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도 순실히' 시사 풍자 살리니 '개콘'도 산다
이한철 기자
입력 2017.01.02 15:13
수정 2017.01.03 20:20
입력 2017.01.02 15:13
수정 2017.01.03 20:20
'개콘' 대통형 코너, 한층 수위 높인 풍자 눈길
'웃찾사'도 살점-LTE뉴스 등 풍자 코너 강화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들끓은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한동안 방송가에서 사라졌던 풍자 개그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각 방송사 대표 개그 프로그램들은 서둘러 시국 풍자 코너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렇게 부활한 코너 대부분이 재미와 화제성은 물론, 시청자들의 격한 공감까지 이끌어내며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KBS 2TV '개그콘서트'의 화제 코너 '대통형'이다. '대통형'은 새해 첫 날부터 국회 청문회 속 화제의 인물들을 총출동시키며 정유년 새해에도 거침없는 풍자의 닻을 올렸다.
지난 1일 밤 방송된 '대통형'은 새해를 맞아 대통령 서태훈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국무회의가 시작됐다.
서태훈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병신년이 가고 2017년 정유라가, 아니 정유년이 밝았다. 국민 여러분들을 위해 나랏일을 순실히, 아니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이라며 "한마디로 정유년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엉터리 연설문은 국무총리 유민상이 써 준 것으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후 서태훈이 "말을 많이 해서 입이 텁텁하다"고 말하자 국군장교 정복을 입은 개그우언 김니나가 등장해 "의료용 가글이다"며 건네줬다. 김니나는 "의무동에서 왔다"고 했다가 다시"의무실에서 왔다"며 말을 바꿨다. 왜 자꾸 말이 바뀌느냐고 묻자 김니나는 "차근히 되짚어보니 의무실이 맞다"며 청문회에서 위증 의혹을 받고 있는 조여옥 대위를 패러디했다.
서태훈은 또 자꾸 방청석을 바라보는 김니나에게 "누구를 보는 거냐"고 물었고, 멀리서 김니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최희령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청문회 당시 조여옥 대위를 감시하는 인물로 지목된 이슬비 대위까지 '대통형'에 등장시키며 통쾌한 웃음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서태훈은 국무회의에서 퇴장하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어디로 가냐고 묻는 유민상의 말에 "모른다. 누가 물어보면 대통령이랑 모르는 사이라고 하라. 요즘 서로 모른다고 하는 게 유행이더라"며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개그콘서트'의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다. 11월 이후 꾸준히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통형'은 시청률 상승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대통형'은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을 훨씬 상회하는 14% 안팎의 폭발적인 시청률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시청률 부진에 시달리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시사 풍자 코너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JTBC 시사 토크쇼 '썰전'을 패러디한 '살점'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국정원 선거개입 등 민감한 소재를 다뤘던 'LTE뉴스'도 다시 부활했다.
사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지상파 방송에서 이처럼 수위 높은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방송가의 새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방송가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 등 당분간 초대형 이슈가 줄줄이 예고된 만큼, 오히려 국민들의 시선은 연예나 스포츠가 아닌 정치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뉴스에 지친 시청자들은 풍자 개그를 통해 그나마 웃음을 되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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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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