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장벽 흔들리나...한화 '필리조선소'에 쏠린 눈
입력 2025.06.19 16:08
수정 2025.06.19 17:39
미 상·하원, 100년 넘은 '존스법' 폐지 법안 발의
한화, 美 필리조선소 인수로 현지 생산 기반 확보
“법안 통과 시 지위 희석 vs 활용 범위 넓어져”
100년 넘게 미국 내 연안 해상운송을 보호해온 ‘존스법(The Jones Act)’ 폐지 법안이 미국 의회에 발의되면서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법안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미 조선업 시장 개방 논의가 본격화되며 현지 생산 기반을 마련한 한화의 전략이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하원이 ‘미국 수역 개방법(Open America's Waters Act)’을 각각 발의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법안은 한국 조선사의 미국 시장 진입을 사실상 가로막아온 존스법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모든 화물을 미국에서 건조하고 미국 선적으로 등록된 선박에 한해 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박의 소유자와 승무원 역시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로 한정된다.
자국 조선업 보호를 위한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업 경쟁력 저하와 물류비 상승, 에너지 수입 왜곡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미국 의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난 4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도 재발의하며 조선산업 재건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법안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사 법안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업계 로비와 지역 이해관계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내 설비 투자를 통한 자국 조선업 재건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화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내에서 대형 선박을 연속 건조할 수 있는 유일한 민간 조선소다. 미 정부 조달시장 진입 요건인 ‘현지 생산’을 충족할 수 있다.
업계에선 존스법이 폐지될 경우 필리조선소의 독점적 지위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외 지역에서 건조한 선박도 연안 운송에 투입될 수 있게 되면 ‘현지 생산’이 갖는 전략적 우위가 약화될 수 있어서다.
반면 한국이나 타국에서 수주한 선박을 미국 현지에서 수리·개조하는 방식 등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장점도 거론된다. 설비 확대와 자동화, 인력 양성 등 한화오션의 장기 계획과 노하우에 따라 필리조선소의 경쟁력이 점차 강화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내 경쟁 측면에선 존스법 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편이 필리조선소에도 유리하겠지만, 통과되더라도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활용이 가능해 장단점이 공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필리조선소는 2018년 이후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약 1억 달러(약 1400억원)를 투입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한화오션이 40%, 한화시스템이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이 당면 과제지만 북미 조선시장 내 입지를 확보하려는 장기 전략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화는 이곳을 해군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정비(MRO)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현재 연 1~1.5척 수준인산 능력을 2035년까지 8~10척으로 확대하고, 인력도 1500명에서 3000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한화는 필리조선소 외에도 미국 군함 건조업체 오스탈의 지분 확대를 추진 중이다. 지난 3월 오스탈 지분 9.9%를 인수한 데 이어 19.9%까지 확대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한화의 지분 보유 한도를 최대 100%까지 승인하면서 현재는 호주 외국투자심사위원회(FIRB)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는 한화가 필리조선소와 오스탈을 양축으로 삼아 북미 방산·상선 시장에서 통합 수주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한다. 증권가에선 존스법 시장 확장성과 설비 투자 계획을 반영해 필리조선소의 기업가치를 현금흐름할인법(DCF) 방식으로 11조3000억원, 미국 함정 신조 시장 진출 가치는 12조4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필리조선소는 한화오션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한화오션은 조선업 협력을 강조한 미 정부의 부름에 가장 빠르게 답할 수 있는 조선사로, 관련 법안 통과에 따른 수주 성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