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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투더스포츠] ‘개막전 사나이’ 장호연, 완봉에 노히트노런까지

2020.05.04 11:50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한 달 반 개막이 미뤄졌던 2020시즌 KBO리그가 드디어 닻을 들어올린다.
2020시즌 개막전은 5일 오후 2시, 문학에서 열리는 SK와 한화의 공식 개막전을 비롯해 잠실(두산-LG), 대구(NC-삼성), 광주(키움-KIA), 수원(롯데-KT)에서 동시에 무관중으로 열린다.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3월말 개막 일정이 5월 초로 연기됐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144경기를 오롯이 다 소화하기로 했고, 이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일정이 진행될 예정이라 초반부터 승수를 쌓는 게 중요하다.
승패를 가늠할 주요 요소는 역시나 선발 마운드에 오를 각 팀의 에이스들이다.
문학에서는 닉 킹엄(SK)-워윅 서폴드(한화)가 맞대결을 벌이고 잠실은 알칸타라(두산)-차우찬(LG), 대구에서는 백정현(삼성)-루친스키(NC), 광주에서는 양현종(KIA)-브리검(키움)이 첫 경기를 책임진다. 그리고 롯데가 가장 늦게 선발 투수를 공개하면서 스트레일리(롯데)와 데스파이네(KT)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KBO리그 개막전하면 역시나 OB의 장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장호연은 ‘개막전의 사나이’라는 닉네임답게 역대 가장 많은 9번의 선발 기회를 얻었다. 특히 1983년 MBC와의 개막전에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 경기를 완봉승으로 장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8년은 야구 역사에서 장호연이라는 이름이 아로새겨진 해였다. 장호연은 그해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명성에 걸맞은 경기를 펼쳤다. 이밖에 장호연은 개막전 통산 최다 완투승(3회), 최다 완봉승 타이(2회), 최다승(6승)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장호연이 개막전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이유는 구질 자체가 워낙 다양하고 수 싸움에 능했기 때문으로 평가 받는다.
장호연은 현역 시절, 시속 130km 초반의 느린 직구를 던졌는데 이 속구를 커버해줄 변화구들이 그야말로 팔색조였다. 이로 인해 당시에는 “장호연이 12개 구질을 갖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장호연은 한 타자를 상대할 때 같은 구질을 두 번 이상 던지지 않는 투수로도 명성을 떨쳤다. 특히 커브와 슬라이더, 그리고 이 두 구질의 장점을 혼합한 슬러브가 일품이었고 삼진을 잡기보다는 맞춰 잡는 경제적인 투구로 긴 이닝 소화까지 가능했다.
겨우내 몸을 만들고 강속구 대비에 철저했던 상대 타자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다양한 변화구가 사실상 처음 보는 수준이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장호연은 개막전에만 위력을 떨쳤던 투수가 아니다. 그는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100승 이상을 달성한 유일한 투수이기도 하다.
장호연은 1983년부터 1995년까지 13년간 OB에만 몸담았고 109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당시의 적었던 정규 시즌 경기 수, 그리고 베어스 역사상 최고 투수 중 하나인 니퍼트가 94승, 박명환과 김상진(이승 88승)이 100승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장호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빽투더스포츠] “함 해보입시더”로 회자되는 투타 레전드-롯데편

2020.05.02 00:05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1982년 프로 원년 멤버인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과 함께 팀명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다.
롯데는 서울 다음으로 큰 부산으로 연고로 하며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영광보다는 시련의 세월이 더 많았던 팀이다.
지난해까지 38시즌을 치르며 우승을 차지한 횟수는 2회. 한국시리즈 진출도 4회로 롯데의 인기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숫자다. 또한 롯데는 아직까지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해본 적이 없고 포스트시즌 진출도 12차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 구장은 경기가 열릴 때면 언제나 뜨겁게 달아오른다. 특히 가을 야구 사정권에 들어서면 서울 원정에서도 홈구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야구 열기를 끌어올린다. 물론 성적이 부진하다면 누구보다 빨리 식어 버리는 게 바로 롯데 야구다.
롯데는 유독 스토리를 지닌 레전드들이 즐비하다.
1984년 첫 우승 때에는 홀로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린 최동원의 자신감 넘친 “마, 함 해보입시더” 발언이 전설로 남았고 1992년에는 신인 염종석이 혜성처럼 등장해 그야말로 ‘하드캐리’의 진수를 선보였다.
‘악바리’ 박정태와 ‘자갈치’ 김민호, ‘호랑나비’ 김응국, ‘완투의 대명사’ 윤학길, ‘A로드 3구삼진 잡아본’ 손민한 등 롯데에는 재치 넘치는 별명을 지닌 선수들이 유독 많다. 그리고 이들의 야구 실력은 틀림없는 ‘진짜’였기에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다.
롯데 역사상 최고의 타자는 현역으로 활약 중인 이대호다. 이대호는 롯데 구단서 유일하게 300홈런을 돌파한 타자이며 KBO리그 14년 통산 타율 0.310 312홈런 1133타점, 그리고 도루도 10개나 기록했다.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스탯티즈 기준)는 55.69로 롯데 역대 1위에 올라있다.
이대호를 맹추격 중인 리빙 레전드는 손아섭이다. 손아섭은 지난해까지 47.36의 WAR를 기록, 이미 삼성으로 떠난 강민호를 제치고 구단 누적 WAR 부문 2위로 올라섰다. 이대호보다 6년 후배이고 해외 진출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전성기를 오래 유지한다면 통산 1위로 노려볼 수 있다.

