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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여성인권을 위한 법정드라마, ‘세인트 주디’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8.27 14:02 수정 2020.08.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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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국 법조계에서는 ‘연구용 침팬지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중에서 누구의 인권이 더 나을까’하는 내용이 논란이었다. 2017년 뉴욕 주 항소법원은 결국, 침팬지에게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적 권리가 없다고 판결하며 상황이 일단락됐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아프가니스탄 여성인권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이 얼마나 열악한데 침팬지의 권리를 가지고 법적 공방을 하느냐 등의 비판이 나온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톰슨 로이터 재단에서 뽑은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10곳’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세인트 주디’는 실제로 LA에서 이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여성인권을 위해 미국 정부와 맞선 변호사 ‘주디 우드’의 이야기를 다룬 법정 드라마다. 각본은 주디 우드 법률사무소의 인턴 출신이며 공산주의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난민 출신의 드미트리가 직접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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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은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미셸 모나한 분)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불법 이민자 아세파(림 루바니 분)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세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다가 성폭행을 당했으며 미국에서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고향으로 추방돼 명예살인으로 죽음을 맞게 되어 있었다. 영화는 주디가 여성을 약자로 취급하지 않는 미국 재판부를 상대로 망명 허가를 받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이슬람 문화의 악습과 종교 그리고 여성을 차별하는 미국의 이민법의 허점을 녹여냈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 법정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먼저 이민자를 차별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한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그들이 미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독일 이민 3세이며 부인 멜라니아도 슬로베니아에서 26세에 이민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와 반(反)이민정책을 내세우며 중남미 불법이민자와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영화에서 정부 소속 이민 변호사인 벤자민은 9·11테러 이후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기관명이 ‘이민귀화국’에서 ‘이민세관단속국’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을 물건 취급하듯 그 기능도 바뀌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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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위해서는 투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한다. 아세파는 성차별에 의한 위협이 정치적 박해라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해,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온 나라에서도 내쫓길 수밖에 없었다. 주디는 약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무지와 싸우면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간다. 아울러 영화는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첫 걸음은 사람에 대한 관심임을 전한다. 주디는 불법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것이 결국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은 차별을 받고 있으며 여성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은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자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없으며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이 명예살인을 당한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편견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헌신한 주디는 이민자들에게는 낯선 땅에서 만난 ‘성녀(saint)’와도 같다. 주디가 입버릇처럼 말한 ‘전 포기하지 않습니다.’는 여전히 폭력과 차별에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향하는 목소리다. 1994년의 주디는 결국 아세파의 승리를 이끌며 미국의 망명법을 뒤집는데 성공했고 성차별로 위협받는 수많은 여성들의 망명도 함께 인정됐다. 영화 ‘세인트 주디’는 우리에게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보여주며 귀감이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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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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