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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업은행의 진짜 주인을 찾아서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2.10 07:00 수정 2020.02.09 21:25

안팎으로 상처 남긴 낙하산 신임 행장 갈등 속 노조만 과실

본업인 中企 지원은 난기류…국책 기관 존재 이유 돌아봐야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본점에서 취임식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본점에서 취임식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IBK기업은행은 유난히 사공이 많은 배다. 우리나라 금융권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불가능할 정도로 남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합체다. 우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설립된 국책 금융 기관이다. 공식적인 최대주주도 정부다. 기업은행의 지분 절반 이상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다. 정권이 어디로 넘어가든 정책 금융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동시에 기업은행이 주식 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이란 점은 묘한 대목이다. 국가가 보유한 조직인 기업은행의 주식을 누구나 사고 팔 수 있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분 40% 가량을 들고 있는 일반 주주들도 정부 다음가는 기업은행의 주인인 셈이다.


기업은행을 하나의 회사로 바라보면 근로자들 또한 소유권을 주장할 만하다. 그들에겐 삶의 터전인 만큼, 경영 상황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다른 어떤 은행들보다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이유다.


최근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이런 기업은행의 사공들을 새삼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청와대는 자신들의 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를 행장에 선임하며 기업은행의 최대주주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노조도 한 달 여 동안이나 윤 행장의 출근길을 봉쇄하며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뽐냈다.


갈등이 일단락된 지금, 노조만이 실리를 챙긴 형국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에 대한 무력시위를 거두는 대가로 희망퇴직과 정규직 전환 직원 처우, 임금 체계 개편, 노조추천이사제, 근로자 휴가 확대 등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사실상 노조가 제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서 양보를 받아 낸 것이다.


반면 청와대는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노조를 달래기 위해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지만, 끝내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강경 입장을 전하고 나서야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공식적인 인사권을 갖고도 노조의 눈치를 봐야 했던 모양새다.


부광우 데일리안 시장경제부 기자.ⓒ데일리안 부광우 데일리안 시장경제부 기자.ⓒ데일리안

기업은행 투자자들도 유탄을 맞았다. 윤 행장을 둘러싸고 내부 다툼이 극심했던 지난 1월 한 달 동안 기업은행의 주가는 1만1800원에서 1만750원으로 8.9%(1050원)나 빠졌다. 이렇게 증발한 기업은행의 시가총액만 6000억원이 넘는다.


결국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주체는 기업은행 그 자체다. 행장 인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던 지난해 말부터 기업은행의 본업인 중소기업 대출에는 제동이 걸렸다. 반면 부실 대출 규모는 시나브로 커지더니 사상 최대까지 몸집을 불렸다.


최근의 소란을 지켜보며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기업은행의 진짜 주인이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투표로 행정부의 수반을 뽑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책 기관은 결국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엉뚱한 사공들이 기업은행을 산으로 끌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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