투수 쪽에서는 아직도 최동원의 6년 기록이 구단 프랜차이즈 역대 1위인 점이 대단하면서 아쉽다.
‘무쇠팔’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6년간 롯데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적 직전인 1988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200이닝 이상을 꼬박 던졌고, 무려 47.35의 WAR를 누적했다. 연평균 7~8점대 WAR로 매년 MVP급 성적을 낸 셈이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커리어 막바지에 도달한 송승준이 26.76의 WAR로 롯데 통산 6위에 올라있다. 송승준 바로 아래에는 장원준으로 FA 자격 획득 후 두산으로 떠나지 않고 롯데에 남았다면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기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빽투더스포츠] 남다른 프랜차이즈 대우, 투타 레전드-한화편

2020.05.01 00:01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1986년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는 6구단 체제로 출발한 KBO리그의 첫 신생팀이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북도를 연고로 하고 있으며 팬들의 충성도를 논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뜨거운 응원 열기를 품고 있다.
1994년 빙그레가 한화 그룹에서 분리됨에 따라 한화 이글스로 재탄생했고,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글스의 역사는 80~90년대 전성기, 1999년 우승, 2000년대 중반 짧았던 중흥기에 이어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암흑기로 압축된다.
35년의 역사 중 포스트시즌 진출 회수는 13번으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한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늘 특급 선수를 품고 있었던 팀이다. 그렇기에 레전드들도 많았고, 이는 투타 전반에 걸쳐 두루 나타난다.
한화 역사상 최고의 타자 수식어는 장종훈과 김태균으로 압축된다.
고졸 신화를 쓴 장종훈은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MVP를 차지하며 리그의 지배자로 떠올랐고, 특히 홈런의 짜릿한 맛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그는 KBO리그 역사상 첫 40홈런 타자이며, 19년 선수 생활 내내 이글스에서만 몸담아 무려 62.71의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를 적립했다.
장종훈 시대가 저물자 이번에는 완성현 타자로 불리는 김태균이 등장했다. 김태균은 짧았던 일본 시절을 제외하면 늘 이글스의 4번 타자였고, 최근 노쇠화 기미가 두드러지지만 이미 장종훈과 투수 WAR 1위인 송진우까지 넘어서며 리빙 레전드로 확실한 위치를 점했다.

투수들도 KBO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상당했다. 이글스 프랜차이즈 투수 부문 WAR 역대 1위는 바로 송진우다.
무려 21년간 현역으로 활동했으며 210승과 3003이닝, 그리고 103세이브까지 챙긴 전천후 투수로 롱런의 교과서로 불렸다.
WAR 부문 2위는 현역 시절 송진우를 제치고 사실상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정민철이다. 정민철은 송진우에 이어 KBO리그 역대 최다승 2위(161승)에 올라있고, 당분간 이 순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대성과 류현진도 빼놓을 수 없다. 구대성은 엄청난 내구력을 바탕으로 긴 이닝 소화가 가능한 마무리로 ‘대성불패’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로 떠난 류현진은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MVP+신인왕을 고작 19세 나이에 이뤄냈다. 이후 괴물의 성장은 거듭됐고 한화에서 짧았던 7년의 시간 동안 44.74라는 압도적인 WAR 수치를 찍으며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은퇴 직전 한화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기를 팬들은 바라고 있다.

[빽투더스포츠] KBO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 투타 레전드-삼성편

2020.04.30 14:00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삼성 라이온즈가 KBO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다.
삼성은 롯데와 함께 프로 원년부터 팀명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며 전폭적인 투자가 꾸준히 이어지며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삼성은 지난해까지 38시즌을 치르며 가을 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횟수가 고작 10번에 불과하다. 특히 1985년에는 전, 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를 아예 지워버렸고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그리고 2010년대 초반 통합 4연패로 왕조를 완성했다.
팀이 워낙 오랜 기간 강팀으로 군림하다 보니 투, 타 전 분야에 걸쳐 다수의 특급 선수들이 배출됐다.
삼성 프랜차이즈 역사상 누적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는 ‘양신’ 양준혁이다. 양준혁은 KBO리그 타자 부문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스탯티즈 기준) 역대 1위에 오른 선수로 18년 선수 생활동안 무려 87.22의 수치를 찍었다. 삼성에서는 총 15년 몸담았고 73.70의 WAR를 적립해 팀 프랜차이즈에서도 1위에 올라있다.
양준혁에 이어 KBO리그 통산 홈런 1위에 빛나는 이승엽이 72.08의 WAR로 2위에 올라있다. 이승엽은 설명이 필요 없는 타자다. 투수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해태 선동열이라면, 타자 쪽에서는 이승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명도 아예 ‘국민 타자’다.
양준혁과 이승엽이 삼성의 90년대~2000년대를 책임졌다면 프로 초창기인 80년대는 이만수의 시대였다. 이만수는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프로 최초 홈런, 100홈런 등 수많은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다. 그의 포지션이 포수였음을 감안하면 빼어났던 타격 성적이 더욱 대단할 수밖에 없다.
삼성은 2010년대 왕조 시대를 보내면서도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과의 끝이 좋지 못했다.
19년간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박한이는 성대한 은퇴식은 물론 영구결번까지 거론되던 선수였으나 지난해 음주운전 적발로 너무도 허무하게 현역 생활을 접고 말았다.
여기에 최형우와 박석민은 FA 자격을 획득하자 나란히 이적을 택하며 삼성의 전설이 되기를 포기했고, 오랜 기간 안방을 책임졌던 진갑용은 불법금지약물이 적발된 경력을 지니고 있다.

투수 쪽에서도 뚜렷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누적 WAR 1위는 14년간 삼성에서만 몸담았던 윤성환으로 WAR뿐 아니라 구단 최다승 최다 이닝 등 주요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팬들 마음 속 삼성의 최고 투수는 역시나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다. 정규 시즌 MVP까지 받았던 배영수는 비록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했으나, 젊은 시절 그의 투혼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상당하다.

