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박영국의 디스] 車 개소세 인하, 항생제 남용이 가져온 부작용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06.01 07:00 수정 2020.05.31 20:10

3.5%→5%→1.5%→5% 한 해에만 세 차례 개소세율 변경

최대 143만원 인하에 내성 생긴 소비자, 개소세 환원시 지갑 닫을 듯

슬기로운 의사는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는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송 캡처. 슬기로운 의사는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는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송 캡처.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투여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항생제는 구세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의사들은 항생제 처방을 최대한 자제한다. 왜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강력한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바로 지난 3월부터 적용된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이다.


항생제의 효과는 매우 좋았다. 5%였던 개소세율을 1.5%까지 70% 감면(최대 100만원 한도)하고, 여기에 연동되는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부담까지 낮아지면서 자동차 가격이 최대 143만원이나 싸지니 소비자들의 구매가 오히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하지만 일몰 기한인 7월이 다가오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 사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됐으면 좋았겠지만 한동안 줄어들던 감염자는 다시 확산 추세고, 긴급재난지원금과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며 3차 추경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세수 출혈을 언제까지고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개소세를 이전 5%로 되돌리자니 자동차 업계가 심한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불과 며칠 차이로 100만원 넘게 비싸진 자동차를 흔쾌히 살 소비자는 많지 않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한 상태에서 내수까지 막히면 완성차 업체들은 가동률을 줄일 것이고, 그 밑에 딸린 수천 개의 중소 부품 협력사들은 고사 상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원죄는 정부에 있다. 개소세 70% 감면이라는 강력한 처방이 즉효를 냈을 때는 좋았겠지만 그로 인해 내성이 생긴 상태에서 처방을 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3.5%였던 개소세를 1~2월 5%로 환원했다가 3월 다시 1.5%로 크게 내리는 등 오락가락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


소급적용 없는 급격한 개소세 변동으로 5%의 개소세를 온전하게 낸 소비자만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극도로 부정적인 학습효과가 발생한 상태에서 다시 5%의 개소세를 내고 차를 살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자동차는 신규 수요보다는 교체수요가 훨씬 많다. 구매 시기를 조정해도 큰 문제가 없는 내구재인 만큼 구매 조건이 좋지 않다면 시기를 미룰 수도 있다. “저러다 또 언젠가 내리겠지” 하는 심리가 반영될 여지가 크다.


더구나 개소세 감면 대상이 되는 차량 구매 시점이 ‘계약’이 아닌 ‘출고’ 기준인 관계로 정부가 개소세 인하 연장 방침을 내놓지 않는다면 당장 이달 판매부터 비상이 걸리게 생겼다.


주요 인기 차종은 계약부터 출고까지 한 달 이상 걸린다. 서둘러 계약해도 7월을 넘길 가능성이 높으니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소비자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항생제 처방을 자제하는 것은 항생제를 자주 투여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오히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항생제를 투여하더라도 환자의 증상과 체질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하고 투여량도 최소화한다.


하지만 정부는 자동차 업계에 성급하게 지나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해 항생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개소세 인하가 불가피했더라도 일몰 이후의 충격을 생각해 정도껏 했어야 했다.


앞으로도 계속 항생제를 투여하느라 재정을 바닥내건, 항생제를 끊어 내성이 생긴 자동차 업계를 고사 상태로 만들건, 선택의 결과는 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슬기로운 의사는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회의 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개소세를 인하할 수 있는 한도를 30%로 제한해 놓은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