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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하드보일드’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8.13 15:20 수정 2020.08.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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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조건을 바꾸려고 애쓰지만, 오히려 일이 꼬이거나 가혹한 시련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빤한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럴 때면 답답한 마음에 목이 멘다.


최근 ‘하드보일드’(hard boiled)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계란은 삶을수록 단단해진다’는 뜻이지만 문학에서 철저히 판단을 배제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스타일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간결하고 무감각하며 냉철하고 비정한 하드보일드 소설을 발표했고 영화에서도 이를 차용했다. 먹을수록 목이 메는 계란 노른자가 퍽퍽한 세상의 법칙과 닮아서 그랬던 건 아닐까?


하드보일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흥행몰이가 무섭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 시기지만 개봉 1주일 만에 관객동원 250만 명을 돌파했다. 앞서 개봉한 영화 ‘반도’의 200만 돌파 시점보다 빠른 속도이며,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올해 최고 흥행작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두 번째다.


영화의 줄거리는 일본 도쿄에서 청부살인 업무를 끝낸 암살자 인남(황정민 분)은 이번 일을 끝으로 은퇴하려 하지만 죽은 야쿠자의 동생 레이(이정재 분)가 등장해 인남을 쫓는다. 인남은 옛 애인 영주(최희서 분)가 죽고 그의 딸이 납치됐다는 소식에 태국으로 건너가지만 결국 레이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범죄액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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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혹하고 무감정한 태도로 진행된다. 말보다는 몸짓, 눈빛으로 말한다. 때문일까, 영화는 단순한 플롯과 익숙한 서사, 캐릭터도 평범하다. 배우들의 대사, 감정도 배재돼 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과 견줄 만큼 어려운 코로나 시대가 하드보일드 영화를 재등장시켰다. 관객들은 무미건조한 영화 속에서 현실에 공감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하드보일드 영화의 특징을 빛낸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호흡은 물론 이정재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스크린을 압도한다.


비정한 세상에 대한 은유는 독특한 색감과 세련된 영상미로 대신한다. 홍원찬 감독은 한국, 일본, 태국 등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이국적인 모습을 스크린으로 담았다. 우울한 킬러의 삶을 일본에서는 검푸른 회색빛으로 담았고 구원을 의미하는 태국에서는 콘트라스트가 높은 노란빛 색감으로 표현했다. 추격신, 총격신, 카체이싱에서 다양한 앵글과 스펙터클한 촬영으로 다채로운 영상을 만들었다.


불필요한 수식을 제거하고 거친 묘사를 다룬 하드보일드 영화는 남성관객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폭력적인 주제로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다루며 비정하고 냉정한 세계를 그리다 보면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범죄, 느와르, 하드보일드 등 일련의 영화 대부분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는 이유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그런 장면 대신 사운드 효과와 스크린의 색감을 통해 표현해 관객층을 넓혔다. 특히 여성관객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비록 남성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관객층을 넓히기 위한 감독의 전략적인 선택이 돋보인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이다. 8월이면 극장가는 최대 성수기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외화는 물론 한국영화도 맥을 추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경기침체시기에 예술계는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을 탄생시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새로운 장르 선택과 배우들의 열연이 어울려지면 코로나 사태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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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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