[빽투더스포츠] 투수는 선동열·야구는 이종범, 투타 레전드-KIA편

2020.04.29 00:01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KIA 타이거즈는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해 한국시리즈서 역대 최다인 11회 우승에 빛나는 최고의 명문 구단이다.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KBO리그의 첫 왕조 시대를 열었고, 90년대에 4회,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한 차례씩 우승을 추가하며 10년 단위로 매번 정상에 올라본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많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나 좋은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명이 9차례 수상을 합작한 MVP 외에 골든글러브에서도 강세를 보였던 타이거즈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내며 리그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팀을 넘어 KBO리그 역대 최고라 불리는 선동열이다. KBO리그에서 11년을 뛴 선동열의 기록은 시대를 감안해도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11년간 146승 40패 132세이브를 적립했고 1647이닝을 던지며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1.20에 불과하다. 게임에서도 구현하기 힘든 기록을 낸 선수가 바로 선동열이며 경기 후반 그가 몸을 풀기만 해도 상대팀이 짐을 쌌다는 이야기는 KBO리그의 아주 유명한 일화다.
선동열이 KBO리그에서 적립한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은 101.29로 투수와 타자 통틀어 통산 1위에 해당한다. 여기에 전설로 회자되는 1986년(24승 6패 평균자책점 0.99)의 14.89 WAR 역시 단일 시즌 최고치로 6패나 당한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타이거즈는 선동열 외에도 뛰어난 투수들이 늘 있었다. 한솥밥을 먹었던 조계현과 이강철은 다른 팀이었다면 충분히 에이스로 활약했을 특급 투수들이다. 타이거즈의 투수 계보는 90년대 이대진, 임창용, 윤석민으로 이어졌고, 양현종이 바통을 넘겨받아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타자 쪽에서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독보적이다. 이종범은 총 1706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97 194홈런 730타점 510도루를 기록했고 누적 WAR 67.74로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종범 역시 뚜렷했던 몬스터 시즌이 있었다. 바로 타자 부문 단일 시즌 WAR 역대 1위인 1994년이다.
프로 2년차였던 이종범은 그해 4할에 근접한 타율 0.393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84도루를 적립하면서 전설이 됐다. 당시의 이종범은 안타치고, 도루하고, 그 어렵다는 유격수 수비까지 펼치는 등 타자도 혼자서 경기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빽투더스포츠] ‘야생마와 적토마’ 향수 일으키는 레전드-LG편

2020.04.28 00:10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지난 시즌 100만 400명의 관중을 기록한 LG 트윈스는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3천만 관중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1990년 MBC 청룡을 계승한 LG는 프로 원년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화려했던 90년대를 보내 올드 및 골수팬들의 충성도가 대단하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비록 2000년대에는 하위권을 전전하며 암흑기를 보냈으나 2010년대 들어 팀 성적이 안정권으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우승도 노려볼 수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LG 구단의 역사를 논할 때 90년대 ‘신바람 야구’를 빼놓을 수 없다. LG는 1994년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으로 이어지는 신인 3인방이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마운드에서는 에이스 이상훈이 버티며 창단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기점으로 KBO리그 역시 흥행 가도를 달렸는데 LG가 우승한 이듬해 사상 첫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즉, LG 트윈스=인기와 흥행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LG의 팀 역사는 오래됐지만, KBO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레전드는 의외로 많지 않다. 실제로 LG는 아직까지도 정규 시즌 MVP가 나오지 않는 팀이며 2000년대 제법 긴 암흑기를 보내는 바람에 선수 개개인의 누적 기록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LG 역대 야수들 중 최고의 선수는 올 시즌 19년차 시즌을 맞게 된 박용택이다. 박용택은 213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8 211홈런 1157타점 311도루를 기록,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스탯티즈 기준)에서 통산 57.82를 기록 중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에 의한 롱런의 결과물은 KBO리그 역대 12위라는 성적표로 나타났다. 다만 박용택은 뚜렷하게 활약한 시즌이 없었기에 리그의 지배자로 불리기에 다소 모자란 면이 있다.
오히려 팀 선배이자 야수 최초의 영구결번 대우를 받은 이병규가 더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보냈다. 이병규는 통산 타율 0.311 161홈런 972타점 등 박용택에게 조금 못 미치는 55.26의 WAR를 기록했다. 특히 전성기를 일본 프로야구에서 보낸 점을 감안해야하기에 이병규가 LG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는데 이견을 내놓는 이는 아무도 없다.

투수 쪽에서는 ‘노송’ 김용수를 제외하면 오랜 기간 활약한 선수들이 드물었다. 따라서 김용수가 누적과 활약도, 모든 면에서 LG 최고의 투수라 불리는 이유다. 김용수는 MBC와 LG를 거치면서 16년간 선발은 물론 마무리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 결과 100승과 200세이브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팬들이 꼽는 LG 최고의 에이스 이상훈도 빼놓을 수 없다. ‘야생마’ 이상훈은 1993년 프로 데뷔 때부터 단 한 번도 부진했던 시즌이 없던 투수였다. 해외 진출 시절이 제법 길었고, 야구 외적인 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접게 돼 누적 기록이 두드러지지 않으나 KBO리그 좌완 에이스 계보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선수가 바로 이상훈이다.

