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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최고 5억’ 신인 야수 계약금, 기대만큼 쑥쑥?

  • [데일리안] 입력 2020.04.09 00:02
  • 수정 2020.04.09 07:52
  •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야수들 가운데 역대 최고액, 1999년 강혁 5억 원

90년대 박재홍-이병규-김동주 최고액 경쟁이 백미

90년대 야수 계약금 최고액을 매년 경신했던 박재홍(왼쪽부터)-이병규-김동주. ⓒ 뉴시스90년대 야수 계약금 최고액을 매년 경신했던 박재홍(왼쪽부터)-이병규-김동주. ⓒ 뉴시스

KBO리그의 신인 드래프트는 원년 이듬해인 1983년부터 개최, 제법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신인선수 지명회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됐고, 6개 구단이 지역 연고 선수들을 먼저 고르는 1차 지명, 그리고 지역에 상관없이 데려올 수 있는 2차 지명 방식으로 열렸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많은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서울을 연고로 했던 MBC 청룡(현 LG)이 무려 12명의 선수를 1차 지명 때 고른 반면, 호남에 뿌리는 내린 해태 타이거즈(현 KIA)는 고작 2명만 지명하는 불균형이 발생했다.


출범한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유망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특히 잠실 한 지붕 생활을 했던 LG와 OB(현 두산)는 지명 우선권을 놓고, 이른바 ‘주사위 전쟁’을 벌였는데 특급 선수를 먼저 뽑기 위해 밤새 주사위 연습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드래프트에 선발된 선수는 해당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이고 이듬해 정식으로 입단하게 된다. 이때 각 구단들은 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 액수를 통해 선수의 잠재력이 얼추 읽을 수 있게 된다.


KBO리그 역대 계약금에서 최상위에 포진한 선수들은 다름 아닌 투수들이다. ‘10억 팔’ 한기주를 비롯해 1997년 임선동(LG), 2002년 김진우(KIA), 2011년 유창식(한화)이 7억 원을 받으며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장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투수들과 달리 타자는 성장 과정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보니 덜 주목받기 마련이다. 실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1차 지명 때 선택 받는 포지션의 대부분은 투수이며, 야수들은 특출한 재능이 아니라면 후순위로 밀리는 게 일반적이다.


야수 가운데 역대 최고 계약금은 이중계약 파문 등의 진통을 겪고 늦깎이로 데뷔한 ‘아마야구 천재’ 강혁이다. 강혁은 동기들보다 2년 늦은 1999년 두산 유니폼을 입었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5억 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야수 최고액 기록을 썼다.


하지만 나무 배트를 든 강혁의 재능은 프로에서 통하지 않았다. 때마침 KBO리그는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 차원이 다른 선수들이 유입되자 리그 전체의 수준이 상향되는 효과로 이어졌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강혁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위는 한국 야구 3루수 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김동주와 SK, LG를 거쳐 올 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은 정상호, 그리고 한국 야구의 미래 강백호(KT)의 4억 5000만 원이다.


KBO리그 야수 역대 계약금 순위. ⓒ 데일리안 스포츠KBO리그 야수 역대 계약금 순위. ⓒ 데일리안 스포츠

김동주의 선수 시절 경력은 설명이 필요는 수준. 반면, 고교 시절 특급 포수로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정상호는 국내 잔류를 선택했으나 성장이 더뎠고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강백호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KT로부터 2차 1순위로 지명된 강백호는 키움 투수 안우진(6억 원) 다음 가는 4억 5000만 원의 계약금을 거머쥐었고, 지금까지 KT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90년대 LG와 OB의 계약금 전쟁이다. 90년대에는 전설급 선수들이 대거 배출됐는데, 1996년 박재홍은 4억 3000만 원의 야수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우며 현대에 입단, 그해 리그를 지배하며 준비된 대졸 신인은 프로에 바로 통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LG는 이듬해 등장한 이병규에게 박재홍보다 1000만 원은 많은 4억 4000만 원을 안겨 자존심을 세워줬고, 2차 1순위 지명권을 가진 OB도 이에 질세라 진갑용에게 포수 최고액인 3억 8000만 원에 계약을 마쳤다.


1998년에는 김동주를 잡은 OB가 승자였다. 이에 OB는 이병규보다 1000만 원 높은 4억 5000만 원으로 최고액을 경신했고, 포수 조인성을 1차 지명자로 점찍은 LG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 위해 진갑용보다 4000만 원 높은 4억 2000만 원으로 맞불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90년대 LG, OB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과도한 계약금을 안겼던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KBO리그 각 포지션의 최정상 선수로 군림하며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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