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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의 마스크 구매 체험기] 56년생 박능후 장관은?…"7시간만에 간신히 두장"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입력 2020.03.10 04:00 수정 2020.03.10 07:22

공적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 첫날, 이른 아침부터 줄서기 지옥 여전

약국 입고 시간 제각각에 시민들 혼란…5부제 착각해 허탈하게 돌아가는 노인들도


공적마스크 5부제 첫 날인 9일 오전, 수도권 한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데일리안 공적마스크 5부제 첫 날인 9일 오전, 수도권 한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데일리안

지난 9일 오전 8시. 이미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해 둔 기자는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 곧바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외투를 걸치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데까지 약 1분 30초. 가장 가까운 동네 약국 앞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벌써 내 앞에는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짜증 섞인 표정의 사람들 뒤로 몸을 바짝 붙이고 있자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부쩍 포근해진 날씨지만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엔 화창한 봄날은 없었다.


약국 문에는 '공적 마스크 입고되면 바로 판매 시작합니다. 입고 시간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공지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공적 마스크 현재 품절'이라는 안내문도 보였다. 하루에 평균 100장 정도 입고되기 때문에 입고됨과 동시에 10~20분 안에 마스크가 소진된다고 적힌 종이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해져 있었다.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한 약국에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데일리안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한 약국에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데일리안

8시 30분. 약국 문이 열리고 약국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행렬에 동참했다. 팽팽한 경쟁심에 분위기가 싸늘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살짝 피곤해 보이는 약사 선생님이 "아직 마스크가 입고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달라"고 말했다. 마스크가 언제, 몇시에 들어오냐는 사람들의 원성에 "오전 중이나 점심시간, 혹은 오후 1시 넘어 들어올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 길로 약국을 나서 50미터 거리쯤 있는 다른 약국으로 향했다. 항상 친절했던 단골 약국의 약사 선생님은 "마스크"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주택가에서 벗어나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내 약국으로 가봤다.


동네 주변을 몇 km나 유랑하며 약국이 보이는 족족 빼꼼히 문을 밀고 들어가 봤지만 "아직" 이라는 답만 듣기 일쑤였다. 이렇게 포기하려는 순간 10번째로 들른 한 약국에서 37이라고 쓰여있는 번호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실 번호표를 받았다고 무조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 마스크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염없이 줄을 서 기다리거나, 근처에서 틈틈히 '사주경계'를 해야만 한다. 번호표 있는 사람이라고 마냥 기다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동동거려 봐야 달랑 두 장인데...짜증이 밀려왔다. 작년 봄 선물 받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먼지가 쌓이도록 뜯지도 않았는데..."라는 남편의 말에 이사할 때 아무 생각없이 버리고 온 내가 원망 스러웠다.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지만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데일리안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지만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데일리안

번호표를 받아든 약국에서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들어올 확률이 크다"는 귀띔을 듣고 오후에 다시 오기로 했다. 근처 분식점에서 김밥 한 줄을 급하게 해치우고 다시 약국으로 향했다. 아뿔싸. 점심시간을 이용해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직장인들이 약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줄을 선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한 약국 내에선 "마스크 입고가 안 됐어요"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손녀 손을 잡고 나온 할아버지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기를 업고 온 앳된 얼굴의 엄마도 종종거리며 약국 문을 나섰다.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약국에 구매 대기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데일리안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약국에 구매 대기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데일리안

"그래, 시간차를 두고 가보자!"


한 시간마다 약국에 가보면 출생연도 끝자리 '6'인 내가 이 많은 약국에서 마스크 하나 못 구하겠느냐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한 시간 격차로 방문한 약국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적 마스크 2장을 간신히 손에 쥘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집에서 나온 지 7시간이 다 돼 가는 시각이다.


그나마도 오전에 미리 번호표를 받아둔 덕분이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나,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허탈했다. 그래도 마스크를 구한 기자와 달리 판매 방법을 숙지 못해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잖았다는 것에 못 된 위안을 삼아봤다.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시민이 제출한 신분증을 확인 중인 약사의 모습. ⓒ데일리안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시민이 제출한 신분증을 확인 중인 약사의 모습. ⓒ데일리안

TV 뉴스 속 정부 당국자는 월요일에는 출생연도 끝자리가 1·6년, 화요일에는 2·7년, 수요일에는 3·8년, 목요일에는 4·9년, 금요일에는 5·0년인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다고 했지만, 줄서기 현장에선 체감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대한민국 출생연도 86년생 기자가 맞은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은 약국을 전전하는 사이 저물어갔다. 소중한 하루가 보람 없이 순삭되는 기분이랄까. 다행인지 시행 첫날치고는 차분했던 시민들의 모습들은 기억에 남는다. 정부 대책도 우리 성숙한 국민들처럼 차분하고 침착하게 세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1956년생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장관님, 월요일 줄서야 합니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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