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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세기말적 가부장제, 이젠 안녕…'이장'

  • [데일리안] 입력 2020.04.10 11:26
  • 수정 2020.04.10 11:27
  •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아버지 묘 이장 위해 모인 남매

가족간 갈등 실감나게 묘사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영화 영화 '이장'ⓒ인디스토리

"어떻게 장남도 없이 무덤을 파냐!"


네 자매 앞에서 큰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린다. 장남이 있어야만 아버지의 묘를 이장할 수 있단다. 영화 '이장'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온 한국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봤을 법한 사람들이다. 장녀 혜영(장리우 분)은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산다.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더니 회사에서 돌아온 건 퇴사 권고. 둘째 금옥(이선희 분)은 돈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불륜 증거를 모으고 있다. 결혼을 앞둔 셋째 금희(공민정 분)의 사정도 녹록치 않다. 결혼 자금 탓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예비 신랑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우유부단하다. 넷째 혜연(윤금선아 분)은 10년째 대학생으로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이들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큰아버지 집으로 간다. 큰아버지는 장남 승락(곽민규 분) 없이는 묘 이장을 할 수 없다며 맞선다. 승락은 네 자매와 연락이 닿지 않고, 결국 자매들은 승락을 찾으려 길을 떠난다.


가부장제라는 무거운 외피를 입은 '이장'은 마냥 진지하지 않다. 시종일관 유머를 던진다. 네 자매가 승락을 찾으려 길을 떠나는 도중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우리네 가족과 닮았다. 돈, 결혼, 집안 등 일상의 문제로 얽혀 진짜 싸우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가족 구성원을 실감 나게 연기한 덕이다. 얼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극에 등장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난다.


영화 영화 '이장'ⓒ인디스토리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적재적소에 뼈를 때리는 대사와 장면을 넣은 감독의 솜씨가 훌륭하다. "계집애들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장남이 무슨 벼슬이야?" 등 우리가 숱하게 들어왔던 말들에 무릎을 치게 된다.


"장남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큰아버지의 말처럼 막내 승락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네 자매보다 항상 우선시된다. 큰아버지는 네 자매와 자신의 아내에게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게 뭐 얼마나 힘드냐"고 쏘아붙이고, 이에 금옥은 그릇을 깨며 참았던 울분을 깨뜨린다. 관객의 속도 시원해진다.


'이장'은 가족 내의 차별이 사회적 차별까지 확대된 근본적인 이유를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에서 찾는다. 정승오 감독은 자신 역시 가부장제에서 자랐다며 가족 얘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썼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답답한 큰아버지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을 짐작하게끔 표현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가부장제는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래도 영화는 초등학생 동민이(강민준 분)와 가족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다. 헐뜯고 싸우면서도 서로를 이어주는 가족의 연대가 틀을 깨고 나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영화는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신인 감독 경쟁 부문 대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가 수여하는 넷팩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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