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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해저 케이블 두 곳이 갑작스레 절단된 까닭은?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4.11.29 21:12
수정 2024.11.29 21:15

WSJ "中 이펑 3호 닻 내리고 운항해 해저 케이블 2곳 절단"

발트해 해저 케이블 2곳을 절단한 혐의를 받는 중국 선적 이펑 3호가 지난 20일 덴마크 유틀란트주 그레나시 인근 카테가트해협 공해상에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주 발생한 발트해 해저 케이블 절단 사건의 ‘용의자’는 중국 선적 화물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 화물선이 고의로 닻을 내린 상태로 운항하는 바람에 해저면의 케이블을 끊고 지나간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 수사 당국자들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비료를 싣고 발트해를 운항하던 중국 선적 화물선 이펑(伊鵬) 3호가 닻을 바다 밑바닥에 끌면서 111마일(약 180㎞)가량을 운항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 17일 오후 9시, 18일 오전 3시에 스웨덴~리투아니아, 독일~핀란드를 연결하는 두 곳의 해저 케이블이 각각 절단됐다는 것이다.


이펑 3호는 14일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에서 출발해 러시아산 비료를 싣고 이동했다고 WSJ가 전했다. 사흘이 지난 17일 오후 9시쯤 스웨덴과 리투아니아 사이 해역에서 닻을 내린 채 항해하며 첫 번째 해저 케이블을 절단했다. 이후에도 닻을 내린 상태로 이동을 계속한 이펑 3호는 다음 날 오전 3시쯤 독일과 핀란드 사이 해역에서 두번째 해저 케이블을 끊었다.


이때까지 이 배는 111마일을 항해한 상태였다. 두번째 케이블이 절단된 뒤 이펑 3호는 닻을 올리고 특이하게 지그재그 항로로 이동하다 닻을 올리고 정상 속도로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펑 3호는 특히 문제의 구간을 항해하는 동안에만 선박의 자동식별시스템(AIS)이 꺼져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국제 항해 선박은 실시간 위치 등을 국제해사위성기구에 송신하도록 돼 있는데, 이펑 3호의 경우 두번째 케이블 절단 이후 지그재그로 항해한 뒤 닻을 올리고 정상 속도로 운항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운송데이터 분석업체 크를러는 “당시 온화한 기상 조건, 관리 가능한 파도 높이를 고려하면 우발적인 ‘닻 끌림’ 사고였을 확률은 최소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유럽 수사 당국자도 “이펑 3호가 닻을 내리고 항해했다는 사실을 선장이 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해저에서 닻이 끌리면 배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상황을 선원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해저 케이블 절단 직후 이펑 3호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덴마크 해군은 즉각 추적에 나서 발트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카테가트해협에 이 선박을 정선시켰다. 현재 이펑 3호는 나토 소속 함대의 보호를 받으며 공해상에 정박한 채 조사를 받고 있다.


벤저민 슈미트 미 펜실베이니아대 클라인만에너지정책센터 수석연구원은 2019년 12월~올해 3월 초 중국 해역에서만 운항했던 이펑 3호가 갑자기 그 패턴을 바꾼 사실을 거론하며 “운항 지역이 근본적으로 변경된 부분이 유럽 당국의 조사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관계 당국은 이 사건 수사 결과가 미칠 파장을 고려해 최대한 신중하게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펑 3호는 중국 저장성 닝보에 본사를 둔 닝보이펑해운이 소유한 선박이다. 이 회사 화물선은 이펑 3호를 포함해 단 두 척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펑 3호의 갑작스런 운항 일정과 항로 변경도 주목된다. 이 화물선은 2019년 12월부터 3년 반 동안 줄곧 중국 해역에서만 운항했다. 그러다 올해 3월 이후 갑자기 운항패턴을 바꿨다.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항과 북서단 무르만스크항 등을 다니며 러시아 석탄과 기타 화물을 나르기 시작했고, 발트해로도 진출했다.


향후 수사방향은 이 사건이 중국 배의 단독 소행인지,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사보타주(sabotage·고의적 파괴행위)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다만 해저 케이블 파괴가 유럽의 주요 인프라 시설을 노린 러시아 정보기관이 배후에 있다는 심증은 더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펑 3호의 선장은 중국, 항해사는 러시아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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