[빽투더스포츠] 차기 영구결번 배치된 투타 레전드-SK편

2020.04.26 00:02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지난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올해로 21번째 시즌을 치른다.
팀 역사는 키움과 NC, KT 다음으로 짧지만, SK가 거둔 성과를 간과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지난 20년간 4번의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팀 역사의 절반 가까이 시즌 최종 무대가 한국시리즈였다.
왕조까지 세웠던 SK다. SK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2007년부터 무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2007년과 2008년, 그리고 2010년 패권을 거머쥐며 KBO리그 왕조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놓았다.
최근에도 SK의 강세는 여전하다. 2018시즌에는 언더독이었음에도 ‘절대 강자’ 두산을 꺾고 최정상에 올랐고, 비록 지난해에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달리다 막판 부진으로 플레이오프 탈락 수순을 밟았으나 올 시즌도 여전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오랜 기간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탁월했던 선수 육성 능력 덕분이었다. 특히 SK는 구단을 넘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레전드들을 배출했다.
SK 유니폼을 입었던 야수들 가운데 최고의 선수는 바로 최정이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아 SK에 입단한 최정은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고 호타준족에서 거포로 변신하는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여기에 제 포지션인 3루에서의 수비력은 KBO리그 역대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어린 나이부터 1군 경험을 쌓았고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보니 최정이 적립 중인 기록은 향후 KBO리그의 역사로 아로새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까지 프로 15년차 시즌을 보냈던 최정은 1648경기에 출장했고 통산 타율 0.290 335홈런 1084타점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공격 효율도 매우 높아 66.38의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를 쌓아 역대 6위에 올라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부분은 아직도 30대 초반에 불과한 최정의 나이다. 이미 SK의 영구결번을 찜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최정이라면, 은퇴할 즈음 KBO리그의 각종 통산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투수 쪽에서는 최정의 2년 후배 김광현이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김광현은 SK 구단 유일의 MVP 수상자(2008년)로 부상 극복이라는 스토리까지 지니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7년 데뷔한 김광현은 12년간 136승 77패 평균자책점 3.27의 특급 성적을 남겼다. 올 시즌부터는 구단의 배려로 메이저리그(세인트루이스)에 진출하지만 그동안 팀에 기여한 공을 감안하면 은퇴 후 영구결번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빽투더스포츠] 평범했던 4월15일, 이승엽에겐 위대한 시작일

2020.04.15 00:21 |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ktwsc28@dailian.co.kr)

숱한 불멸의 기록과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환희와 감동의 순간을 선사했던 이승엽(44)에게도 낯선 ‘처음’이 있었다.
한국야구의 최고 스타로 기억되고 있는 이승엽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95년 4월15일이다. 여드름이 벗겨지지 않은 19세 고졸 루키 이승엽이 대망의 프로 데뷔 타석을 맞이한 날이다.
잠실야구장서 펼쳐진 시즌 개막경기 LG트윈스-삼성라이온즈전.
1-1 맞선 9회초 류중일(현 LG트윈스 감독) 타석 때 대타로 들어선 이승엽은 3만 여 관중 앞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한 투수는 당시 LG의 전설이자 ‘노송’으로 불린 특급 마무리 김용수였다. 대선배 앞에서 기세가 눌릴 만도 하지만 이승엽은 호쾌하게 방망이를 돌린 끝에 중전 안타를 뽑았다. 프로 데뷔전 첫 타석에서 만든 1호 안타다.
비록 팀은 1-5 패했지만 4월15일 데뷔전 안타를 타고 이승엽은 이튿날 데뷔 첫 선발 출장했다. 처음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대투수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안타까지 뽑아낸 덕이다.
두 번째 경기(잠실 LG전)에 6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한 이승엽(4타수1안타)은 데뷔 첫 타점까지 기록했다. 8회초 1사 1, 3루 찬스에서 LG 투수 이병석을 상대로 2루수 땅볼을 쳤지만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첫 타점을 올렸다. 안타로 올린 타점은 아니지만 통산 1498타점(역대 1위)의 신호탄이 됐다.
안타와 타점의 맛을 본 이승엽은 1995년 5월2일 광주 무등구장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6회초 이강철의 커브를 통타 우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데뷔 첫 홈런을 때린 이승엽은 1999시즌 54홈런을 쏘아 올리며 일본의 전설적인 타자 오사다하루(55홈런)의 기록 경신을 꿈꿨다.
이승엽 모토대로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2003년 기어코 해냈다. 10월2일 홈 대구 롯데전에서 이승엽은 이정민의 낮은 공을 받아쳐 잠자리채로 물결치는 외야로 날리며 아시아 최다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사전 예매만으로 매진된 2017년 10월 은퇴경기에서는 넥센 한현희를 상대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22년간의 화려했던 전설의 행보를 홈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마쳤다. 은퇴하는 날까지 홈런과 타점을 추가한 이승엽의 KBO리그 개인 통산 성적은 1906경기 타율 0.302(7132타수 2156안타), 467홈런, 1498타점, 1355득점. 낯설었던 처음을 극복하고 이뤄낸 결과물이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날이었던 1995년 4월15일. 이승엽은 전설의 시작을 알리며 한국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며 21세기 한국 야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스타가 됐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날일 수 있는 2020년 4월15일.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승엽 말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정한 노력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빽투더스포츠] 짧지만 강렬한 투타 레전드-키움편

2020.04.12 09:30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2008년 창단한 키움 히어로즈는 투자 대비 효율 면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팀이다. 12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고, 팀 성적도 뛰어나 타 팀 팬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구단의 정식 명칭은 서울 히어로즈이며 모기업 없이 팀명을 메인스폰서 유치로 유지한다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2008년 우리 히어로즈로 출발한 뒤 서울 히어로즈, 2010년부터는 9년간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지난해부터 5년간 키움 히어로즈로 뛰게 된다.
히어로즈는 2007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을 그대로 승계했다. 구단 역사를 논할 때 두 팀의 연결고리는 끊어져있지만 선수 육성에 남달랐던 현대 왕조의 DNA를 품고 있어 지금도 많은 유망주들이 껍질을 깨는 팀이 바로 히어로즈다.
창단 초기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목동 구장을 사용, 많은 홈런 개수를 뽑아냈다. 2016년 고척 스카이돔으로 옮긴 뒤에도 히어로즈의 장타력은 여전히 상대 마운드에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12년 역사 동안 한국시리즈는 2번이나 진출했다. 아쉽게 우승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역사 중 절반인 6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오를 정도로 강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이다. 최근에도 김하성과 이정후, 최원태, 조상우 등 젊고 유명한 선수들이 계속해서 배출돼 미래가 가장 밝다고 할 수 있다.
히어로즈 구단 역사에서 최고의 선수는 역시나 ‘홈런왕’ 박병호다. 2011년 LG에서 트레이드됐을 때만 하더라도 미완의 거포에 불과했으나, 이듬해 31홈런을 터뜨리며 리그의 지배자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박병호가 7년 동안 기록한 홈런 개수는 무려 262개. 연평균 37.4개씩 쏘아 올린 셈이다. 따라서 메이저리그 진출 시절을 제외하면 홈런왕은 대부분 박병호의 몫이었고, 그 결과 올 시즌 비FA로는 역대 최고액인 20억 원의 연봉을 받게 됐다. 박병호는 누적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에서 히어로즈 역대 1위인 41.32(LG 시절 제외)를 적립 중이다.
히어로즈의 현재이자 미래인 김하성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메이저리그로 떠난 강정호의 유격수 빈자리를 완벽히 메운 김하성은 타격과 수비, 주루까지 삼박자가 완벽히 갖춰진 선수로 24세 나이에 벌써 24.38의 WAR를 쌓았다. 다만 올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하고 있어 히어로즈에서의 경력이 계속 이어질지 미지수다.

