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행안위원장 달라" 틀물레질에 분열 고조…박광온 "의총서 결정"
입력 2023.06.08 00:00
수정 2023.06.08 00:00
정청래 "나 물러나면 다음 이재명" 이어
"박광온이 약속 못 지킨 것…난 피해자"
당 안팎선 "정청래, 이해가 안가는 행동"
원내대표단 "12일 의원들 뜻 모아 처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행안위원장' 요구가 당 분열로 이어질 조짐을 보인다. 자신의 행정안전위원장 선임이 '이재명 대표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진 당내 친명-비명 계파 갈등을 더 촉발시키고 있어서다.
특히 행안위원장 선임을 미룬 박광온 원내대표를 지속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놨던 정 최고위원의 주장으로 인해 당이 갈라질 것이란 우려까지 고조된다. 원내지도부는 오는 12일 의원총회를 열고 상임위원장 인선 기준을 최종 논의하기로 결정하면서 당내 분열을 막으려는 시도에 나섰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7일 페이스북에 '행안위가 긴급하게 다뤄야 할 일'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 글을 통해 "당장 집시법 개악 반대, 집시의 자유보장, 경찰국 폐지 문제, 선관위 독립성 사수,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 지자체 관건선거 개입 차단, 선관위 유권해석 그때 그때 다른 점 등, 누가 (행안위원장) 적임자인가"라고 적었다.
'행안위원장직 사수'를 내건 정 최고위원의 메시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앞서 정 최고위원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서는 내가 알기로 최단기적으로 행안위원장에 대한 당원들의 청원이 5만명을 돌파했다"며 "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명령을 당은 진중하게 생각하고 바로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정 최고위원의 행안위원장 내정을 촉구하는 청원은 3일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정 최고위원과 청원인의 주장은 1년 전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직과 행안위원장을 1년씩 맞교대하기로 한 만큼 정 의원이 행안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행안위원장을 맡았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후반기 과방위원장으로 선출됐으니, 정 최고위원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래 정 최고위원의 행안위원장 선임 건도 같은날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당내에서 중진들이 상임위원장을 돌려맡는 것을 두고 "기득권 나눠먹기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정 최고위원이 현재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 내부에서도 상임위원장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최고위원은 과방위원장직을 고수했고, 지금도 행안위원장직을 요구하면서 국회 관례를 깨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 최고위원의 요구가 현재 당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계파전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단 점이다. 시작은 정 최고위원이 행안위원장 요구의 핑계로 '이재명 지키기'를 내걸면서부터였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정청래가 물러나면 다음 타깃은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라며 "단순한 행안위원장 싸움이 아니다. 행안위원장 기필코 사수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정 최고위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1년 전 여야 합의에 따라 '행안위원장은 정청래'라 공식 발표했는데도 이를 민주당이 이행하지 않았다"며 "나는 원내지도부를 믿고 사임서도 냈다. 완전 뒤통수를 맞았다. 완전 속았다. 사임서를 내게 하고 그 후에 손발을 묶어놓고 때린 것 아닌가. 그 부분이 너무 괘씸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6일 KBS라디오에 나와서도 "우리 당에서 장관 출신, 원내대표 출신도 다 상임위원장을 했다. 관례는 먼저 다 깨졌다. 정청래가 관례를 깼다고 하는데 나는 관례가 없다"며 "내 행안위원장 문제는 박광온 원내대표가 약속을 못 지킨 것이다. 행안위원장은 정청래다, 대국민 발표를 했다. 그런데 의총에서 관철을 못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약속을 안 지킨 것이 아니라 박광온 원내대표가 대국민 약속을 못 이행한 것이다. 나는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를 욕하느냐"며 "민주당이 민주당을 반대하고 국민의힘을 찬성한 것도 황당하다"라고 강변했다.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발언에 당 안팎에서도 비판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5일 KBS라디오에서 "최고위원이 상임위원장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원내에 집중할 자리가 있고 당의 현안에 집중할 자리가 있는데 당의 현안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이 원내에 집중해야 하는 상임위원장까지 맡는 것은 힘들다"며 "정청래 의원의 저게 (행안위원장직 고수) 민주당을 늪에 빠지게 하는 거다. 이걸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정 의원의 발언으로 행안위원장은 이제 단순히 한 의원의 커리어가 아니라 계파 대리전으로 가게 됐다"며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독대를 청하든 의원들과 만나든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분란을 더 키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특히 당내 일각에선 정 최고위원의 주장이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간 갈등을 촉발할 수도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돈봉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쇄신을 내건 의원총회를 두 차례나 개최하면서 당내 다양한 목소리가 민주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바 있다. 두 차례의 의총에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던 만큼, 눌려 있던 비명계의 목소리가 박 원내대표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오후 긴급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고 상임위원장 인선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 주 월요일(1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 앞서 의원들의 중지를 모아 상임위원장 인선 기준을 정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내 여러 그룹에서 의견을 전달해왔고, 그 의견들을 공유하고 원내대표단들이 개인적으로 각자 생각하는 의견들을 제시해서 원내지도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논의를 했다"며 "아마 다음 주 월요일 오전 정도에 의원총회를 열어 당대표가 원내대표가 생각하는 상임위원장 선정기준에 대해서 의원들한테 보고하고 추인을 얻는 과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