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안철수 될 때 최재형은 윤석열 됐다
입력 2021.07.17 08:12
수정 2021.07.16 08:13
제1야당 밖에서 외연 확장 노린 안철수의 전철 밟는 윤석열
최재형은 단순명쾌 선택으로 윤석열의 전광석화 방식 도입
윤석열이 안철수가 실패한 길을 가려고 머뭇거릴 때 최재형이 ‘과거’ 윤석열 방식으로 기습했다.
감사원장 사퇴 17일 만이다. 이 2주일 반 동안 최재형은 자신의 미래 행로를 분명하게 말해 왔다. 의문과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이때 이미 그의 제1야당 국민의힘 입당은 예고된 것이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사퇴 후 117일 동안 그가 앞으로 갈 길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은 채 밖에서, 주로 남의 입을 통해 자기 생각과 방향을 전해 왔다. 지난달 29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이후 보름 이상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만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생각인 듯하다.
그는 추호도 그럴 계획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안철수의 전철(前轍)을 밟고 있다. 그것은 불과 3개월여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야권 단일 후보를 뽑을 때 안철수가 택한 길, 바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은 패착(敗着)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그는 경선 시작 전에 국민의힘에 바로 들어갔으면 야권 단일 후보가 됐고, 그랬다면 오세훈보다 더 압도적 표차로 서울시장에 당선됐을 것이다. 안철수는 자존심 때문인지 이 패착을 보선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어쩌면 지금도 그때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는 ‘영원한 출마자’요, 현실 정치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용하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하는 정치인 아닌 정치인이란 소리를 듣는다.
안철수는 왜 한사코 국민의힘에 들어가길 마다했는가? 다른 여러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인사들이 그 당엔 많다. 그러나 표 계산에 있어서, 국민의힘 후보가 되면 ‘태극기’ 후보가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말해 꼴통 보수, 영남과 박근혜, 이명박 지지자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걸 그는 원하지 않았다. 안철수 하면, 문재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중도 보수 이미지인데, 왜 그 고리타분한 동네로 자진해 들어가서 표를 깎아 먹을 필요가 있느냐... 그는 입당 반대 이유를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것은 그의 오판이었다는 게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였고, 4.7 보선 결과였다. 대다수 일반 국민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국민의힘을 냄새나는 꼴통 보수로 도외시하지도 않았고, 그 당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더 중도적이고 개혁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정권 심판이 급했다. 그 심판을 위해 제1야당 간판을 먼저 쳐다봤으며 인물이 또 그 심판 정서에 부합해서 압도적으로 밀게 됐다.
윤석열 주위에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국민의힘에 섣불리 가지 말 것을 주문하는 쪽인 것으로 보인다. 나름대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들 이해관계와 ‘사감(私憾)’에 따라 그렇게 유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은 이쯤에서 이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숙고해서 고독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밖’에 머문다고 해서 외연이 확장된다는 건 근거 없는, 낭만적이고 허무맹랑한 가설이라는 게 안철수의 실패 사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될수록 오래 버티다 막판(11월)에 스릴 넘치는 ‘단일화 쇼’에서 승리, 야권 최종 후보가 된다는 건 환상일 수도 있다. 안철수가 바로 그 환상의 늪에서 익사하지 않았는가?
잘못하면 ‘밖’에 갇혀서 벌어 놓은 지지율만 까먹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이 그의 그런 행보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
윤석열은 ‘밖’에서 보수는 자동으로 먹고, 진보 중에서도 반문으로 돌아선 이들을 잡겠다는 전략인데, 출마 선언문이나 요즘 행보로 보면 국민의힘보다 더 보수 쪽이다. 막말로 말하면 태극기가 따로 없다. 만나서 같이 분노하는 사람들 면면도 극렬 보수우파에 가깝다.
지금 국민의힘은 어떤가? 대한민국 보수 야당사에 유례가 드문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집권당과 대등하거나 앞선 인기도를 보인다. 꼴통 이미지는 이미 온데간데 없다. 나라 살림(곳간)을 걱정하며 약자와 청년 계층을 위한 정책에 대해 고민한다. 불모지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인다.
이게 다 정권교체 열망 때문이다. 그래서 미워도 곱게 보인다. 그다음은 인물들이 바뀌면서 기득권과 꼰대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실제로 이들은 옳은 소리를 많이 하고 집권당인 민주당이 오히려 그 옛날 보수당 색깔을 띠고 있다. 내로남불과 기득권에 젖고 편 가르기에만 열을 올리는...
그렇지 않아도 공격받을 일만 한가득한 윤석열이 예전과는 판이해진 이런 제1야당 우산으로 들어가길 일부러 피하고 밖에서 외연을 확장한다는 건 현실을 모르는 계산이다. 보수당원이 된다고 해서 잃을 표도, 보수당원이 아니라고 해서 얻을 표도 많지 않다.
더 많은 ‘정권교체 표’는 중도와 젊은 층에서 주로 나올 것인데, 이들이 ‘무소속 윤석열’을 선호한다는 가설의 근거는 무엇인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또 새로 지지할 사람들은 그의 뚝심, 소신, 용기에 우선 끌린 유권자들이다. 정권교체를 실현할 재목으로 봐서다. 그런 인물이 안철수가 간 길을 가려 하니 고개를 가로 젓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의 미래 경쟁자 ‘모범생’ 최재형이 전혀 그의 이미지가 아닌 것으로 보았던, 전광석화의 결정을 했다. 그것은 바로 윤석열이 검찰총장 사퇴 무렵에 갖고 있던 매력이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