투수 쪽에서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하나인 앤디 밴헤켄이 큰 족적을 남겼다.
밴헤켄은 KBO리그 무대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매년 꾸준했고, 2014년 20승을 거두면서 골든글러브를 따내 화룡점정을 찍었다. 밴헤켄은 한국에서의 6년간 부진했던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었다.
FA 자격 획득 후 롯데로 떠났으나 손승락도 히어로즈의 레전드가 되기 충분하다. 특히 손승락은 리그 최고의 소방수로 히어로즈의 뒷문을 든든히 지켰고 177세이브를 팀에 안겼다.

[빽투더스포츠] 38년 역사 관통하는 투타 레전드-두산편

2020.04.10 07:42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eunice@dailian.co.kr)

두산 베어스는 1982년 OB 베어스라는 이름으로 창단, 프로 원년 6개 구단 중 하나로 지난해까지 38번째 시즌을 보냈다.
팀명은 1999년 모기업의 이름을 따라 지금의 두산 베어스로 바뀌었으며 우승 6회, 준우승 7회의 위업을 달성한 명문 구단 중 하나다.
두산은 창단 당시 지역 안배 차원에서 대전을 연고로 충청도를 아우르는 팀이었다. 하지만 3년 뒤 서울로 이전한다는 약속에 따라 1985년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다 1986년부터 잠실구장에 뿌리를 내렸다.
두산은 프로 원년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시 한국시리즈에 오르기까지 13년이나 걸렸다. 80~90년대에는 영광보다 굴곡진 시절이 더 많았고, 지금의 강팀 이미지를 갖게 된 시기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다.
두산은 일찍부터 내부 육성에 많은 힘을 쏟았고 다른 팀들에 비해 프랜차이즈 스타를 대거 보유한 팀으로도 유명하다. 잘 키워진 선수들은 하나둘 팀 전력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두산은 이들을 앞세워 지난 20년간 4번의 우승과 7번의 준우승, 그리고 15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의 성과를 냈다.
두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야구 실력을 뽐냈던 선수는 ‘두목곰’ 김동주다. 1998년 OB에 1차 지명돼 입단한 김동주는 프로 2년차였던 1999년부터 특급 선수로 발돋움해 2013년 은퇴할 때까지 16년간 리그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김동주는 오로지 베어스 유니폼만을 입었고 1625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09 273홈런 1097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부문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가 드넓은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지 않았다면 역대 최다 홈런 부문에서 경쟁했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무려 66.35(역대 7위)의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를 적립한 김동주에 이어 2위는 LG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현수다. 김현수는 정교함을 갖춘 중장거리 타자로 명성을 날렸는데 42.05의 WAR를 쌓은 뒤 메이저리그를 거쳐 LG 이적을 택했다. 그가 계속해서 두산에 잔류했다면 김동주에 버금가는 기록을 쌓을 수 있었기에 많은 두산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투수 쪽에서는 여러 특급 투수들이 등장했으나 대부분 롱런과 거리가 멀었다.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가장 높은 WAR를 기록한 투수는 박명환이다.
고졸 1년차였던 1996년 일찌감치 선발 한 자리를 꿰찬 박명환은 21세에 두 자릿수 승수(14승)를 따냈고 2002년에도 다시 14승을 따내며 손민한, 배영수와 함께 2000년대 초반을 지배한 우완 트로이카 중 하나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공을 던졌던 박명환은 부상이 잦았고, LG 이적 후 급격히 내리막을 걸으며 투수 혹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선수가 됐다.
효율적인 투구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장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장호연은 베어스 역사상 유일한 100승 투수(110승)이며 최다 이닝(1805.0이닝), 그리고 박명환, 김상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WAR(30.04)를 적립했다.

