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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⑩] '지피지기'의 김병준, 역량 살릴 기회 돌아올까

정도원 기자
입력 2020.08.07 06:00 수정 2020.08.07 06:00

"사람이라 외치십시요, 국민이라 외치십시요"

2년전 빗속연설…지금 국민들의 마음 속 울려

노무현 정책실장·세종 설계자…정권 속내 훤해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미래통합당 당헌 제73조는 대선 240일 전부터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받도록 규정한다. 20대 대선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역산하면 통합당의 대선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7월 12일부터다. 우리나라 적통(嫡統) 보수정당의 대권 레이스가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최근 통합당 내에서는 흥행과 감동, 확장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선후보 경선을 하자는 논의가 물밑에서 한창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처럼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류로 볼 때 대선후보 경선 일정이 당헌에 정해진 것보다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김병준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이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2018년 8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병준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이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2018년 8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사람이라고 외치십시요, 국민이라고 외치십시요!"


장대비가 쏟아지던 2018년 8월 29일 광화문광장, 현 정권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항의해 모인 3만여 명의 소상공인 앞에서 김병준 당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외쳤던 말이다.


당시 김병준 위원장은 "이 정부가 포용적 성장을 하겠다고 한다. 사람 중심의 경제를 하겠단다"면서도 "여러분들도 사람이고 국민인데, 왜 여러분은 포용하지 않는가. 왜 여러분을 위한 경제는 없는가"라고 연설했다.


현 정권이 국민을 끝없이 갈라쳐 다수에 영합하고 소수는 적으로 돌리며, 오로지 선거 이길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권 4년차가 된 지금에 와서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출범 2년차에 이토록 현 정권의 본질을 정확히 궤뚫고 국민들에게 호소한 연설은 없었다.


지난 1일 청계천에서 열렸던 조세 저항 집회에서 한 참석자는 연단에 올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민을 위한다는데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라더니 "문재인 내려와"를 연신 외치며 절규했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 '증세 폭탄'에 분노해 "나는 국민이 아니냐"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김병준 위원장은 2년전 이미 답을 했다.


김병준 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이 현 정권의 속내와 수법에 훤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지방분권 분야를 선도적으로 개척한 학자 출신인 김병준 위원장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90년대초부터 깊숙이 교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김 위원장을 가리켜 "정치를 하는 동안 꾸준히 정책자문을 해준 유일한 교수"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김 위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교류는 2002년 대선에서 김 위원장이 대선 캠프 정책자문단장을 맡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우면서 꽃을 피웠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중용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각종 회의에 함께 했다.


이른바 '친노 좌파'의 속내와 수법에는 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는가. 통합당의 많은 의원들이 최근에도 "김병준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메시지에 울림이 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김병준 비대위'를 원내에서 겪지 못했던 초선 의원들 중에서도 "김병준이 참 괜찮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아쉬움'이란 김병준 위원장이 원내로 들어오지 못한 것을 말한다. 김 위원장은 4·15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세종에 공천이 확정됐다. 대구 수성갑과 서울 종로 등 여러 상징성 있는 곳이 물망에 오르다가 막판에 결론이 났다.


김 위원장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당시 한 재선 의원은 세종이 너무 험지 아니냐는 물음에 "그러니 공천을 받은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냈다. 홍준표·김태호 무소속 의원 등 야권에서 잠재적 대권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인사들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공천도 맥락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통합당 의원은 "당시 당대표는 '김병준 비대위' 시절에 한국당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언론 보도에 상당히 예민했다"고 회상했다.


세종에서 낙선한 뒤로 김병준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이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세종으로 출마하면서 다른 '잃은 것'도 생겼다. 2018년 지방선거 때 김병준 위원장은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 거론됐다. 통합당 관계자는 "박원순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보궐선거가 열리지만, 지금은 김 위원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하는 사람이 없다"며 "세종에 터잡은 마당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간다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종 출마에서 정치적 손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흐려졌던 '세종의 설계자' 위상이 총선을 치르면서 선명해졌다.


