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슬픔의 삼각형', 블랙 코미디의 새 바이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05.16 16:20
수정 2023.05.16 16:20

계급이 분명하게 나누어진 초호화 크루즈가 뒤집힐 때, 권력도 함께 뒤집힌다. 이 때 우리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까. '슬픔의 삼각형'은 다시 또 이뤄지는 권력의 재편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는다.


8명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됐지만 그들이 가진 돈과 권력 지위, 외모는 아무 소용이 없다. 물고기를 잡고, 요리를 하고 불을 피울 줄 아는 화장실 청소부 에비게일이 권력을 잡는다.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순 없다. 불만을 제기하는 순간, 굶어야 한다.


17일 개봉하는 '슬픔의 삼각형'은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 이들의 예측 불가 계급 전복 코미디로,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을 찌푸린 표정을 의미한다. 프롤로그에서 남성 모델 칼이 브랜드 오디션을 보러 간 현장에서 관계자는 "슬픔의 삼각형을 만들지 말라"라고 한다. 칼의 '슬픔의 삼각형'은 그렇게 잠깐 지시에 따라 미소와 사라진다.


한 방송인은 오디션장에 있는 남성들을 모아 발렌시아가와 H&M에 맞는 표정과 포즈를 요구한다. 슬픔의 삼각형이 고가, 저가 브랜드에 따라 또 한 번 만들어진다.


영화는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잘나가는 모델 야야와 그의 남자친구 칼의 이야기다. 칼은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버는 모델이지만 항상 밥값을 내야 하는 상황이 불만스럽다. 돈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야야에게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누는 관계가 싫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그려진다.


2부는 야야가 인플루언서로 협찬을 받고 남자친구 칼과 호화 크루즈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크루즈에는 자신의 부와 지식을 뽐내기 바쁜 손님들과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승무원들, 그리고 엔진실, 화장실 등 크루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파도가 높게 치는 날씨 속 저녁 만찬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출렁이는 배 안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으며 손님들은 구토를 남발하고, 승무원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다시 또 음식을 나른다. 그리고 청소부들이 손님들의 구토를 치우는 장면이 프레임에 모두 담겼다. 속이 좋지 않음에도 계속 음식을 먹고 결국 뱉어내는 승객들의 허례허식을 신랄하고 기괴하게 비꼰다.


3부는 크루즈가 전복되면서 살아남은 8명의 승객과 승무원의 생존기가 담겼다. 생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에비게일은 물에서 잡아 직접 요리한 음식을 나누어주며 "여기선 내가 캡틴"이라고 선언한다. 이제 7명은 에비게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젊고 잘생긴 모델 칼은 에비게일의 선택을 받아 밤마다 동침을 한다. 여자친구 야야가 싫어하지만, 작은 사회가 된 무인도 내 새 권력자를 칼은 무시할 수가 없다.


영화는 권력 관계를 지독한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인종, 젠더, 돈, 명예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질 않는다. 권력 관계가 재편되는 순간을 넘어 충격적인 결말까지 블랙코미디 장르에 충실하게 그려졌다. 147분으로 러닝타임이지만 신랄하고 탁월한 대사들의 향연들에 지루할 틈이 없다. 17일 개봉.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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