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 잰 듯한 연출”…다시 숨 쉬는, 임영웅표 ‘고도를 기다리며’
입력 2025.09.09 13:07
수정 2025.09.09 13:07
극단 산울림 고(故) 임영웅 연출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소극장 산울림 개관 4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 2019년 명동예술극장에서 50주년 기념 공연을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졌던 공연이 6년 만에 재개되는 셈이다. 소극장 산울림 무대에 이 작품이 다시 오르는 건 7년 만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 현대극의 흐름을 바꾼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으로, 1969년 고 임영웅 연출에 의해 국내에 알려졌다. 이후 50년간 약 1500회의 공연을 통해 22만명의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조리극은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작품이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의 창단, 1985년 소극장 산울림의 개관과도 함께한 산울림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출가 임영웅의 해석을 그대로 담아낼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생전,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에 대한 세부 내용까지 세세하게 기록해둔 연출노트도 활용될 예정이라고 극단 관계자는 전했다.
심재찬 연출도 임 연출의 연출 노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그의 연출노트엔 ‘세 발짝 반 가서, 시선을 45도 틀어서’라고 동선과 시선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면서 “극중 ‘우린 꽁꽁 묶여있는 거 아닐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렇게 우리도 임영웅 연출에게 꽁꽁 묶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고도를 기다리며’에 참여해 온 배우 이호성이 블라디미르 역을, 2005년부터 함께했던 배우 박상종이 에스트라공 역을 맡는다. 포조 역에는 2013년부터 합류한 배우 정나진이 출연하며, 럭키 역에는 배우 문성복이, 소년 역으로는 배우 문다원이 새롭게 캐스팅 됐다.
이호성은 “임영웅 선생님의 연출 의도는 워낙 상세하다. 실제 공연에서 동선과 시선이 한 번도 정확하게 맞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공연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시선 하나만 틀려도 다 기억하고 계시다가 공연이 끝난 후에 지적을 해주셨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좋았다’고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심 연출 역시 “임영웅 선생님은 배우들에게 디테일하게 시선까지 요구했다”며 ‘자로 잰 듯한 연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상종은 “산울림의 40주년도 의미가 깊지만, 선생님의 1주기 추모라는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며 “하늘에서 이 공연을 보시면서 호랑이 선생님처럼 화를 내실지, 아니면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지 생각하면서 선생님에게 이 작품을 바치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 부조리극의 효시로 여겨지고, 줄거리만 놓고 보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연극이 끝나면 관객들 사이에서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호성 역시 “‘고도를 기다리며’는 제 인생의 가치관을 바꿔놓은 작품”이라며 “난해하지만 공부할수록 새롭고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도’는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명작이다. 옛날에 외국의 한 교도소에서 이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공연 후 죄인들에게 ‘여러분의 고도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술’ ‘빵’ ‘고기’ ‘여행’ 등 각기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고 하더라. 그렇게 ‘고도’가 무엇인지는 딱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9월 10일부터 10월 4일까지 소극장산울림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