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안 쏟아내면서 선물 보따리 압박…재계 속내는 까맣게
입력 2025.08.12 14:33
수정 2025.08.12 17:04
與, 재계 반발에도 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처리 강행할 듯
배임죄 완화 추진·입법 간담회 등 달래기에도 우려 여전해
친기업 표방해놓고 압박에…"보여주기식" "너무하다" 비판
우리 기업이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 몰렸다. 미국 관세 정책으로 수출 장벽이 높아진 데다, 정부·여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과 상법 추가 개정 등 각종 기업 규제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고, 국내외 투자 보따리까지 준비해야 해서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정부·여당이 친(親)기업 정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에서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12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1일 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골자인 3차 상법 개정안은 다음달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 확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골자로 한다. 재계는 노조법이 개정되면 원·하청 간 법적 책임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계약질서를 훼손하고, 기업 활동에 지속적인 소송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날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내 산업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업종별 다단계 협업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하여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노조의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방어권(대체근로 허용사업장 점거 금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물론 해외 생산시설 투자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노사관계의 안정과 국가 경제를 위해 노조법 개정을 중단하고 노사 간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면서도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당장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있는 만큼 보완 입법을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최후의 카드로 헌법 소원 심판 청구도 검토 중이다.
2차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서도 재계는 "추가적인 상법 개정이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우리 기업들을 무방비로 노출시킬 수 있다"며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악화와 기업 가치 하락을 초래하여 결국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에 대해서도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면 경영권 보호 수단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자사주를 쓸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게 줄어든다는 이야기"라며 "자사주를 살 사람이 앞으로 이걸 과연 사겠느냐"라고 했다.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 등에 대한 재계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여당은 달래기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30일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배임죄의 적용 기준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경제형벌 합리화 TF'를 구성했다. TF는 전 부처의 경제형벌 규정 가운데 30%를 개선할 계획이다. 사업주의 고의·중과실이 없거나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정부는 내주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를 갖고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민주당도 자사주 소각 문제와 관련해 이달 중 재계와 만나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반발을 의식한 명분쌓기용 간담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기업의 목소리를 듣겠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겪는 규제 부담을 줄이는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면 간담회는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 규제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국내외 투자 압박에도 직면했다. 오는 24~26일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재계 총수들이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일본·EU 수준으로 상호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에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와 1000억달러 규모의 LNG, 원유 등 에너지 수입을 약속한 바 있다. 경제사절단은 관세·반도체·인공지능 등 전략산업 대미 투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정부가 지금도 성장도 필요하다며 친기업 정부라고 계속 강조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나쁜 것만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 쪽으로 유도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거나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