전 보수 당명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절대로 안 된다는, 어린아이 같은 취향과 선호를 고집했다. 보수 정당의 이름에 보수의 가치를 대표하는 단어들을 빼면 어쩌자는 것인가? 정당은 이름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속적인 정책과 실천이 중요하다.


보수우파 진영은 진보좌파 정권에서 음모적이거나 보여주기 행사를 할 때 ‘쇼’라는 영어 단어를 써서 비난하곤 한다. 통합당의 이번 <국민의 힘> 당명 공모 결과는 자신들이 도리어 ‘쇼’를 했다는 비난을 상대 진영과 비판적인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보수당의 새 출발에 지지와 애정을 품고 2만 건에 가까운 이름 후보를 냈던 사람들이 받을 배신감과 좌절을 생각해 보라.


비대위원장 김종인은 국민이란 단어에 집착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 조직의 어느 시점에서의 중요 결정은 그 장(長)의 의중이 결정적이긴 하다. 그렇다고 제안들에 들어 있지도 않은 것을 당선작으로 결정해서야 되겠는가? 당명에 있는 국민이란 단어 때문에 필자는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우선 국민(國民)은 전혀 새로운 당명 어휘가 아니다. 국민당은 정주영, 이인제 등이 만든 것들도 있었으며 현재(바로 지금 현재이다)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있다. 장차 안철수 당과 합칠 것이므로 그 중복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 또한 안철수 당 측과 보수당 지지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적 비약(飛躍)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난감한 것은 독설가(毒舌家) 민주당 의원 정청래가 공동대표로 2003년에 언론개혁 운동 등을 표방하며 만들었다는 시민단체 이름이 <국민의 힘>이었다니 이것이 사실이라면(정청래는 이 시민단체 발족 기사도 보여주고 있다) 거두어 들여야만 한다고 본다. 하필이면 정청래 같은 이에게 책(責)잡힐 이름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국민’은 보수 진영 국민들에게 별로 반갑지도 않고, 크게 바라는 단어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국민보다는 애국, 자유, 정의라는 단어들을 더 선호한다. 집회나 인터넷 게시판에 보이는 구호와 팻말들이 그것을 보여 준다.


국민당 대신에 <국민의 힘>이라는 영어식 명사구(名詞句)를 썼으니까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아니다. 이미 그런 정도의 파격(破格)에 신선함을 느끼는 시대도 지금은 아니고 사람들도 아니다. 오히려 유치하게 받아들일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 앞으로 <국민의힘당>이라고 부르지 않고 <국민당>이라고 부르게 된다면(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더욱 옛날 군소정당 이름과 차별성(差別性)이 없어지고 파격의 의미도 없어져 버리게 된다. 기왕 국민당으로 불릴 것이라면 차라리 한국국민당으로 하는 편이 낫다. 문재인 정권 세력은 대한민국 국호가 싫어 <우리나라>라는 해괴한 이름을 지어 사용하고(광복회 8.15 기념식장에서),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도 없애자고 주장하며 공식 행사에서 봉창(奉唱) 순서를 생략해버리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대표 보수 정당이라도 <한국>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새 당 이름을 영어로 People’s Power Party of Korea 라고 할 경우, People’s Power Party 는 싱가포르에 있는 군소정당(人民力量黨) 이름이 되기도 한다. 피플스 파워는 또 필리핀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 국민의 궐기에서 이 말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며 한국이 가진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굳이 피하려고 하다 보니 이런 동남아 이미지의 작명을 하게 되는 불상사(不祥事)가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통합당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부디 재고(再考)하기를 권한다.


이름은 독특해서는 놀림감이 되기 쉽다. 보편적이고 무난해야 가장 좋은 이름이 된다. 민주당과 진보좌파의 조롱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소중한 보수우파 사람들이 두고두고 사랑하며 불러줄 수 있는 장수 당명을 위해 한 번 더 고민해 달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집권을 다반사로 하는 주요 정당들 이름은 죄다 판에 박힌 것들이고 구식이다. 민주, 공화, 기독, 통일, 노동, 중앙, 연합, 시민 같은 단어들이 대종을 이룬다. 그렇다고 이들 정당이 의석을 적게 차지하고 집권을 못하는 게 아니다. 장수만 잘하면서 당명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나라의 한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의 간판이라면 1000년은 아니더라도 100년은 갈 이름을 지어야 한다. <국민의 힘>은 어쩐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일 듯 한 느낌이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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