[통곡의 벽] ‘1승 14패’ 이란에 막힌 올림픽 꿈

2020.01.14 13:58 |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kimrard16@dailian.co.kr)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 무대 복귀를 꿈꿨던 한국 남자배구의 야심찼던 도전이 ‘아시아 최강’ 이란의 벽을 넘지 못하며 또 한 번 가로막혔다.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예선에서 이란에 패한 남자배구대표팀은 13일 오후 씁쓸함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은 지난 11일 중국 장먼에서 열린 이란과의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예선 준결승에서 세트 스코어 2-3으로 석패했다.
임도헌호(세계랭킹 24위)는 객관적인 전력 열세에도 강호 이란(8위)을 맞아 풀세트 접전을 펼치며 분전했지만 아쉽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도쿄올림픽 출전 꿈이 무산됐다.
이번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예선 대회는 우승을 차지하는 한 팀만이 도쿄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최대 경쟁국은 역시 아시아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이란이었다. 한국은 이란과 최대한 늦게 붙는 것이 유리했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서 호주에 2-3으로 패하며 출발이 꼬였다.
호주를 제압한 복병 카타르에 승리를 거두고도 조 2위로 밀린 한국은 예상대로 준결승전부터 난적 이란을 상대했고, 아쉽게 패하며 올림픽 출전 꿈을 4년 뒤로 미루게 됐다.
특히 같은 아시아에서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란은 어느덧 한국에 ‘통곡의 벽’으로 자리 잡았다.
역대 상대 전적은 13승 15패로 호각세지만 최근 전적만 놓고 보면 6연패 중이다. 또한 한국은 지난 2008년 아시아배구연맹(AVC)컵에서 이란에 3-1 승리를 거둔 뒤 최근 15경기에서(1승 14패)로 철저하게 밀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얼마나 이란에 철저하게 당했을까. 주요 길목마다 이란에 발목이 잡히며 아쉬움과 좌절이 공존했던 경기들을 되짚어봤다.
아쉬운 패배, 이란전 악연의 시작
이란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밀릴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 2008년 아시아배구연맹(AVC)컵 승리 이후 한국은 이듬해 이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뻔했다.
2009년 열린 2010 세계배구선수권 아시아지역예선에 나섰던 한국은 이란을 만나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지금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어렸던 좌우 쌍포 박철우와 문성민이 국가대표로 동시에 활약했던 경기다.
이때만 해도 이란은 한국과 아시아권에서 대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대표팀은 대회 직전 주전 세터인 권영민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안방 패배가 불러온 충격 결과
안방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플레이오프서 한국은 이란에 1-3으로 지며 대회 첫 패배를 당했다.
조별리그서 한국은 인도, 태국, 일본을 제압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란전 패배로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홈에서 8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노렸던 한국은 현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신영석, 박철우, 한선수, 전광인에 서재덕, 송명근 등까지 모두 대회에 출전하며 안방서 금메달을 꿈꿨다.
하지만 이란전 패배를 ‘인천 참사’의 시작이었다.
결승까지 올라 이란에 설욕을 벼렀지만 결승 진출은커녕 준결승에서 2진급으로 구성된 일본에 1-3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승리하며 체면치레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대표팀은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12년만의 아시안게임 우승 무산, 압도적 기량차이 여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우승을 목표로 했던 남자대표팀은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서 결승까지 올라 이란을 상대로 복수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이란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당시 한국은 이란에 0-3(17-25 22-25 21-25)으로 완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V리그를 호령했던 문성민, 전광인, 송명근이 모두 나서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던 이란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 실패, 험악한 분위기 속 굴욕패
임도헌호는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예선 준결승에서 격돌하기 전 이란과 상대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2019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에서 만나 1-3으로 분패했다.
2003년 대회 우승 16년 만의 정상 복귀를 노렸던 한국은 이란 원정에서 먼저 1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뒷심 부족으로 인해 내리 3세트를 내줘 1-3으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인해 한국은 이란과의 역대 전적에서 13승 14패의 열세에 놓였다.
특히 이날 경기 도중 이란 밀라드는 한국 코트로 넘어와 네트를 흔드는 과도한 세리머니를 했다. 이에 정민수가 항의하면서 양 팀 선수들이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밀라드와 정민수가 나란히 레드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경기는 결국 한국이 패하면서 이날 패배는 그 어느 때보다 굴욕적인 패배로 남아있다.

부담백배 레바논 원정, ‘베이루트 참사’의 기억

2019.11.14 14:11 | 김태훈 기자(ktwsc28@dailian.co.kr)

'또 베이루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매우 부담스러운 레바논 원정에 나선다.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대표팀(피파랭킹 39위)은 14일 오후 10시(한국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스타디움서 킥오프하는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4차전 레바논(피파랭킹 91위)과의 원정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2승1무(승점7)로 북한(승점7)과 조 선두를 다투고 있고, 레바논(승점6)이 뒤를 쫒고 있다. 험난했던 북한 원정을 무승부로 마친 대표팀에 레바논 원정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정이다. 자칫 레바논 원정에서 패하면 조 3위로 추락할 수 있다. 레바논 원정은 조 2위도 최종예선행을 장담할 수 없는 2차 예선에서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재 레바논은 어수선하다.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다. 대표팀이 레바논에 도착한 날도 시위대가 타이어에 불을 질러 공항에서 베이루트 시내로 가는 길이 막혔다. 경찰 호위 속에 대표팀 선수들은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했지만 많은 취재진은 우회도로를 통해 이동해야 했다. 이런 불안한 정세 때문에 대표팀은 레바논 현지 적응훈련을 생략했다.
피파랭킹과 통산 상대전적(9승2무1패 한국 우위)만 놓고 보면 과잉 우려로 보이지만 베이루트 전적만 놓고 보면 괜한 우려가 아니다. 역대 베이루트에서의 전적은 1승2무1패로 팽팽하다. 그나마 거둔 1승도 26년 전이다.
최근 3경기에서는 2무1패로 열세다. 지난 2011년 11월15일 열린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5차전에서는 1-2로 졌다. 이른바 ‘베이루트 참사’다. 후폭풍은 거셌다. 감독의 경질까지 불러왔다.
당시 대표팀은 기습적인 선제골을 얻어맞았다. 전반 5분 한국 진영 오른쪽에서 레바논의 코너킥 때 수비수 맞고 굴절된 볼을 레바논의 수비수가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을 열었다. 너무나도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내준 조광래 감독도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격에 나선 한국은 몇 차례 결정적 득점 찬스를 놓쳤지만, 전반 20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만들었다. 레바논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근호가 상대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구자철이 침착하게 골로 마무리했다. 불과 10분 뒤 구자철은 페널티박스에서 골을 걷어내려다 상대 선수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레바논의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키커에 골을 허용한 뒤 1-2로 패했다.
홈에서 가진 3차 예선과 최종예선 6-0, 3-0 대승을 거뒀던 대표팀은 베이루트에서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다.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그 기회를 놓쳤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조광래(2010년 7월~2011년 12월) 감독은 A매치 12승6무3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지만, 레바논전 패배와 한일전 참패(0-3)로 1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와 갈등이 경질의 주요 원인이라는 축구계 안팎의 관측도 있었지만 레바논전 패배가 결정적 빌미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최강희 감독도 2013년 6월5일 레바논전에서 진땀을 뺐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극적인 동점골 덕에 간신히 1-1 비겼다).
벤투 감독이 베이루트 참사의 기억을 지워낼 만한 통쾌한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전 마친 벤투호, 베이징 경유해 17일 귀국...11월 레바논 원정

