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지원금 들어보셨나요?' 현대차 노조 황당 요구
박영국
입력 2013.07.12 14:07
수정 2013.07.13 15:48
입력 2013.07.12 14:07
수정 2013.07.13 15:48
대학 미진학 자녀에 1000만원 지급…부인 고모부 사망해도 3일 휴가
현대자동차 노조가 2013년 현대차 노사 임금단체협약(이하 임단협) 교섭에서 1인당 연간 총액 1억원 상당의 추가 임금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노조측 요구안에 ‘대학 미진학 자녀에 대한 1000만원 지원’ 등 상식을 벗어난 항목들이 다수 포함돼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12일 현대차에 따르면, 노조측은 기본급 인상, 순이익 30%에 해당하는 성과급, 정년 61세까지 연장, 상여금 인상, 퇴직금 누진제 적용, 생리유급휴가 미사용 보상액 인상, 장학제도 강화, 진료비 지원 강화 등 총 75개 항목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노조 요구안 100% 수용시 연간 1억 추가…연봉 2억까지 상승
기본급은 13만498원 인상을 요구했고, 성과급은 2012년 당기순이익(5조2734억원)의 30%를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를 조합원 수로 나누면 1인당 320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800%를 요구했다. 통상임금의 750%가 지급됐던 지난해보다 50%포인트 오른 금액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 인상과, 복지 항목 신설 등까지 감안하면, 노조 요구가 100% 수용될 경우 현대차 노조는 기존 수입보다 약 1억원 늘어난 연봉을 받게 된다.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 연봉은 평균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 1억원이 늘어나면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는 올해 평균 2억원의 고액 연봉자가 된다.
전체 금액보다 놀라운 사실은 현대차 노조 요구안 중 복지 관련 요구안에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꿈도 못꿀 내용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대학 미진학시 1000만원 요구…재수 후 학자금까지 중복수령 악용 우려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장학제도 관련 사안이다. 현대차는 현재 3년 이상 근속한 조합원에 대해 3자녀까지 중, 고등, 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아교육비 명목으로 미취학 자녀에게 1년간 분기별 15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한 자녀 대학 등록금도 지원받지 못하는 직장인이 태반인 상황에서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복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장학제도 적용 대상을 1년 이상 근속 조합원까지 확대하는 한편, 지원 대상 자녀 숫자 제한도 없애고 모든 자녀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또, 유아교육비도 2년간 분기별 20만원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다자녀 출산 장려’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학 미진학자녀 취업지원 기술취득지원금’이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어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도 요구안에 포함됐다.
한 마디로,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경우 학자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돈으로 달라는 얘기다. 학자금 지원 대상을 ‘모든 자녀’로 확대하는 요구안과 맞물려 학자금 관련 금액을 최대한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명목상으로는 ‘취업지원 기술취득지원금’이라고 하지만, 사측은 이 항목이 수용될 경우 사실상 ‘재수지원금’으로 활용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상당수의 부모들이 자녀를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시키기 보다는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경향이 강한 상황에서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하려는 자녀에 대해서도 ‘대학 미진학자녀’라는 점을 들어 지원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아가, ‘기술취득지원금’과 ‘학자금 지원’을 중복해 적용받는 식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기술취득지원금’ 수용 여부 자체가 결정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적용 방식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노조 측에서 자녀가 첫 해 대학 진학에 실패할 경우 ‘기술취득지원금’ 명목으로 사실상 ‘재수지원금’을 받아낸 뒤 이듬해 대학에 진학해 다시 학자금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현대차 노조 요구안에는 일반 직장인들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생리휴가 미사용시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던 것을 150%로 늘려줄 것과, 사업장 내 및 출퇴근시 발생한 재해에 대해 산재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회사측에서 근태와 치료비를 부담할 것도 요구했다. 가족을 포함한 진료비 지원 연간 한도액도 기존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상향해 달라는 내용도 요구안에 담겨 있다.
경조사 휴가일수도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다. 자녀 결혼이나 출생시 기존 3일의 휴가를 주던 것을 5일까지 확대하고, 배우자 형제자매의 배우자(동서) 사망시에도 기존 1일이었던 휴가를 3일까지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는 배우자의 백숙부모 사망시에도 3일 휴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부인의 고모부가 사망해도 3일을 쉬겠다는 얘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각종 수당 및 복지금액 뿐 아니라 휴가일수 확대도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와 생산일수 감소로 타격이 된다”며, “노조측의 지나친 요구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내 정치적 역학관계로 요구 강도 심해져” 시각도
이처럼 노조의 요구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노조 내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정치에 비유하면 ‘여당’에 속하는 현 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상식적인 수준에서 합의를 보더라도, ‘야당’에 속하는 대의원들의 반발로 최종 타결에 이르기 힘들어 아예 요구안부터 무리하게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모 업체 노무관련 업무 담당자는 “노조 집행부에는 많은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정치 싸움이 치열하다”며, “차기 집권을 노리는 대의원들은 집행부의 결정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마련이고, 이 때문에 노사가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도 다시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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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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