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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의 보수 커밍아웃에 주목하자

  • [데일리안] 입력 2020.06.03 08:40
  • 수정 2020.06.03 08:30
  • 데스크 (desk@dailian.co.kr)

표창원과 이용수 할머니는 보수당으로도 올 수 있었던 사람

보수우파 정체성 고수하되 큰 사건 관련 입장과 태도 고쳐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0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0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사실 그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하다.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드문드문 기사를 접해 왔던 사람이라 어떤 강도로, 얼마나 진지한 고백을 했었는지는 몰라도 지난 인터뷰 기사들 속에 의원 초창기 시절 그런 말을 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보수당이 참패해 재건에 나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언론에 난 그의 일종의 리바이즈드 커밍아웃(개정판 신상 공개)은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다.


경찰대 교수 출신의 전 의원 표창원은 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집안 내력과 출신 지역 등을 소개하며 "보수적인 피와 환경에 푹 절어서 살아왔다"면서 "어머니는 내가 국정원 댓글 사건 때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자 사흘간 앓아 누웠다"라고 고백했다.


필자는 그의 이 말을 읽고 사흘 동안 그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흘간 앓아 누운 그의 어머니는 한국의 보편적인 보수 지지자요, 표창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에 걸어 들어가 국회의원이 된 이유가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랬다.


그는 "민주당에 전혀 관심과 상관이 없던 내가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보수가 나를 비롯해 나와 유사한 사람을 밀어낸 거다. 보수의 자기 파괴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국 사태로 민주당에 환멸을 느끼고 그후 그쪽으로부터 배신자로 공격 받아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으나 그는 이번 4·15 총선에서 불출마를 했고, 전 의원 신분으로 변한 5월 말에는 보수주의자로서 한국 보수당의 패착을 지적했다.


말하자면 당시 보수당이던 새누리당이나 자유한국당은 표창원 같은 사람을 제발로 내찬 것이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냐고 묻는다면, 본질을 피하는 질문이다. 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어떤가. 이 할머니는 윤미향 사태 과정에서 2012년 본인이 직접 국회의원이 돼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을 품고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타진했던 것으로 보도됐고, 본인도 이를 시인했다.


윤미향 사태에서 보여 온 이 할머니의 이미지는, 그녀가 비판하는 윤을 옹호하는 당이 민주당이고 그녀를 지원하며 윤을 국회에서 퇴출하는 운동을 벌이겠다는 당이 보수당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온전히 보수당원이다. 상식적이고 애국적이고 보수적이어서 그렇다.


한국 보수당이 표창원이나 이용수 할머니를 품지 못하고 상대 당의 문을 두드리도록 한 것은 그들의 이념이나 표방하는 가치, 정강정책이 잘못되어서가 아니었다. 이미지 때문이었고, 더 직접적으로는 그런 이미지를 보여 온 당 지도부와 주요 의원들의 큰 이슈가 터졌을 때의 입장과 언행 태도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5·18이나 세월호 같은 대형 이슈가 한국 보수당의 사활을 가른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보수당(곧 당명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통합당) 안팎의 주요 인사들이 말하는 걸 들어 보면, 이렇게 당의 사활을 결정한 소프트 웨어 대신 쓸데없기도 하고 무분별하기까지 한 하드웨어를 바꿔야 한다는 집착이 엿보여 염려스럽다.


이 당 비상대책위원회 수장으로서 1일부터 집무실에 앉은 김종인은 며칠 전 비공개 특강에서 의원들에게 "진보,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고 중도라고도 하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진의는 "보수를 자처해도 보수답지 않으면 거짓 보수이고, 보수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보수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면 그게 진짜"라고 한 그의 다음 말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8년 전 새누리당에 영입됐을 때 주장했던 당 강령에서 '보수'를 삭제하는 등의 '자해' 조치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보수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여야 옳다.


1일부터 야인으로 돌아가 언론의 조명을 받은 중진 중의 한 명인 전의원 김무성도 "나는 이제 보수도 우파도 아니다" 라고 선언했다. 그럼 뭐란 말인가. 자신과 당의 정체성을 잊어선 안되는데, 보수나 우파가 열등 집단이라도 되는 듯한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다. 오히려 당당해야 한다. 당당한 가운데 소통하고 소신 있게 옳은 일을 해나가야 사람들이 평가하고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당은 리퍼블리컨(Republican, 공화주의자)이라 불린다. 이들이 열등 집단인가. 이 당이 낳은 최초의 대통령은 링컨이다. 노예제 확대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세워진 166년 역사를 가진 당으로 후버, 아이젠하워, 레이건 현재의 트럼프까지(민주당에 비해 이름이 없고 인기가 낮은 이들이 많긴 하다.) 링컨 이후 32명 중 18명을 배출했고, 상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미국 공화당의 '미국 보수주의'는 더 낮은 세금, 자유 시장 자본주의, 이민 제한, 군비 지출, 낙태 제한, 탈규제, 노조 제한 등이 핵심이다. 국민 선호가 바뀐다고 해서 당의 정체성인 이것들을 하루 아침에 민주당 것으로 바꾸진 않는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 기반은 남부, 농촌, 남성, 백인, 기독교인 등인데, 이것이 잘못됐으니 표의 확장성을 위해 당명, 당색은 물론 정강정책까지 모조리 바꾸자는 공화당 의원은 없다.


한국 유권자들의 낙인 의식과 유행 편승 경향이 워낙 강하니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면 캐나다나 유럽 국가들처럼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으로 신장개업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원색 우파에서 회색(중도) 우파로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보수 가치와 철학을 대변하면서도 실시간 시대정신으로 무장, 김종인 말대로 '모든 부분에서 시대 변화와 함께 국민에게 다가가는 진취적인 정당'이 되면 미래가 보일 수 있다고 본다.


당명에 '미래'를 넣고 당복으로 난데없는 빨강 점퍼를 입는다고 표가 오지는 않는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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