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난립”vs“법 무력화”…정부 개입 확대 우려도[노조법 후속조치]
입력 2025.11.24 17:54
수정 2025.11.24 17:54
노동부,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예고
교섭창구 단일화 유지…교섭단위는 분리
김영훈 “하청노조 교섭권 확보 기반 마련”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시행령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맞춰 원청 사업주와 하청 노동조합 간 단체교섭 절차를 구체화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틀을 유지하되,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적극 활용해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법 취지 무력화를 주장하며 반발하고, 경영계는 교섭 난립을 우려해 노사 갈등이 심화할 우려를 낳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하청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 사용자와 대화하지 못했던 구조를 개선하는 첫걸음”이라며 “노사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되, 개정법 취지에 따라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확보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시행령 개정안은 이달 2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된다.
원·하청 교섭 분리 제도 활용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원청 사업장 내 모든 원·하청 노조는 교섭 대표 노조를 가리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한다. 이는 ‘하청업체가 100개라면 원청이 교섭을 100번 해야 하느냐’는 경영계의 우려를 일정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원청노조에 비해 규모가 적은 하청노조의 교섭권 약화를 막기 위해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활용한다. 노동부는 원청노조와 하청노조는 공동교섭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섭단위 분리 및 통합 결정은 노동위원회가 맡으며, 시행령 개정안은 그 구체적 기준을 명시했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기준은 ▲임금체계 등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외에도 ▲이해관계의 공통·유사성 ▲다른 노동조합에 의한 이익 대표의 적절성 ▲교섭단위 유지 시 노조 사이 갈등 유발 및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 ▲당사자들의 의사 등이 추가됐다.
또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조를 교섭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하고 시정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최대 20일로 늘렸다. 노동부는 사용자성 판단을 신속히 할 수 있도록 가칭 ‘사용자성 판단 지원위원회’를 두고 지원할 방침이이다. 노동위가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했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사법 처리 대상이 된다.
노 “법 취지 무력화” vs 사 “교섭 난립 우려”
시행령 입법예고 직후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시행령 개정안은 노조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한다”며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가 유지해온 ‘원청 교섭에는 창구단일화 강제가 필요 없다’는 기존 해석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하위 시행령이 제약해서는 안 된다”며 자율교섭 보장을 요구했다.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은 “20년 동안 이어진 비정규직 투쟁 성과를 시행령으로 무력화하고 원청 책임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노동부가 ‘교섭단위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는 매뉴얼을 내세우지만 매뉴얼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며 “교섭단위 분리는 현실에서 예외적으로만 적용돼 왔고, 시행령이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직권조사가 원청의 교섭 의제 제한과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보였다.
경영계 역시 우려를 표명하며 현장 혼란 심화를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무분별하게 교섭단위 분리 결정 기준을 확대할 경우 15년간 유지된 원청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형해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섭단위 분리 기준이 근로조건 차이부터, 업무 성질과 내용, 노동 강도 등으로 매우 다양해서 사실상 모든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교섭 주체가 지나치게 많아질 것이라는 염려다.
특히 1차 협력사만 300개, 2·3차 협력사가 5000개에 달하는 현대차 등 협력사 생태계에서 개별 교섭 요구가 잇따를 경우 경영 불확실성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교섭단위 분리 결정’ 무거운 책임진 정부
이번 시행령으로 교섭단위 분리 및 통합 결정을 맡게 된 정부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게 됐다는 분석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 아래 수천개의 하청기업이 있는데 이들의 교섭단위 분리·통합 결정을 정부가 도맡게 됐다”며 “정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고, 객관적 원칙대로 판단했더라도 복잡해진 이해관계에서 각 주체가 얼마나 만족하는 결과를 내놓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교섭단위 분리 기준 확대가 원청 내 복수노조와의 관계까지 혼란을 유발해 각각의 창구 개설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강 교수는 “이번 개정안으로 원·하청 노조 간 갈등도 새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며 “‘교섭단위 분리·통합 결정’이라는 키를 쥔 정부를 상대로 모든 종류의 노사갈등이 집중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법 시행까지 노동위원회 인력을 확충하고 현장지원 TF를 운영하며 연내 ▲사용자성 판단 기준 지침 ▲노동쟁의 범위 지침 ▲원·하청 교섭절차 매뉴얼 등 후속 지침을 마련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