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상상력 극대화” vs “창작 자율성 침해” [과정공유, 미완의 미학③]
입력 2025.09.15 09:11
수정 2025.09.15 09:11
관객과 함께 하는 '과정공유'의 두 얼굴
"창작의 안전지대 혹은 끊임없는 시험대"
관객과 함께 작품을 키워나가는 ‘과정공유’는 창작자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전례 없는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찬사를 받는다. 반면,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섣불리 노출하는 것이 창작의 자율성을 해치고 신비감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시도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과정공유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자와 관객, 작품 사이에 깊은 ‘유대’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극작가 도은은 현재 국립극단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창작벨트’ 사업과 관련해 “개발 단계부터 관객(청소년)과 함께하는 과정은 작품에 대한 유대를 깊이 쌓아 미래의 관객을 확보하는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기존 지원사업은 완성된 희곡의 초연에 치중되었지만, 과정공유는 낭독이나 초고를 공유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 오히려 초연 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완성 작품 공유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성장 서사를 공유한 관객은 단순한 팬을 넘어 작품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동반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는 창작자에게 심리적, 물리적 ‘안전지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과거 국립극단이 진행한 ‘창작공감: 작가’ ‘창작공감: 희곡’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사업을 진행한 담당자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내외부 피드백을 제공하고 개발 과정을 공유했던 사업”이라며 “공개 낭독회와 개발 과정 콘텐츠 공개를 통해 관객이 개발 단계에 참여하도록 설계되어, 작품이 성장하는 과정을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했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즉 결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동력을 마련해준 셈이다.
하지만 과정공유에는 단점과 위험도 존재한다. 가장 큰 우려는 ‘미완성 단계에 대한 섣부른 비판’이다. 한 극작가는 “리딩공연만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관객 호응도를 재단해 무대화가 무산된다면 창작자 입장에선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지적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노출되었을 때, 그 잠재력을 보지 못하는 비판에 직면해 좌초될 위험이다. 이는 완성된 작품이 주는 ‘신비감’을 저해하고, 핵심 내용이 미리 노출되는 ‘스포일러’ 문제와도 직결된다.
창작진과 배우들이 느끼는 ‘과정 노출에 대한 부담감’도 무시할 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작업을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환경은 창작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과정에 공을 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리딩공연 사업 관계자는 “개발 단계의 성과가 본 공연의 완성도로 직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작품 내용에 따라 필요한 개발 기간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안정적인 완성도를 담보하지 못하는 구조적 아쉬움도 존재한다”면서 “결국 ‘과정공유’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지원이나 외부 확산 루트를 체계적으로 마련하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극작가 도은은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과정공유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작품의 질적 발전을 위해선, 현재 과정공유 사업이 현저히 적고 결과 중심의 사업이 주를 이루는 형태에서 변화될 시점”이라며 “비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수용하며 발전시키느냐가 훨씬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가 ‘창작벨트’를 통해 만난 청소년들을 ‘치열한 창작자’라고 느꼈던 것처럼, 과정공유는 관객을 단순 피드백 제공자에서 창작의 영감을 주는 주체로 격상시킨다. 이는 창작자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고, 고정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극을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과정공유는 ‘공공의 장에서 모두가 함께 창작하기’라는 이상과 ‘시장의 안정성’이라는 현실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섣부른 비판을 경계하고 미완의 가능성을 응원하는 성숙한 관객 문화, 과정의 실험을 인내하고 지지해주는 안정적인 지원 제도, 그리고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관객과 손잡는 창작자의 용기.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질 때, ‘함께 키우는 기쁨’은 ‘미완성의 위험’을 넘어 우리 공연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건강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