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비장의 카드
입력 2026.04.22 07:07
수정 2026.04.22 08:5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나서며 취재진들과 문답을 주고 받고 있다. ⓒAP/뉴시스
F-15 전투기가 격추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몇 시간 동안이나 고성에 욕설까지 내질렀다는 보도에 쓴 웃음을 짓는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공화당 정권으로서는 U-2 정찰기 조종사가 포로로 잡혀 정권이 교체된 1960년의 아픈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이 정상이 아닐 것이라는 해설이 붙어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란의 교량과 발전소를 공격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전쟁범죄인지 아닌지도 논란이 된다. 호르무즈를 비롯해 3대 해협을 다시 봉쇄한다는 이란의 엄포, 미 해군이 이란 화물선을 나포했다는 소식, 이란이 반체제 인사 2명을 처형했다는 뉴스까지 2차 협상을 앞두고 언론 보도는 부정적 전망 일색이다.
모두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短見)의 소치다. 이란의 핵 개발과 해협 봉쇄가 겉으로 드러난 협상의 최대 이슈라면, 테이블 아래 협상에서는 ‘이란정권의 부패’가 핵심 화두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트럼프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
2013년 로이터의 고발 보도
2013년 11월 11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에 ‘아야톨라의 자산(Assets of the Ayatollah)’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단발성이 아니라 3부작 시리즈로, 첫날은 ‘Property Seizures: Khamenei controls massive financial empire built on property seizures’(재산 몰수 : 하메네이, 부동산 몰수로 쌓은 거대 금융 제국을 통제한다)였다.
이튿날은 ‘The Corporate Juggernaut: Setad's holdings in major banks, power plants, energy and construction firms’ (재계 거물: 주요 은행, 발전소, 에너지 및 건설사의 세타드 지분)이었고 사흘째는 ‘The Justiciary: To expand Khamenei's grip, Iran stretched its laws’(사법부 : 이란, 하메네이의 영토 확장을 위해 법을 왜곡하다)였다.
이러한 로이터의 보도 직후 이란 당국은 ‘서방의 근거 없는 모함’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첫 보도 직후 후속 보도를 내지 말 것을 로이터 통신과 영국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로이터는 예고한대로 3부작 보도를 그대로 터뜨렸고 이는 오바마 미국 정부와 이란 정부의 핵 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란은 거세게 항의를 계속했지만 로이터가 제시한 구체적인 법원 판결문과 법원 경매 기록, 부동산 등기부 사본 앞에서는 논리적인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보도는 당시 ‘종교적 청빈’을 내세운 이란 지도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혔고 미국 정부가 이란을 압박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 핵 협상을 진행 중이면서도 재무부가 관련 이란 기업들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세타드의 비밀
세타드(Setad)는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죽기 직전 내린 칙령으로 사후 설정된 최고지도자의 비자금 자산을 관리하는 준국가기관이다. ‘에맘 호메이니 명령집행본부’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Setad Ejraiye Farmane Hazrate Emam의 약칭으로 영어로는 ‘에이코(EIKO, Execution of Imam Khomeini's Order·이맘 호메이니 명령집행본부)’다.
이란 의회나 정부의 감사를 전혀 받지 않는 성역으로 오직 최고지도자에게만 보고한다. 빈곤 퇴치를 위한 자선 단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권 유지의 핵심 동력원이다. 하메네이는 이 자금을 보안군(혁명수비대) 지원, 충성파 관리, 핵 프로그램, 프록시(proxy) 국가 지원 등 전략적 사업의 비상금으로 사용해 왔다.
로이터의 취재는 어려운 정보가 아니었다. 취재팀도 취재원도 목숨을 건 취재요, 보도였다. 최고 지도자의 역린을 정면으로 건드릴 뿐 아니라 최고 지도자의 도덕성을 강타하는 보도였기 때문이다. 이란 국내 취재는, 이란 국내법 상 최고 사형에 해당하는 ‘간첩죄’와 ‘국가비밀누설죄’로 체포될 위험이 컸다.
이 때문에 로이터 취재팀은 대부분의 취재를 두바이, 런던, 미국 등지에서 원격 진행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란 내 소식통들과도 철저하게 비밀리에 접촉했다. 이란 외부 취재원도 신분이 노출될 경우 테러 위험이 있었다. 때문에 취재에만 6개월 이상이 걸렸다. 팀은 미국 재무부 자료와 전직 세타드 직원들의 증언을 확보해 세타드 자금의 실질적 소유주가 하메네이임을 밝혀냈다.
이란의 치명적 급소, 하메네이 비자금
당시 로이터 취재팀은 세타드 내부 문건과 테헤란 증권거래소 데이터, 이란 기업 웹사이트 등을 샅샅이 뒤졌다. 이란 신문의 부동산 경매 공고를 전수 조사해, 1979년 혁명 당시 이란 정부가 몰수한 자산이 어떻게 세타드로 흘러 들어갔는지 입증했다. 비자금 ‘설’ 보도가 아니라, 수천 장의 등기부 등본과 판결문을 대조해 950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끌어냈다.
지난 2013년 로이터가 추산한 세타드 비자금은 부동산 520억 달러, 국가 기간산업 지분 420억 달러로 950억 달러나 됐다. 당시 이란 연간 석유 수출액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 부동산은 정치범, 종교적 소수자 등으로부터 몰수한 수만 채의 건물과 토지와 그 매각 대금이었다.
세타드는 부동산 매각 대금을 종잣돈으로 금융·석유·통신 등 기간산업의 지분을 인수하고 수익성 좋은 기업은 아예 경영권을 장악해버렸다. 그 자금으로 런던을 비롯한 유럽과 두바이 등에 고급 아파트와 호텔, 호화 리조트등도 대량으로 매입했다. 13년 전의 950억 달러가 오늘날 2000억 달러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협상팀은 이 비자금을 뺏거나 묶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전의 핵무기’로 쓰고 있다. 세타드의 비밀 자산 위치를 하나씩 언론에 흘리며 이란을 압박한다. 지난 1차 협상에서 이란이 카타르 등에 동결된 60억 달러의 자산 해제를 요구하자, 미국은 오히려 세타드 자산의 투명한 공개 또는 국민 복지와 인프라 복구 전용을 역제안했다.
300명이나 되는 초대규모 협상 대표단이 따라온 이유도 여기 있었다. 협상이 결렬되면 세타드의 해외 페이퍼 컴퍼니 100여 곳의 명단과 지분 구조를 공개하겠다고도 위협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청년 장교와 대중에게 “너희 지도자들이 국민의 고혈로 뭐 하는지 보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이란 국내 여론은 물론 세계 여론도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다. 국민은 고통받는데 지배 계층은 거액의 비자금을 굴리며 초호화판 생활을 즐기는 상황을 옹호할 소위 양심적 지식인은 없을 것이니. 로이터는 2013년 탐사보도의 후속판 격인 ‘아야툴라의 글로벌 제국’ 2026 ‘Ayatollahs’ Global Empire 2026’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 중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향후 협상은 미국의 심리전 매뉴얼대로, 트럼프의 기대대로 흘러갈 것이다. 하메네이 비자금 2000억 달러는 혁명수비대 간부를 비롯한 이란 내 척화파의 권력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그 어떤 군사적 타격보다 무서운 카드다. 이른바 관측통들이 생각못한 변수, ‘세타드 비자금 폭탄’은 이란 지도부에게는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위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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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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