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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진 “문재인 씨” 영상삭제, 뭐가 문제인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
입력 2020.02.08 08:20 수정 2020.02.08 06:04

문재인을 문재인이라고, 또는 문재인 씨라고 부르는 게 뭐가 문제

연예인이 대통령 이름 언급한 죄로 핍박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어

ⓒtvN D 웹 예능 ‘괴릴라 데이트’ 화면캡처 ⓒtvN D 웹 예능 ‘괴릴라 데이트’ 화면캡처

이용진이 약 1년 전 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결국 해당 영상이 삭제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부른 죄 때문이다. 유튜브로 방송된 예능 ‘괴릴라 데이트’ MC딩동 편에서 MC딩동이 "사전 MC계에서 유일무이하다. 사전 MC계 대통령"라고 소개되자 "대통령? 문재인 씨 이야기하시는 거예요?"라고 했다.


이 영상이 최근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부르는 개그맨 이용진'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돼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논란이다. 문재인을 문재인이라고, 또는 문재인 씨라고 부르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게시글 제목에는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부르는 게 논란이 될 만한 특수한 행위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책이고 문재인은 그 직책을 맡은 사람 이름이니, 대통령이라고 직책을 부르든 이름을 부르든 상관이 없다. 직책과 이름은 별개의 사안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일부 누리꾼들은 악플을 퍼부었다.


‘또라이가 여기저기 판치네’

‘대통령이 본인 친구도 아니고 참 어이가 없네. 내가 본인 부모님한테 어린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을 할런지’

‘야 이놈아 너의 친구 아버지한테 친구아버지 00씨야 그러냐’


이런 댓글들인데 여기서 부모,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봉건왕조 또는 유신시대와 같은 가부장적 통치구조에서나 나올 법한 사고방식이다. 군사부일체라며 정치지도자를 어버이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선 이름을 함부로 못 부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어버이가 아니라 공복이다. 국가지도자로서 존중은 해야 하지만, 주권자가 이름도 못 부를 정도의 신성불가침한 존재는 아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름에 민감해진 것에 사연이 있기는 하다. 원래 노무현 때는 대통령 이름을 막 불렀다. 유신 때 대통령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가 민주화 이후 점점 완화됐고, 노무현 때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그 전까지의 대통령들에 비해 노무현만 유독 희화화되는 것 같아서 불만이었지만 어쨌든 참았다. 그런데 한나라당 측에서 노무현을 개구리라고 하는 등 막말을 일삼고, 평검사들이 대통령을 들이받는 등 기득권층이 노무현을 과도하게 무시하는 듯하자 더욱 불만이 쌓였다. 당시는 ‘노무혀니’ 같은 표현이 일상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존칭을 잊어버린 듯하던 한나라당은,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엔 존칭, 존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나도 노무현 시절을 상기하면 ‘노무현 때’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명박 때’라는 표현은 영 어색하다. 그때부터 꼬박꼬박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당시를 상기할 때도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고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금의 불경한 표현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정부’라고 항상 공식 명칭을 쓰게 됐고, 이것이 확대돼 모든 주요 지도자들에게 언제나 공식 명칭을 쓰게 됐다. 노무현 때는 그냥 편하게 다 이름으로만 불렀었는데 말이다. 이 당시부터 새롭게 생겨난 방송 관습이 대통령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행태다. 노무현 때는 그런 존댓말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던 새누리당 계열 세력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언제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강조했느냐는 듯 문재인을 우습게 표현하는 일이 잦자, 문재인 지지자들이 폭발한 것이다. 노무현 때부터 10년 이상 묵은 울화다. 그래서 ‘문재인 씨’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아무리 10여 년 간의 사연이 있었어도, 연예인이 대통령 이름 언급한 죄로 핍박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다. 물론 이용진이 문재인을 조롱할 정치적 의도로 일부러 그랬다면, 또는 정치세력이 대선에 불복하면서 대통령 호칭을 거부한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번 방송 내용은 그저 웃자고 말장난을 한 정도로 보인다. 연예인 말장난도 관용적으로 봐주지 못한다면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퇴행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대통령도 코미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용진 공격은 과했고, 삭제된 영상은 복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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