'수도 이전' 화두가 다시 살아난 상황에서 큰 자산이다. 김병준 위원장이 세종에서 총선에 재출마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세종시당위원장을 맡은데에는, 자신의 컨텐츠인 국가균형발전을 확성할 '스피커'로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선쟁점 '수도 이전' 맞부딪칠 상징·역량 있어
경제·부동산은 물론 교육 문제도 정책역량 탁월
나이와 과단성 부족은 상대적 약점으로 거론돼


김병준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이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지난해 2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27 전당대회에서 후임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대표에게 당기를 건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병준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이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지난해 2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27 전당대회에서 후임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대표에게 당기를 건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대선 전략은 PK 출신 대권주자를 내서 호남의 절대적 몰표를 받는 가운데 PK의 일부 표를 깨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드루킹 대선 불법댓글 여론조작 사건'과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민주당이 PK 후보를 자칫하면 못 낼 상황에 처했다.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 전략이었던 '호남~충청 벨트'를 복원해야 한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대신 충청표를 당겨올 카드로 '행정수도 이전'만한 게 없다.


한 통합당 충청권 의원은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고 각종 법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키는 민주당이 유독 '수도 이전'만은 여야 합의를 내세우고 특별법을 강조하는 속내가 무엇이겠느냐"라며 "행정수도 문제를 대선 때까지 해결하지 않고 끌고가면서 야당이 '발목' 잡는다고 충청인들 앞에 선동하려는 전략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는 "(수도 이전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약으로 내걸라"고 맞서고 있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서는 유효한 전략일 수 있겠지만, 2022년 대선까지 고려하면 득실이 불분명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수도 이전은 보수 진영이 그 앞에서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질 화두는 아니다"라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김병준 위원장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부딪칠 상징성도 있고 역량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경북 고령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나왔다. 통합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TK 출신이지만 보수 색채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하지 않고, '세종의 설계자'로서 충청 표심도 포섭할 수 있다.


현 정권의 '입법독재' 폭주 속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외쳐온 김 위원장은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경제·부동산 문제는 물론 윤희숙 통합당 의원이 쟁점으로 지목한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정책적 역량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책실장 뿐만 아니라 노무현정권 시절 교육부총리에도 임명됐다.


보수 진영에 현재 당을 장악하고 있는 '보스'가 없으며, 전력(前歷)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풍토라는 점도 유리한 요소다. 김병준 위원장의 통합당내 세력이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세(勢)가 있는 사람도 없다. 총선 참패로 당이 '리셋' 되면서 비주류인 유승민 전 의원의 세가 가장 강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통합당 관계자는 "김부겸 전 의원은 '변절해서 온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친문(친문재인)에 구차스러울 정도로 구애하고 있으나, 그런다고 해서 김 전 의원이 친문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보수 진영은 그런 측면에서 훨씬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총선 이후 세종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고, 청년들과 독도를 다녀오는 등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고 있는 김병준 위원장은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며, 대권행보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병준 위원장의 약점으로는 나이와 과단성 부족이 꼽힌다.


김 위원장은 1954년생으로 이른바 '야권 잠룡' 중 홍준표(53년생) 무소속 의원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황교안 전 대표·유승민 전 의원 등 같은 50년대생은 물론 오세훈 전 서울시장·윤석열 검찰총장·김태호 무소속 의원·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경원 전 원내대표·홍정욱 전 의원 등보다 연상이다.


나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수로 보고 정치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세종에 총선 재출마 생각이 없다고 거듭 말하는 것도 2022년 대선까지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결정적 순간에 과단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끌었던 비대위의 끝마무리가 허술했다는 말이 나온다.


후속 지도체제로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한 것은 '황교안 체제'를 불러들였다. 단일지도체제로 대권주자들이 총선 공천권을 욕심내게끔 해놓고서 "당대표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황교안 체제'가 4·15 총선을 그르치면서 '김병준 비대위'의 성패마저 함께 휘말려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통합당의 한 중진의원은 "그 때 김병준 위원장이 자신이 책임을 지고 과단성 있게 집단지도체제를 결단했다면 어땠을까"라며 "늘 조심조심한다는 평이 있는데, 큰 정치를 하자면 조금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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