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상태' 통합당, 비대위 불가피…향후 전망은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4.16 05:00
수정 2020.04.16 05:05

겨우 개헌저지선…보수정당 사상 최악 참패

주요 지도급 인사 낙선…'진공 상태' 빠졌다

황교안, 대권주자로서의 생명력 사실상 끝나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유례 없는 패배가 예상되던 15일 저녁 황교안 대표가 국회도서관 선거상황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사퇴를 밝힌 뒤 떠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4·15 총선의 결과, 우리나라 대표 정통 보수야당은 토대부터 재건이 불가피한 '권력 진공 상태'에 빠졌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할 상황이지만 범보수 진영 전체가 내상을 심하게 입은 상황이라, 통합당의 재건 과정에서 당분간 극심한 혼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15일 치러진 총선 결과에 따르면, 통합당은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간신히 웃도는 의석을 차지하는데 그칠 전망이다. 대한민국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총선 참패다.


의석 수 참패도 참패지만, 주요 지도급 인사들이 전부 낙선하는 '리더십 진공 상태'가 뼈아프다는 분석이다.


황교안 대표는 당대표로서 치른 총선에서 참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마저 상징성이 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20%p에 가까운 격차로 대패하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생명력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이다.


황 대표의 당권 경쟁자였으며 중도 확장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던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도 서울 광진을에서 정치신인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분패했다. 험지였다고는 하지만 총선에 패배해 원외에 머물게 됨으로써 내년 재·보궐선거로 등원하는 등 특단의 반전 계기가 없는 한 2022년 대선에 나서는 길이 험해졌다는 관측이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이언주 의원,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잠재적 대권주자군으로 평가받던 통합당 인사들도 각각 서울 동작을, 부산 남을, 세종을에서 패배했다.


부산으로 귀향을 강행한 이 의원은 고향에서 패하면서 돌이키기 쉽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김 전 위원장도 험지였다지만 총선에 패배해 원내 진입에 실패하면서 선출직 경력을 만들지 못했다. 선출직 경력이 없는 사람이 가장 큰 선출직 선거인 대선에 직행할 수는 없으므로 대권의 꿈을 관철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분석이다. 나 전 원내대표도 내년 재보선 등 특단의 계기 없이는 정치 휴지기를 갖는 게 불가피해졌다.


비대위 불가피…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 '0순위'
김종인 수락할지 의문…통합당에 학을 뗀 모습
충분한 전권·활동기간 부여하고 설득할지 관심


불출마를 하고 총선을 측면 지원한 유승민 의원도 지상욱·진수희·이혜훈·이준석·오신환 등 측근 후보들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경기 평택을에서 당선된 유의동 후보 등 당내 기반 일부는 잔존했지만, 권력 진공 상태를 계기로 당의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황교안 대표가 사퇴함에 따라 서열 2위인 원내대표가 당대표권한대행으로서 당을 이끌어야 하지만, 심재철 원내대표조차 낙선했다. 지도부 공백 상태는 5선 고지 등정에 성공한 조경태 수석최고위원 중심으로 수습하는 게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경태 최고위원에게 놓여진 당면 과제는 비대위 구성을 위한 위원장 추대다.


비대위는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총선을 지휘하며 개헌저지선을 가까스로 지켜낸 김종인 위원장이 '0순위'로 꼽힌다.


다만 과연 김종인 위원장을 당에 붙들어놓을 수 있을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김 위원장은 총선을 지휘하는 불과 십수 일의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통합당의 '막장' 상태에 학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그 스스로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15일 투표를 하면서는 더 이상 당에 남아있을 생각이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 말고는 비대위를 이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범보수 인사층에 여러 이유로 너무나 큰 흠집이 났다.


총선 참패는 공천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비대위로 들어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병호 박사도 미래한국당 공천 사태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보수 성향의 유튜브를 운영하는 몇몇 저명 인사들도 김대호·차명진 막말 사태 때 이들을 비호하는 등 민심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며 총선 패배에 일조했기 때문에 비대위를 맡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통합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비대위원장으로 눌러앉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극적 역전승으로 5선 고지에 오른 정진석 후보 등 중진의원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혁신비대위 실패한다면 '관리형 비대위' 세워야
3개월 당헌당규 정비한 뒤 7~8월 전당대회 수순
정진석·주호영·조경태 등 5선 급이 전대 나설듯


정진석 의원은 앞서 8일 공주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원 방문을 한 김 위원장을 향해 "개인적 소망이 있다면 이번 4·15 총선 이후에도 김종인 위원장이 제1야당 통합당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고 이행해나가는데 있어서 지도편달해주는 일을 계속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이미 요청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김종인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7~8월 전당대회 이전까지 3개월 남짓 짧은 기간 맡는 이른바 '관리형 비대위'를 수락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통합당을 쇄신하는데 필요한 전권과 충분한 시간이 부여돼야 할 것이기 때문에 짧게는 내년 2월까지, 길게는 대선 전까지 가는 '혁신형 비대위'가 출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종인 위원장이 끝내 거절하면 혁신형 비대위를 맡을 인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관리형 비대위'가 서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에는 내달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원내대표 중심으로 현안을 처리하고,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당헌·당규 정비와 세칙만 결정하기 때문에 누가 맡든 큰 상관은 없다.


'관리형 비대위'가 들어설 경우, 정기국회 직전인 7~8월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선출한다. 당원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당대표가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대여투쟁의 구심점에 서는 정석 수순이다. '황교안 체제'의 참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원외 인사나 정치 신인의 선출은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치력과 정무 감각을 갖춘 중진의원이 당대표를 맡는다고 하면, 이번 총선을 통해 나란히 5선 반열에 오른 정진석·주호영·조경태 의원이 '1순위'다. 각각 충청권과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을 대표한다는 점도 특색이다.


'황교안 체제'에서 취했던 단일지도체제가 미흡한 리더십을 보완하지 못한 채 총선 대패라는 참화를 불러왔기 때문에 당헌·당규를 개정해 이들 중 한 명이 대표최고위원을 맡고 다른 두 명은 최고위원을 하는 방식으로 지도부의 구심력을 보완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끝으로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결과적으로 '죽는 길'로 드러난 공천관리위원회의 험지 차출 요구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고향 출마를 단행해 살아남았다. 기대했던 압승은 하지 못했지만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지위는 보존했다. 이들의 복당 시점 등도 향후 통합당 상황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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