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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예수정 "노년의 삶도 성장, 서로 위로해줘야"

부수정 기자
입력 2020.08.21 06:00 수정 2020.08.20 22:37

영화 '69세'서 효정 역 맡아

"삶의 방향과 같은 작품 택해"

영화 영화 '69세' 예수정.ⓒ엣나인필름

"당신은 누군가를 편견 없이 바라보나요?"


20일 개봉한 영화 '69세'(감독 임선애)는 관객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노인 성폭력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노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인 효정에 대한 편견은 아프고 쓰다. 온몸으로 편견을 마주한 효정은 끔찍한 일을 겪고서도 강인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효정은 관록의 배우 예수정을 통해 비로소 완성됐다.


20일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예수정은 "약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 무례한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아픔이 잘 담겨 있었다. 소재와 효정이라는 인물 모두 현실적이었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큰일을 겪은 효정은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하나씩 풀어나간다. 과거가 생략된 효정을, 배우는 어떻게 해석하며 연기했을까.


"효정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굳이 풀어내지 않아서 좋았어요. 어떤 인물이든, 다 거기서 거기라고 판단했거든요. 효정은 무례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뎌낸 인물인 것 같았어요. 효정이 같은 약자가 다치지 않으려면 사회를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임선애 감독은 2013년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관련 칼럼을 읽은 뒤 이야기를 기획했다. 이후 예수정과의 소통과 협업을 거쳐 영화의 주제를 확장했다. 예수정과 작업에 대해선 "60년 넘게 살아온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건 수치심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다. 나를 약한 존재라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무시한 것에 화가 난다"고 수치심에 대해 짚어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영화 영화 '69세' 예수정.ⓒ엣나인필름

예수정은 "임 감독이 효정이를 위로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꼈다. 마지막에 고백록 장면처럼 강하면서 시원한 에피소드들이 좋았다. 효정이 속박에서 풀려나는 마음을 세련되게 연출했다"고 감독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영화는 효정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짚으며 "당신은 누군가를 편견 없이 바라보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네"라고 바로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지각색의 인물을 간접 경험한 배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의 한 행동을 보고 편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내 반성하고요. 그래도 연기 활동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졌어요.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일은 수행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지 발견하려고 애쓰죠. 저도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성찰합니다."


한국 사회는 나이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고령사회로 접어들었어도 노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기도 하고, '나이 듦'에 대해 부정적이다. 예수정은 "성장을 향한 발걸음은 특정 세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대의 물결은 전 세대에서 흐르고, 자연스럽게 진화하고 있다. 서로 위로하려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노인들 스스로 위축시킨다. 예수정은 노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아이들인데 아이들의 양육은 누가 하죠? 부모가 맞벌이를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게 됩니다. 근데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아이들이 자란다면 어떨까요?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요."


영화 영화 '69세' 예수정.ⓒ엣나인필름

올해 연기 42년차인 예수정은 1979년 한태숙 연출의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을 오가며 활동한 그는 영화 '부산행'(2016)을 통해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고, '신과 함께-죄와 벌'(2017)에서 진한 모성애를 보여줘 천만 관객을 울렸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채롭다. '톱스타 유백이'(2018)에선 깡순 할머니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에선 카리스마 있는 대기업 총수로 분했다. 시네마틱 드라마 'SF8' 시리즈 '간호중'에서 수녀 사비나 역을 소화한 그는 방송 예정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도 출연한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 기념작인 연극 '화전가'에선 주인공 김씨 역을 맡았다.


예수정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배우는 그 모습을 확 찢어서 보여줘야 한다. 작품을 선택할 때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이 담긴 작품을 택한다. 시나리오를 보면 본능적으로 느껴진다"고 미소 지었다.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희곡에 강한 매력을 느끼며 연기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연극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거나 사회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을 관찰하는 과정이 암호 풀이처럼 다가왔다. '나도 한 번 암호 풀이를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연극에 푹 빠졌다.


"연극을 하기 전에 저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어요. 연극을 하면서 문학적인 단어를 입으로 뱉었는데 시원하더라고요. 이후 다시 돌아오는 언어들이 딱딱한 뇌를 부드럽게 해줬고요. 배울 게 참 많았죠."


연극,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활약 중인 그는 "영화는 많은 관객과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담긴 장르이며, 드라마는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이뤄졌다. 공연은 관객들이 편집자 같은 역할을 한다. 서사를 읽어내기 때문에 무대에선 관객들과 능동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고 각각의 매력을 설명했다.


다채로운 옷을 입고 40년째 연기라는 한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연기를 하다 보면 살면서 궁금했던 부분을 간접 경험하게 돼요. 재밌는 작업이죠. 다양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배움의 연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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