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비는 대형은행…상반기 예·적금 36조 증발
입력 2020.07.16 06:00
수정 2020.07.15 17:23
5대 은행 예·적금 중도 해지액 36조2979억…전년比 5.0%↑
제로금리·코로나19 장기화 탓…주식·부동산 시장 투자 영향도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및 적금 상품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반기에만 5대 시중은행의 예·적금 36조원이 증발했다. 은행권의 예·적금 금리가 0%대에 접어든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까지 맞물리면서 생활고에 시달리자 예금 이자를 포기하고 현금을 찾는 경우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1월~6월) 예·적금 중도 해지액은 총 36조297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4조5556억원)보다 5.0%(1조7423억원)급증한 수치다.
해지건수도 크게 늘었다. 이들 은행의 올 상반기 예·적금 해지건수는 총 311만4576건으로 전년동기(294만4107건) 대비 5.8%(17만469건) 증가했다.
이처럼 은행들의 예·적금 중도 해지액과 해지건수가 늘어난 이유는 제로금리로 저축 매력이 떨어진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50%로 조정하면서 예금 및 적금 금리도 대부분 0%대로 내려앉았다. 실제로 은행연합회에 공시에 따르면 이들 5곳 은행의 예금상품 중 기본금리가 1년 만기 기준 1% 이상인 상품은 단 한군데도 없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 3월 5대 시중은행의 예·적금 중도 해지액은 7조838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해지액 규모가 4월 5조5666억원, 5월 4조9035억원으로 줄어드는 듯 했으나 6월 들어 다시 확대됐다.
여기에다 제로금리 환경 속에서 시장을 관망하며 주식시장과 부동산 등에 투자하기 위해 요구불예금으로 자금을 대거 이동시킨 것도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며 잇따라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부동산 열풍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총 1만2881건으로 2018년 8월 이후 22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의 6월 요구불예금 잔액은 566조31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급증했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 예금 등 예금자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는 예금으로, 이자는 연 0.1% 수준으로 낮지만 일정 기간 돈을 묶어야 하는 정기예금과 달리 입출금이 자유롭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적금 상품 금리가 0%대로 떨어졌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생활자금 마련 등의 목적으로 예·적금을 깨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의 경우에는 코로나19 충격에 대비해 현금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투자를 하기 위해 예·적금을 깨기도 하고 마땅한 투자처를 차지 못해 요구불예금에 자금을 넣어두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며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