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궁 사변 – 왕의 반란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 역사㊲]
입력 2026.06.09 14:01
수정 2026.06.09 14:01
왕은 반란의 목표이자 주체가 될 수 없다.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왕이 허수아비인 경우가 있다. 그리고 허수아비가 자기 권력을 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왕의 반란이라는 기묘한 타이틀이 완성된다. 서기 1170년 보현원에서 시작된 무신들의 반란은 한 세대가 넘게 이어졌다. 반란을 일으켰던 정중부와 이고, 이의방은 서로를 죽고 죽였고, 최종 승자가 된 정중부 역시 경대승에게 목숨을 잃었다. 경대승이 병으로 삼아한 이후에는 조원정과 이의민이 권력을 차지했고, 조원정이 몰락한 이후에는 이의민이 권력을 독점했다. 하지만 최충헌과 그의 동생 최충수가 이의민을 제거하면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
최충헌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동생 최충수까지 제거하는 냉혹함을 보였고, 뒤이어 두경승을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과 장군들도 반역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내거나 처형하면서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임금인 명종까지 쫓아냈다. 명종의 뒤를 이은 임금인 신종은 명종의 친동생이었다. 왕까지 갈아치운 최충헌은 권력의 가장 정점에 선 인물이 되었고, 임금조차 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강화 전쟁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무기 유물들 ⓒ직접 촬영
최충헌은 잔혹한 처형을 남발하면서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집권기에 엄청나게 많은 반란이 일어났으며, 지방의 별초군이 다른 지역을 공격하고, 도적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들까지 벌어졌다. 거기다 그가 부리던 노비인 만적까지 반란을 일으키려고 시도하는 등, 신분 질서까지 어지러워지는 일이 생겼다. 그에 대한 각종 암살 시도도 빈번했다. 최충헌만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실제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김준거와 김준광 형제가 자신을 해치려는 기미가 보이자 체포해서 처형했고, 그들과 연루된 자신의 조카이자 측근인 박진재 역시 불온한 낌새를 보이자 체포해서 발목의 힘줄을 끊어버리고 백령도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이런 잔혹함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진짜 암살의 위협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벌어졌다.
최충헌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허수아비로 내세운 신종이 병이 깊어졌다는 이유로 세자인 큰아들에게 양위를 하고 세상을 떠났다. 왕위에 오른 세자가 바로 고려의 21대 임금인 희종으로 최충헌의 두 번째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팔팔한 20대 초반인 희종은 순순히 허수아비로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측근들과 조용히 최충헌을 제거할 방법을 찾았다. 희종이 허수아비로 지낸지 7년째 되던 서기 1211년 12월, 개경의 서소문 밖 수창궁에 있던 희종에게 최충헌이 찾아왔다. 일을 마친 최충헌이 나가려고 하는데 내시 왕준명이 임금이 최충헌과 부하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을 걸었다.
별다른 의심 없이 따라가던 최충헌과 부하들의 앞 뒤로 갑자기 무장한 승려와 자객들이 나타났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버는 사이 최충헌은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무시당한다. 다급해진 그는 근처의 지주사방으로 숨었다. 칼을 든 승려가 몇 번이나 들어와서 살펴봤지만 최충헌에게는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최충헌의 측근들이 수창궁으로 몰려왔지만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와중에 그를 따라서 궁안에 들어갔던 노영의라는 자가 지붕에 올라가서 최충헌이 무사하다고 외쳤다. 그 얘기를 들은 측근들이 수창궁 안으로 들어가서 최충헌을 구출하고 승려들과 자객들을 물리쳤다. 허수아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희종의 반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최충헌 열전에는 비교적 자세하게 나왔지만 본기라고 할 수 있는 세가에는 아주 짤막하게 나왔다.
내시 왕준명 등이 최충헌(崔忠獻)을 죽이려고 모의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수창궁에서 시도된 최충헌의 암살이 성공했다면 1170년에 시작된 무신들의 집권기는 1211년에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의 역사는 정말 우리가 아는 것과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희종은 아마도 이자겸을 제거하고 왕권을 되찾은 인종처럼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왕의 반란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방심하다가 저승 문턱까지 갔던 최충헌은 겨우 살아난 후에 임금을 시해하겠다는 측근 김약진을 만류하는 놀라운 자제력을 보여준다. 아마 자신이 제거한 이의민이 평생 의종을 시해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은 것을 기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측근들은 남김없이 처벌받았다. 주동자인 왕준명을 비롯해서 가담자들은 모두 유배를 갔는데 최충헌의 성격상 유배지에서 오래 살려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임금인 희종 역시 폐위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처음에는 강화도로 갔다가 나중에는 자연도로 옮겨졌다. 희종을 폐위한 최충헌은 세 번째 허수아비인 강종을 내세웠다. 그는 다름 아닌 최충헌이 쫓아낸 명종의 큰 아들이자 태자로서 강화도로 쫓겨갔다가 얼떨결에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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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