2019.10.15 22:30 | 김태훈 기자(ktwsc28@dailian.co.kr)

북한과의 평양 원정에서 승점1을 수확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17일 귀국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서 열린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 북한(FIFA랭킹 113위)과의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에 만족했다.
경기 전까지 나란히 2승을 따낸 한국과 북한은 승점1씩 나눠 가지며 승점7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에 골득실에서 앞서 H조 1위를 유지했다.
지난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해 베이징을 경유해 14일 평양 땅을 밟은 대표팀은 귀국길도 중국 베이징을 거친다. 대표팀은 오는 16일 오후 5시20분 평양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17일 오전 0시45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중국 슈퍼리그서 활약 중인 김민재(베이징 궈안), 박지수(광저우 에버그란데), 김신욱(상하이 선화)은 16일 베이징에서 소속팀에 복귀한다. 백승호(다름슈타트), 권창훈, 정우영(이상 프라이부르크), 이재익(알 라이얀), 남태희(알 사드), 이강인(발렌시아)도 베이징에서 소속팀으로 향한다.
한편, 대표팀은 다음 달 14일 레바논 베이루트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서 레바논과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4차전을 치른다.
◆10/16(수)
- 17:20 평양 출발(베이징행, CA122)
- 18:20 베이징 도착
- 21:40 베이징 출발(인천행, KE854)
◆10/17(목)
00:45 인천공항 T2 도착 및 스탠딩 인터뷰(감독, 선수1~2명)

[빽투더스포츠] '꽃길도 조심' 경질 부른 2011년 레바논 참사

2019.07.18 14:43 | 김태훈 기자(ktwsc28@dailian.co.kr)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꿈꾸는 한국 축구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상대들이 결정됐다.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17일(한국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 추첨 결과 레바논(FIFA랭킹 86위), 북한(122위), 투르크메니스탄(135위), 스리랑카(201위)와 H조에 편성됐다.

경기일정에 따라, 9월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을 시작으로 ‘2022 카타르월드컵’을 향한 대장정이 시작된다. 각 팀이 홈&어웨이 방식으로 8경기를 치른 뒤 순위를 결정한다. 1위는 12개국이 진출할 수 있는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직행하고, 나머지 4개팀은 각 조 2위 중 상위 4개팀이 올라간다.

피파랭킹 37위에 있는 한국의 무난한 조 1위를 예상한다. 2번 포트 중 껄끄럽다고 할 수 있는 이라크(77위) 우즈베키스탄(82위)마저 피했다. H조에서 북한을 제외한 다른 3개팀은 월드컵도 밟아보지 못했다.

시쳇말로 ‘꽃길’이다. 그러나 돌부리 하나 없는 꽃길이라고 단정하면 곤란하다. 레바논 원정에서 패배라는 치명타를 맞고 감독까지 경질됐던 한국 축구사를 간과할 수 없다.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 베이루트. 원정에 앞서 홈에서 완파했던 레바논은 어렵게 여긴 상대가 아니었다. 한국은 피파랭킹 31위인 반면, 레바논은 146위였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1년 9월2일 고양종합운동장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B조 1차전 레바논과의 대결에서 박주영 해트트릭 등에 힘입어 6-0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베이루트에서는 달랐다. 한국은 레바논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5차전 레바논과 격돌에서 졸전 끝에 1-2 패했다. 레바논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그 기회를 놓쳤다.

한국은 박주영, 기성용 등 주전 멤버가 대거 빠졌다. 최전방 원톱에 이근호,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흥민, 좌우 미드필더로 이승기와 서정진이 나섰다. 구자철 홍정호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됐고, 중앙 미드필더였던 이용래가 왼쪽 측면 풀백으로 출전했다. 중앙 수비수는 이정수-곽태휘, 오른쪽 측면 수비는 차두리가 맡았다. 골키퍼 정성룡.

기습적인 선제골을 얻어맞았다. 전반 5분 한국 진영 오른쪽에서 레바논의 코너킥 때 수비수 맞고 굴절된 볼을 레바논의 수비수가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을 열었다. 너무나도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내준 조광래 감독도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격에 나선 한국은 몇 차례 결정적 득점 찬스를 놓쳤지만, 전반 20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만들었다. 레바논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근호가 상대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구자철이 침착하게 골로 마무리했다. 불과 10분 뒤 구자철은 페널티박스에서 골을 걷어내려다 상대 선수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레바논의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키커에 골을 허용했다.

1-2 뒤진 한국은 후반 들어 공격에 변화를 주기 위해 손흥민을 빼고 지동원을 교체 투입했다. 후반 8분에는 서정진 대신 남태희를 들여보내 공격을 더욱 강화하고, 포메이션도 4-2-3-1에서 4-4-2로 변화를 줬지만 효과는 없었다. 레바논 진영에서 공격 템포도 떨어지고, 볼 트래핑만 길어 점유율만 올릴 뿐,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종료 직전 곽태휘의 결정적인 슈팅도 골문을 뚫지 못했다. 결국, 중동 원정 징크스를 깨지 못한 한국은 1-2 패했다. 중동 축구 특유의 침대축구나 관중 난입 등 변수들이 있었지만 레바논을 앞설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레바논전 패배는 큰 후폭풍을 일으켰다.

