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韓-日 경제연대, 선택 아닌 생존”…AI·에너지·저출산 ‘빅텐트’ 제안
입력 2026.06.09 16:30
수정 2026.06.09 16:30
닛케이포럼 첫 한일특별세션
최태원 “한일, 룰 메이커로 도약해야”
에너지·AI·저출산 공동 대응 강조
양국 정부에 상설 협력 플랫폼 제안
최태원 SK그룹 회장ⓒ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경제협력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으로 규정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에너지 공급망 불안, 저출산·고령화 등 양국이 동시에 마주한 구조적 위기 속에서 한일경제연대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는 메시지다.
최 회장은 9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에 참석해 “한일 협력은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실행력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일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고 SK와 최종현학술원이 기획했다. ‘견고한 한일관계를 뒷받침하는 다각적 경제협력’을 주제로 열린 첫 한일특별세션으로, 양국 정·재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기조연설에는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와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나섰다. 기시다 전 총리는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양국 관계를 위해 공급망, 에너지, AI 분야에서 경제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은 세계적 격변기에 서로의 손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날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고문, 가토 마사히코 미즈호은행 행장과 ‘복잡해지는 국제정세 속 한일의 지향점’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그는 지난해 처음 제시한 한일경제연대 구상의 필요성이 더 뚜렷해졌다고 짚었다.
최 회장이 주목한 위기는 크게 세 가지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구조적 저성장, 관세장벽과 수출통제로 흔들리는 자유무역 질서,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과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다.
개별 기업이나 한 나라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만큼,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한일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룰 메이커(Rule Maker)’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기존 교역을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에너지·AI·저출산 대응 등 미래 산업과 사회 문제의 규칙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중동 이외 지역의 에너지 공동개발, 첨단소재와 대체 배터리 공동연구, 소형모듈원전 등 미래 에너지 분야 협력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양국이 차세대 에너지 기술에서 함께 국제 표준 형성을 주도해야 한다고 봤다.
AI 분야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협상력 확보를 핵심 과제로 들었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따로 움직이면 데이터, 인프라, 표준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데이터 공유, 공동 인프라 개발, 규범 표준화를 통해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중동 이외 지역의 에너지 공동개발과 첨단소재, 대체 배터리 공동연구는 물론,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에너지 분야에 함께 진출해 국제 표준 형성을 선도해야 한다”며 “미국, 중국의 기술 패권 속에서 한일이 규모의 경제와 협상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데이터 공유와 공동 인프라 개발, 규범 표준화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출산 문제도 양국 협력 의제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올해 4월 출범한 ‘한일 저출산 대책위원회’를 언급하며 “민간 차원에서 육아 환경과 기업 문화, 노동시장 구조 등을 함께 연구하고 신속히 실천 모델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최 회장은 양국 정부를 향해서도 제도적 기반 마련을 요청했다. 그는 기업, 학계, 청년 등 사회 각계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협력이 규제와 표준 차이, 정치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도록 상설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두 나라 정부가 기업, 학계, 청년 등 다방면의 협력 의제를 하나로 모으는 상설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서 한일협력 추진의 어려운 점을 선제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빅 텐트’ 형태의 협력 플랫폼을 통해 양국의 다양한 협력 의제를 한데 모으고, 제도적 장애물도 함께 정비하자는 것이다.
일본 경제계 인사들도 최 회장의 구상에 호응했다. 도쿠라 고문은 “두 나라 공통 과제인 에너지 자급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MR 등 차세대 혁신 원전 개발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가토 행장도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액화천연가스 등에서 양국 기업 간 실무 협력을 발전시켜 한일경제연대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션에서는 AI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김완종 SK AX CEO와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고니시 요코 일본 경제산업연구소 수석연구원, 야나세 다다오 NTT 부사장은 미중 AI 패권 경쟁 속 한일 협력의 필요성과 과제를 논의했다. 특히 SK와 NTT의 AI 전환 경험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 제조 AI 등 실질 협력 가능성이 거론됐다.
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CEO는 한일 연대를 통한 경제 공동번영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유혁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는 한일이 함께 주도하는 ‘AI 경제권 클러스터’를 협력 아젠다로 제안했다.
박상규 SK그룹 일본총괄 사장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한일경제연대가 두 나라 생존을 위해 가야 할 길이라는 공감대가 넓혀지고 있다”며 “이번 첫 한일특별세션을 계기로 AI, 에너지, 저출산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두 나라 미래세대가 공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한일경제연대를 구체화하는 데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