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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재건의 길-中] 청년 표심 향한 청년정치인 전진배치 딜레마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5.03 05:00 수정 2020.05.03 04:49

"청년 내세우면 청년들이 지지할 것?…나이브"

청년대표 내세우더라도 절차·결과 '공정'해야

'무직 32세 시의원 당선 소동' 타산지석 삼아야

황교안 전 대표와 청년당원들이 지난 2월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2020 국민 앞에 하나'에서 당 강령 전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황교안 전 대표와 청년당원들이 지난 2월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2020 국민 앞에 하나'에서 당 강령 전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가 끝난 뒤, 한 기초의원 당선인을 놓고 온라인 공간이 발칵 뒤집혔다. 사회경력이 일천한 32세 무직자가 충북 제천시의원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자신의 대표경력란에 충북 제천의 한 사립대 동아리연합회장과 한 법무법인의 사무주임을 기재했다. 논란을 다룬 기사는 포털사이트 댓글이 1만3182개가 달리는 등 뜨겁게 달아올랐다.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당 충북도당은 "여성이고 청년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으며, 당사자는 "(직업란에) 정당인이라고 써야할 것을 무직으로 기입해서 논란이 확산됐다"고 해명했다.


이같은 소동은 '청년정치'가 처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청년들은 '공정'을 중시한다. 결과 뿐만 아니라 절차에서부터 공정할 것을 요구하는 게 시대정신이다.


4·15 총선 참패 이후 미래통합당 내에서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해 청년들을 전진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초조함이 청년감수성이 부족한 보수정당 '어르신'들이 임의로 청년들을 갖다꽂는 '꽃꽂이'식 청년정치인 배치로 귀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당 관계자는 "'공정'을 중시하는 젊은층의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몇몇 청년정치인들을 얼굴로 내세우고 '이들이 너희 청년들의 대표'라고 한다면,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고 청년층의 표심을 산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뭣보다 청년을 내세우면 같은 청년들이 어련히 지지해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 나이브(안일)하다"고 꼬집었다.


총선 참패 이후 범보수 진영 내의 청년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취업을 고민하고 취업한 뒤에도 불안한 고용 관계에 시달리며 혼인·출산·육아 3중고에 신음하는 가운데 각박한 사회생활을 하는 같은 청년 세대의 삶과는 동떨어진 길을 걸어온 인사들도 있다. 일찌감치 전업정치의 길을 선택한 '청년'에게 같은 청년들이 얼마나 공감을 느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보기에 '젊은데도 생각이 반듯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는 이유로 마음에 드는 청년을 내세웠다가는 젊은층의 냉소를 살 수 있다"며 "생물학적 연령에 한정짓지 말고, 생각이 젊고 보수정당답게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보수정당의 젊은 인재 발탁 사례 분석해야
"'선거 지더니 막 던지는구나' 인식 사면 실패"
보좌진·사무처 등 내부 젊은 자원 적극 활용해야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카페에서 '청년×(곱하기) 비전+(더하기)' 청년정책비전을 발표하기 전 참석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카페에서 '청년×(곱하기) 비전+(더하기)' 청년정책비전을 발표하기 전 참석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와 관련해, 과거 보수정당이 잘나가던 시절 보수정당을 선택한 젊은 정치인들의 사례를 분석해볼 필요도 있다.


A는 33세에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집단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일조권의 개념을 정립하며 환경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얻었다. A는 39세에 보수정당을 선택해 국회에 등원했다.


B는 대학 재학 중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구류를 살고 세관공무원인 부친까지 실직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학생운동 경력이 문제가 돼 판·검사 임용에서 배제됐다. B는 변호사 개업을 한 뒤, 부산 민변 창립 등에 관여했다. 이 시절 국내 몇 안 되는 유학파 해상법 전문 '국제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며 문재인 대통령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B는 이후 45세 때 보수정당을 선택해 국회에 등원했다.


C는 행정고시 재경직렬에 합격해 경제부처 젊은 사무관들 중의 필두로 두각을 나타냈다. 행시 동기 중 가장 먼저 과장을 단 C는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39세 때 과천을 등지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39세 때 치른 첫 선거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4년 뒤인 43세 때는 보수정당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등원했다.


모두 30~40대로 나이가 젊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스토리와 함께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 분야에서 이뤄낸 게 뚜렷하다. 통합당 관계자는 "청년의 표심을 사겠다고 아무나 내세워서 되는 게 아니라, 시각이 까다로운 요즘 젊은층이 보기에도 누구나 인정하고 지지하기에 부끄러울 게 없는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며 "'저 당이 선거에서 몇 번 지더니 이제 막 던지는구나' 이런 식으로 인식되면 아니하느니만 못하다"고 강조했다.


A·B·C의 경력으로 볼 때, 지금이라면 과연 이들이 보수정당 미래통합당을 정치 입문의 통로로 선택했을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통합당 내의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들어올 수 있는 정당이 되는 게 실질적으로 당이 '젊어지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청년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외부 단체를 기웃거릴 게 아니라, 내부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의회민주주의·정당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보수정당 의원들이 정작 청년 인재를 수혈할 때에는 외부 단체에 의존하려 한다"며 "의원실 보좌진, 사무처 당직자 중에서도 훌륭한 청년들이 많이 있다"고 일깨웠다.


4·15 총선을 앞두고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에서는 의원실 보좌진과 사무처 당직자 출신을 우대하겠다며 경선 가산점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전략공천·단수공천·제한경선 등이 남발되면서 정작 경선에 올라간 후보가 거의 없어 의원실 보좌진·사무처 당직자 경선 가산점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이번 중도보수대통합 과정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당에 들어와 공천을 받았다가 감표(減票) 효과만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청년정치인의 전진 배치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당 안팎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검증이 된 인사의 발탁이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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