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윤리냐, 도덕 잣대냐…정치권 '공천 기준'에 갑론을박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6.04.24 05:05
수정 2026.04.24 08:26

이은해 변호한 홍덕희 공천 원점 재검토 논란 확산

과거 '李대통령·김상욱·조수진' 등도 같은 논란에

'변호 이력' 공천 반영에 "가혹" vs "그럴 수 있다"

일각선 "명확한 기준 없어…사회적 합의 필요해"

'계곡 살인사건' 주범인 이은해를 변호했단 이력으로 공천이 원점 재검토된 홍덕희 국민의힘 구로구청장 후보가 17일 한 지하철 역사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홍덕희 페이스북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의 과거 변호 이력이 지방선거 판을 흔들고 있다. 변호사 시절 맡았던 사건들이 논란이 되자 공천이 취소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다. 이같은 과거 변호 이력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는 사례가 여럿 있었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잣대가 공천에 영향을 미쳐야하는지에 대해선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서울특별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1일 공지를 통해 홍덕희 구로구청장 후보가 '계곡 살인사건' 주범인 이은해를 변호했단 이력이 밝혀지자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과 관련된 일인 만큼 후보 자격의 적절성에 대해 원점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은해는 2019년 6월 경기 가평의 한 계곡에서 남편 윤모씨에게 4m 높이의 바위에서 깊이 3m 물속으로 뛰도록 강요해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2023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홍 후보는 과거 변호사 시절 이은해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이에 대해 홍 후보는 "아무리 지탄받는 범죄자라 해도 변호인은 있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행한 무료변론을 악마화하는 행태에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반발했다.


전날에도 홍 후보는 페이스북에 "세상 모두가 그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고 비난할지라도, 피고인의 말을 들어줄 세상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헌법으로 보장하는 변호인의 존재 이유이자 공적 사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같은 '변호 이력'이 논란이 된 건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청장 후보로 이승훈 변호사를 공천했다. 이 변호사는 과거 13세 미만 아동을 유인해 유사 강간과 강제 추행을 반복한 피고인을 변호한 이력이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후보 공천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도 변호인의 과거 이력이 논란이 된 경우는 있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울산 남갑에 출마해 초선 의원으로 당선된 김상욱 현 민주당 의원은 과거 변호사 시절 의붓딸 성폭행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이력이 논란이 됐다.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강북을에 공천을 받았던 조수진 변호사는 태권도장 사범이 초등학생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항소심에서 피고인 변호를 맡았던 이력이 논란이 돼 결국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2021년 대선 정국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도 16년 전 조카의 교제 살인사건을 변호했다는 이력이 밝혀지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해당 이력이 논란이 되자 이재명 당시 후보는 "다시 한 번 피해자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대선을 끝까지 완주한 이 후보는 이후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뒤 제21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지난 2024년 3월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당시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조수진 서울 강북을 후보(왼쪽)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 후보는 성범죄 변호 논란으로 인해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연합뉴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의 '변호 이력'이 논란이 되자,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엇갈린 시각이 감지되고 있다. 변호사의 직업 윤리 중 하나인 '의뢰인에게 성실히 대하고 가능한 한 위임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성실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걸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어서다.


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보장이 돼 있는 것인 만큼, 누구를 변호했다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논란에 빠지게 된다"며 "특히 형사 변호인은 확률적으로 뭔가를 잘못한 사람을 변호할 확률이 높은데 그 일을 한 것에 사회적 비난이 전가된다는 이유로 공직에 오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변호인들이 사건을 맡는 걸 꺼리게 되는 사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형사 변호인 제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률가 출신인 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도 "누구를 변호했다는 것만으로 공직 출마 자격을 가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 변호사는 그저 일을 열심히 한 것이 아니냐"라며 "피해자 뿐 아니라 피의자 역시 변호받을 권리가 있는 건 명백한 권리인데 그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일을 가려가면서 받아야 하는 건가. 그게 공천의 기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법률가 출신 한 국민의힘 의원은 "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건을 맡을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국민의 시각에서 너무 죄질이 안 좋은 사건을 변호했단 이력을 가진 사람에게 공천을 주는 게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 출신 정치인도 "누군가를 변호한다는 건 법률인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그 사건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증폭기 역할을 하거나 피의자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스피커의 역할을 한다면 변호인의 역할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며 "어떤 사건을 맡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대했느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논란은 변호 이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정치권의 대응이 서로 엇갈린단 점이다. 이번 6·3 지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인 홍 후보의 공천은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소속인 이 후보의 공천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변호 이력이 논란이 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사건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결국 기준이 없는 것"이라며 "변호사가 변호 일을 열심히 한 게 범죄는 아니지 않나. 이런 부분에서는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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