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게 배상받을 길 열렸는데…정부는 '뜨뜻미지근', 국제사회는 '환영'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0.07.09 00:10
수정 2020.07.09 06:06

통일부 "참전군인 판결, 일반화 어려워"

연락사무소 폭파한 北 책임 안 물을 듯

北 인권전문가 "판결승소 고무적"

법원이 처음으로 북한을 민사 책임 당사자로 인정한 가운데 한국 정부와 국제 사회가 '온도차' 있는 반응을 내놨다.


6.25전쟁 참전군인들에게 북한 당국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에 대한 북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정부는 관련 가능성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참전군인 배상 판결과 관련해 "정부는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며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남북 간 그리고 국제사회와 협조하면서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전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로 노역을 했던 참전군인들에게 북한 당국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피고로 명시해 민사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편결 이후 법조계 안팎에선 북한의 불법 행위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북한 당국과 김 위원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폭파 관련 정부 차원의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에 대해 "법원 판결은 각 판결에만 유효한 것"이라며 "해당 판결로 인해 일반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실효성이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호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던 지난달 16일, 북한에 배상 책임을 묻는 방안에 대해 "모든 상황을 열어놓고 여러 가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통일부 당국자 역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책임을 묻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했었다.


정부가 관련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3주가 지난 상황에서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며 '판결을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건, 사실상 북한에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北 인권 피해자들에게 긍정적인 판결"
"작은 움직임 모여 큰 움직임 된다"


'판결 일반화'에 선을 그은 한국 정부와 달리 국제사회와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참전군인들의 승소 판결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권 활동가인 데이비드 말릭 변호사는 7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 포로들이 한국 법원에서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승소한 것은 고무적"이라며 "이번 판결이 미국과 일본 등에서 비슷한 소송을 제기한 북한 인권 피해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릭 변호사는 "인권과 관련한 승리는 차츰차츰 쌓여 가는 것"이라며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움직임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 입은 부분에 대한 기초적인 보상금 지급과 한 사람의 인권 상실을 어느 정도 평가할 수 있게 하는 법적 도구의 활용을 장려하는 긍정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어떤 법원이 됐든 정치적 고려 없이 한국 시민에게 법이 정하는 정당한 보상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북한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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