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의 망나니 칼춤"…'칼질'에 걸레짝 돼가는 예산안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4.11.23 14:54
수정 2024.11.23 14:58

상임위마다 야당 단독 의결 행태 잇따라

대통령실·방통위·경찰 등 '밉보인' 기관

특활비·인건비 등 거침없이 '전액삭감'

"이런다고 이재명 대표 살아나는 것 아냐"

박찬대 국회 운영위원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의결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25년도 예산안이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예산심사 과정에서 '걸레짝'으로 변해가고 있다. 상임위에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끼리만 일방적으로 예산안을 의결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데다, 그 내용도 정부안은 '묻지마 칼질'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화폐 예산'은 임의로 만들어내는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 예산 등을 심의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예산 등을 심의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경찰 예산 등을 심의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끼리만 예산안을 의결하는 행태가 잇따랐다.


박찬대 국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예산안 심의 내역에 반발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끼리만 모여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날 국회 운영위는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 예산 82억5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전액 삭감을 제안한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의 경우, 경호처와 다르게 사용처와 사용 목적 등에 대한 소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분풀이 예산, 정부 목조르기 예산 말고 정상적인 예산안을 만들자"며 "대통령실의 손발을 묶는다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정치생명이 경각에 달린) 이재명 대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


다른 야당에서조차 의구심이 제기됐다. 국회 운영위 소속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특활비 100% 전액 삭감은 과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소용 없었다.


21일 운영위, 20일 과방위·행안위에서
여당 퇴장·야당끼리 예산안 의결 '닮은꼴'
대통령실·안보실 특활비 82억 전액 삭감
與 "분풀이식 '정부 목조르기' 예산안"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그 전날인 20일에는 국회 과방위와 행안위에서 마찬가지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끼리만 예산안을 의결하는 일이 일어났다.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은 이날 과방위 전체회의를 열어 방통위 본부 총액 2억5000만원, 운영지원과 기본경비 3억원, 기획조정관 기본경비 6억8000만원 등을 삭감하고, 방통위의 방심위 지원예산도 위원장·부위원장 등의 연봉을 대거 삭감하는 등 총액 37억원 삭감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의 정무조정실장이었던 김우영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법관 출신 주제에"라는 막말을 들으면서까지 4개월 가까이 묵묵히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태규 대행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김태규 대행은 "(방통위가) 2인 체제로 근근이 버텨가던 시간도 1년이 훨씬 넘고, 1인 체제가 된 시점도 벌써 4개월이 가까워진다"며 "방통위의 기관 마비 사태는 헌법재판소의 변론 과정에서 헌법재판관들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추천될 상임위원 3명에 대한 급여와 직책수행경비 등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며 "방통위 상임위원 3명의 추천을 조속히 진행하려는 의지가 자칫 예산상의 결함으로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배려해달라"고 촉구했다.


애초 존재하지도 않던 지역화폐 발행지원
예산은 허공에서 2조원 새롭게 창조해내
오세훈 "이재명 위한 '맞춤형 예산농단'
민주당은 폭거의 '망나니 칼춤'을 거두라"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신정훈 국회 행안위원장도 같은날 행안위 전체회의를 열어 경찰청의 특수활동비와 행안부 경찰국 기본경비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애착을 보여온 '지역화폐 예산'은 새로이 만들어내는 내용의 예산안을 여당 의원들의 항의와 퇴장 속에서 야당 의원들끼리만 단독 의결했다.


국회 행안위는 경찰청 특수활동비 31억6000만원을 전액 삭감하고, 방송조명차·안전펜스 예산 등도 26억4000만원 삭감했다. 행안부 경찰국 기본경비 예산은 1억700만원 전액이 삭감됐다.


반면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화폐 발행지원 예산은 2조원이 생겨났다. 이상식 민주당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역화폐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기에 확실한 마중물을 부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은 "특수활동비를 삭감하는 것은 경찰을 옥죄겠다는 것"이라며, 최근의 이재명 대표 1심 유죄와 장외집회 과정에서의 민노총과 경찰 사이의 충돌 등을 염두에 둔 듯 "감정적이고 분풀이식 삭감"이라고 질타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중 대표 격인 오세훈 서울특별시장도 민주당의 일방적인 '예산 칼질'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오세훈 시장은 "(민주당이) 차세대 원전 기술인 발전용 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비는 90% 삭감하고 검찰·경찰·감사원 등의 예산도 모조리 잘라버렸다"며 "반면 이재명식 지역화폐는 2조원을 신설했다. 이재명 대표를 위한 '맞춤형 예산농단'"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국회를 거야(巨野)의 입법독재의 장으로 만들어온 민주당이 이번에는 예산심의를 폭거의 장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예산농단의 망나니 칼춤을 거두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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