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 사이의 '공회전' [D:쇼트 시네마(58)]
입력 2023.12.26 11:23
수정 2023.12.26 11:23
이샛별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중년의 남자 동석(차순배 분). 유서를 써놓고 약물을 과다 복용한 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동석에게 "미안해. 그동안 고마웠어 잘살아"라는 문자가 도착한다. 동석은 아들로부터 자살 암시 문자를 받자, 바로 집에서 뛰어나간다.
처음으로 간 곳은 이혼한 전처의 집이다. 그곳에 전처는 새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고, 아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급한 마음에 아들의 방을 뒤져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챙겨 나온다. 이후에는 아들의 학교를 친구들로부터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 괴로워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점점 약기운이 퍼져 동석은 도로 위에서 작은 사고를 낸 후 잠이 들고 말았다. 마음은 한시가 급하지만 동석은 경찰서에 연행되기까지 한다. 경찰에게 아들 태원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잠시 한눈을 판 틈을 타 경찰서를 벗어난 동석은 아들의 전 여자친구 희주(김예은 분)을 찾아간다.
희주에게 사정해 태원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결국 동석은 쓰러지고 만다. 눈을 뜬 병원에서는 아들 태원이 곁에 있다. 사실 태원의 의미심장한 문자는 전 여자친구에게 보내려다 실수로 아빠에게 보낸 것. 다시 집에 돌아온 동석은 또 혼자가 됐다.
'공회전'은 죽음을 결심한 남자 앞에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블랙코미디 요소가 가미됐다. 공허함에 자살 시도를 한 동석은 아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어쩌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어졌을 수도 있다.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의지는 자신과 연결된 아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잠식하게 만든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발버둥으로 보인다. 죽고 싶다는 마음과 살아야만 하는 마음은, 극단적으로 표현됐지만 살면서 배치되는 마음이 공존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동석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 아니면 다시 죽음을 결심했을까. 감독은 선명한 엔딩을 남기지 않고 관객들에게 공을 넘긴다.러닝타임 3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