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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를 기둥 삼을 수는 없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6.24 09:00 수정 2020.06.22 17:58

북한, 어떤 큰 변화?·미국, 대선 정국·한국, 승리에 취해 큰소리

‘국민의 의욕상실’…‘6. 25 한국전쟁’이후 경제활동 동기부여 결여

‘건전한 정치리더십 부재’…수준 이하 정치인들만 양산하고 활개

국회의사당이 짙은 안개속에 빠져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의사당이 짙은 안개속에 빠져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여당은 기고만장이지만, 나라는 내외로 온통 난리다. 안으로는 군사독재정부에서나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정치적 일방통행’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 여·야가 바뀌었다면 큰 사달이 났을 상황인데, 정치권, 언론 모두 조용하다. 그러니 당연히 국민들도 ‘그러려니’하는 것 같다. 코로나사태에 후속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여야싸움’에 신경을 쓸 경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코로나와 경제위기를 앞장서 극복해야 할 주체인 정치권의 건강에 관한 문제다. 만약 정치권이 이 위기를 각자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치부를 숨기기 위한 기회로 삼는다면, 더욱 가공할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밖으로는 ‘북·미간 대북제제 갈등’, ‘미·중간 경제 갈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그 중간에 낀 우리 신세는 변함이 없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면 더욱 옥죄어오는 ‘덫과 골무’같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에 어떤 큰 변화가 있는 거 같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는 대선에 정신이 없고 한국정부는 총선승리에 취해 큰소리만 칠 뿐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북한발 급변사태가 벌어진다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종종 나라는 집에 비유된다. 보통 한옥집을 지을 때 까지 중시되는 과정이 ‘상량식(上樑式)’이다. 이날은 공사를 중지하고 동네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연다. ‘집의 존재’를 선포하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상량식’은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이다. 집은 이쯤 되면 골격이 완성되고 마무리만 남은 상태가 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과 마룻대다. 수직과 수평의 기본골격이기 때문이다. 기둥이 부실하거나 마룻대가 썩었다면 외부의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진이라도 날라 치면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여기에 비해 서까래는 필요하면 언제나 바꿀 수 있는 부차적 요소다.


그런데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기둥과 마룻대’보다 화려한 외양에 치중하는 것이 세태인 것 같다. 결과는 ‘부실공사’고, 경우에 따라서는 큰 참사를 만들기도 한다. 외부에 화려한 기와를 올리고 내부로는 서까래를 멋스럽게 노출시켰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둥과 마룻대의 취약점을 감출 수는 없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지다. ‘산업경쟁력’과 ‘성장동력’이 국가라는 집의 기둥이고 마룻대다. ‘분배’는 그 결실을 골고루 나눌 수 있게 도와주는 서까래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어떤가? ‘산업경쟁력’과 ‘성장동력’은 60년대 산업화 이후 최악이다. 더욱 위태로운 것은 ‘국민의 의욕상실’이다. ‘6. 25 한국전쟁’이후 이렇게 경제활동에 동기부여가 안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능한 정치권은 국민에게 마약을 투여하고 있다.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한 포퓰리즘이 경제의욕의 빈자리를 채운다. 겉으로는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그 포퓰리즘은 어김없이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동원된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강탈하고 주머니에 없으면 국민의 이름으로 꾸어서 국민의 입에 넣어주는 형식이다. 국민이 극렬 저항하면 아직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는 미래세대에 그 부담을 떠넘긴다.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등록금반환’ 등 온갖 현금복지에 설득력 있는 재원조달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공범이다.


이런 현상은 본질적으로 ‘건전한 정치리더십 부재’에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에서 기둥이나 마룻대를 만들지 못한지 오래다. 최근에는 수준이하의 정치인들만 양산하고 있다. 나름 크기와 재질이 되는 재목이 나와도 수많은 도끼와 장도리가 난도질을 해 고만고만한 서까래를 만들어 버리기 일쑤다. 정계에 갓 진출한 유명하고 싹수있는 정치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살이 패이고 다리가 부러지는 처지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고도 조금이라도 싹수가 남아있으면 사정없이 불구덩이에 처넣어 버린다. 그래야 스스로의 왜소함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여야도, 언론도 대동단결한다. 그래서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정치리더십 구도는 국가적 폐해를 배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여야를 막론하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가치를 생산해 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돈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땡깡’으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당연히 ‘퍼주기’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 자신들의 실속을 채우는 것(일명 ‘삥땅’)은 물론이다. 배우고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고, 그 자체가 그들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고속성장시대에 이들은 나름 역할이 있었다. 마구 달리려는 폭주열차의 브레이크 역할이다. 때로는 잠시 쉬며 방향을 바로잡고 내부를 추스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그 효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엑셀을 밟아야 할 때는 브레이크만 계속 밟고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냉전시대가 만들어 낸 기적이다. 경제성장은 물론이고 괄목할 만한 민주화도 이루었다. 체제경쟁에서 내외에 보여줘야 할 모범사례가 필요했던 자본주의진영이 최상의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던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차이는 정치체제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마치 행태주의 연구에서 쌍둥이가 각광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제사회에서 같은 조건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은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후진적인 독재체제와 낙후된 경제를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이런 극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게도 한반도의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자 북한체제를 흠모하고 대한민국의 성공을 부정하고 있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가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의 후퇴’임에 틀림없다.


지난 주일(6월 21일)은 절기로 ‘하지(夏至)’였다. 낮이 제일 긴 날이다. 그러나 태양의 영광은 언젠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음양의 원리이고, 천지의 섭리다. 우리사회의 자기파멸적인 풍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국민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사조나 세력은 바닥을 찍으면 다시 올라오고 천정에 부딪치면 내려오기 마련이다. 국민이 바닥이고 천정이다.


그러나 조급해하면 안 된다. ‘하지’이후에 극한 더위가 찾아온다. 더위는 궁극적으로 태양의 위치에 달려있는데, 체감할 수 있는 변화에는 일정한 시차가 있다. 이때는 땡볕에 맞서기를 쓰기보다, 자중자애하며 더위가 꺾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추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나라, 정치세력도 그렇지만, 개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힘을 낭비치 말고, 정치권에서 대들보 역할을 할 사람을 찾아 키워내야 한다. 그것이 내실을 다지는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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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우석 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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