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세계 외교의 메카’로 떠올랐다
입력 2026.05.24 07:03
수정 2026.05.24 07:43
지난 6개월여 동안 베이징 방문한 세계 정상들은 모두 16명
13~15일 트럼프 국빈 방문에 이어 19일 푸틴 訪中 이례적
中, 미·러 동시에 상대하는 ‘초강대국’ 이미지 대내외 과시
美 고립주의적 대외정책에 각국 ‘균형잡기’ 나선 게 주요인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방중 일정을 마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 AP/뉴시스
중국 베이징(北京)이 ‘세계 외교의 심장부’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내로라하는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앞다퉈 베이징을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아 미·중 정상회담을 주최한지 엿새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빈 방문해 중·러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등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을 불러들여 불과 1주일 사이에 연쇄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냉전 이후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중국이 세계 외교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소속 영자신문인 글로벌타임스(GT),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등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두 나라 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한 뒤 양국이 강력한 협력 관계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며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중·러 두 나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회담을 마친 중·러 정상은 미국의 이란 공격을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일본 등 각자의 전략적 이익이 걸린 국제 문제에서 굳건한 지지를 표명한 '중국과 러시아의 전면적 전략 협조의 진일보한 강화와 선린 우호 협력의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서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 분위기를 직접 평가하고 중·러관계를 재확인했을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사실상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미·중관계를 ‘교착 속의 안정’ 상태로 만들었고, 푸틴 대통령이 곧바로 그 공백을 메웠다“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산책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로써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초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고 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서방 동맹의 분열상을 틈타 중국이 글로벌 강대국 관계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미·러 정상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올해 1월에는 스타머 총리도 베이징을 찾는 등 글로벌 외교를 쥐락펴락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 가운데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반년 사이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다.
지난 6개월 간 중국을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인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은 모두 17명에 달한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 이벤트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린 올해 3월을 제외하면 매달 주요국 정상 2~5명이 쉴 새 없이 중국 땅을 밟았다.
미국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 주요국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외에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1월)를 시작으로 메르츠 총리(2월), 유럽연합(EU)의 대표적인 친중 국가인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4월)가 지난해 11월 필리페 3세 스페인 국왕에 이어 한달음으로 베이징을 찾았다.
나토 동맹국 정상들은 방위비 분담 문제와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 지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불협화음을 냈다는 점에서 이들의 베이징행은 한층 더 도드라졌다. 여기에는 서방 진영을 대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 가운데 5명이나 포함됐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아시아 국가들의 방중도 줄을 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시 주석의 방한 후 두 달여 만인 1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베트남 최고권력자인 또 럼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달 7일 권력서열 2위인 국가주석직까지 겸직한 뒤 1주일 만에 중국을 찾아 시 주석을 만나 전면적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더욱이 이란전쟁의 종전회담을 중재하는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23일부터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베이징을 공식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Belt and Road Initiative·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하나인 파키스탄~중국 디지털 회랑 구축 등 두 나라의 전략적 협력 외에 이란전쟁 종전안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알라졌다. 친중·친러 성향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도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중·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G7 중 유일하게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2023년 12월 탈퇴를 선언한 뒤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은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만 빠졌다.
중국이 세계 외교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적 대외정책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각국이 ‘균형 잡기’에 나선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힘입어 중국 정부는 오는 11월 18~19일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더 부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AP/뉴시스
리하이둥(李海東) 중국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우크라이나전쟁과 유럽 안보 문제 등을 둘러싸고 장기간 갈등을 빚어온 미·러 양국이 모두 중국을 ‘필수 방문지’로 삼고 있다”며 “외교사적으로도 한 국가가 두 강대국의 핵심 외교 무대로 부상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국 정상이 동시에 중국과 교류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주요 강대국들의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다”며 “경제회복과 기후 거버넌스, 핵비확산, 지역안보 등 핵심 현안에서 중국 없이 주요 국제 의제를 진전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헤지펀드계 대부’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자도 블룸버그통신에 “미국 동맹국 사이에서 유사시 미국이 끝까지 자국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지고 있다”며 “많은 지도자가 중국을 찾아 관계를 맺는 것은 일종의 ‘조공(tribute) 체제‘로, 중국의 지역 내 영향력과 힘을 인정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연쇄 정상외교의 밑바닥에는 복잡한 중국 대내외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으로서는 일단 부동산 시장 침체와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견조한 수출 증가세 유지와 첨단기술, 대외환경 불확실성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와 함께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 정상을 중국으로 불러들여 국제질서 리더라는 점을 부각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경제·외교 안정 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해석도 낳는다.
ⓒ 자료: 중국 신화통신 등
이런 만큼 중국에서는 이번 연쇄 정상외교를 국제적 영향력 확대의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GT는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안정성과 확실성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실제로 중국은 올들어 미국·러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통칭) 국가 지도자들과의 정상외교도 잇따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중국이 국제 정세 전반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중국의 외교가 순탄하게 전개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은 올해 초 중국과 밀착해온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신속하게 제거하며 중국의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전략에 타격을 입혔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여전히 미국에 뒤처진 상황인 만큼 기술발전에서 미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베이징의 외교가에서는 “중국은 지금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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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