조광래(2010년 7월~2011년 12월) 감독은 A매치 12승6무3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지만, 레바논전 패배와 한일전 참패(0-3)로 1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와 갈등이 경질의 주요 원인이라는 축구계 안팎의 관측도 있었지만 레바논전 패배가 결정적 빌미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이후 부임한 최강희 감독도 2013년 6월5일 레바논전에서 진땀을 뺐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극적인 동점골 덕에 간신히 1-1 비겼다).

한편, 벤투호는 오는 11월 14일 레바논 원정을 치른다. 홈에서는 2차 예선 마지막 일정으로 2020년 6월9일 레바논을 상대한다.

[빽투더스포츠] 페더러vs나달, 잔디 위 5시간 대접전 ‘2008 윔블던 결승’

2019.07.12 11:16 | 김태훈 기자(ktwsc28@dailian.co.kr)

로저 페더러(세계랭킹 3위·스위스)와 라파엘 나달(세계랭킹 2위·스페인)이 11년 만에 윔블던 잔디 위에서 대결한다.
페더러와 나달은 1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서 열리는 ‘2019 윔블던테니스’ 남자 단식 4강에서 맞붙는다(JTBC3 FOX SPORTS 생중계). 무려 11년 만이다. 40번 가까이 맞대결을 펼쳤던 페더러와 나달은 윔블던에서는 3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

반대편 4강에서는 노박 조코비치(세계랭킹 1위·세르비아)가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굿(세계랭킹 22위·스페인)과 결승 진출을 다툰다.

살아있는 두 전설의 ‘잔디 위 충돌’

10여년 이상 남자 테니스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페더러(38)와 나달(33)은 통산 메이저대회 우승트로피만 38개다. 페더러가 최다인 20개를, 나달이 18개로 그 뒤를 쫓고 있다.

맞대결 전적에서는 나달이 24승15패로 앞서있다. 메이저대회에서도 10승3패로 압도적 우위다. ‘흙신’ ‘클레이 황제’로 불리는 나달은 지난 6월 프랑스오픈 4강에서도 3-0 완승했다. 하지만 윔블던에서 페더러는 무려 8차례 트로피에 입을 맞췄고, 나달을 상대로도 2승1패로 앞선다.

둘의 잔디 대결(윔블던 맞대결)에 테니스 팬들의 갈증은 굉장히 컸다. 기다림이 큰 만큼 둘의 4강 맞대결이 확정되자 티켓값도 1000만 원을 상회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이런 현상에는 2008년 페더러와 나달이 대접전을 펼친 명경기에 대한 향수도 깔려있다.

2008년 7월7일. 페더러와 나달은 윔블던 결승에서 맞붙었다.

당시 클레이코트를 호령하던 '왼손 천재'가 '테니스 황제'를 무너뜨리고 잔디 코트마저 정복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나달은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08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페더러를 세트스코어 3-2(6-4 6-4 6-7<5-7> 6-7<8-10> 9-7)으로 눌렀다.

직전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에서도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나달은 윔블던에서 페더러의 6연패를 저지하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나달이 클레이가 아닌 잔디에서 페더러를 이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경기 시간만 5시간에 가까웠다. 비로 인해 두 차례나 경기가 중단된 시간까지 포함하면 무려 8시간에 이르는 대접전이었다. 나달이 쉽게 이기는 듯했지만 페더러의 반격은 승부를 접전 양상으로 이끌었다.

나달은 1세트부터 특유의 스핀을 동반한 포어핸드 스트로크로 페더러를 압박했다. 페더러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백핸드 쪽에 집중적으로 공을 보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나달은 1세트 1-1 동점에서 페더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이후에도 계속 나달은 스핀을 동반한 포어핸드를 지속적으로 구사하며 페더러의 공격을 사전 차단했다. 페더러는 나달의 높게 바운드 되는 공을 받기에 급급했고, 첫 세트는 나달의 6-4 승리로 끝났다.


2세트 반격에 나선 페더러는 1-0 앞선 가운데 나달의 서브게임을 처음으로 브레이크한 뒤 서브게임까지 따내며 3-0으로 달아났다. 나달은 1-4까지 뒤진 상황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페더러의 서브게임을 두 번 연속 브레이크하는 등 내리 5경기를 따내며 6-4로 뒤집고 세트스코어 2-0을 만들며 승기를 잡았다.

궁지에 몰린 페더러는 3세트에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키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네 차례 브레이크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5-4까지 앞서갔다. 갑자기 내린 비로 경기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경기는 6-6 타이 브레이크까지 갔다. 페더러는 강력한 서브로 7-5로 이기며 가까스로 한 세트를 만회했다.

4세트 초반 0-2 끌려가던 페더러는 타이 브레이크 끝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타이 브레이크 역시 10-8까지 가는 대접전 양상을 띠었다. 결국, 승부는 마지막 5세트에서 갈렸다. 2-2 상황에서 또 비가 내려 경기가 약 20여분 중단됐다.

땀에 젖은 페더러와 나달은 비에 젖은 잔디에서 다시 대결을 시작했다.

서브게임을 챙긴 둘은 6-6까지 왔다. 체력이 좋은 나달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달은 7-7 동점에서 15번째 페더러의 서브게임을 듀스 끝에 브레이크 하면서 승기를 잡았고,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켜 첫 윔블던 정상에 올랐다.

페더러의 윔블던 6연패를 저지한 순간이다. 나달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잔디에 누워 기쁨을 만끽했고, 시상식 때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27세의 나이인데도 “이제 30줄에 접어드는 페더러도 끝나간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페더러는 예상을 뒤집고 테니스 황제로 부활해 지금까지 정상권에 있다. 2019 윔블던 테니스를 앞두고 나달의 기세가 앞선다는 평가가 있지만 윔블던에서는 페더러가 강했다. 객관적인 전력을 놓고 봐도 예측하기 어렵다.

2008년 윔블던 결승 맞대결처럼 살아있는 두 전설의 잔디 위 맞대결은 벌써부터 테니스 팬들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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