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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왜 젊은 세대가 뜨겁게 반응하나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20.01.06 08:20 수정 2020.01.06 08:09

<하재근의 이슈분석> 자신의 삶이 뒷받침된 묵직한 울림 있어

<하재근의 이슈분석> 자신의 삶이 뒷받침된 묵직한 울림 있어

양준일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리는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인 '양준일의 선물'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양준일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리는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인 '양준일의 선물'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주말, 양준일이 ‘리베카’로 MBC 쇼음악중심 무대에 올랐다. 1991년에 데뷔한 가수가 그때의 노래로 2020년 주말 쇼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최신 아이돌들이 나오는 바로 그 무대에 말이다.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양준일이 노래를 할 때 객석에선 구호 떼창이 터져나왔다. 정해진 구호를 노래에 맞춰 외치는 건 요즘 아이돌 팬덤 문화다. 주말 쇼프로그램에서 구호 떼창이 나왔다는 건 양준일 팬덤에 젊은 세대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꼰대’를 경원시하는 젊은 세대가 왜 양준일에게는 호응하는 걸까?

양준일이 요즘 보기 드문 새로운 콘텐츠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양준일의 언행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반향을 일으킨 양준일의 첫 번째 말은 ‘슈가맨’ 출연 당시에 나온 것이었다.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현재의 양준일이 20대의 양준일에게 한 말이다. 여기에 20대가 반응했다. 세상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준일이 마치 자기자신에게 조언을 건넨 것처럼 받아들였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잘 될 거라는 다독임이다. 여기에 감동 받고 눈물까지 흘렸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이 말을 담은 이미지가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그 당시는 양준일이 이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가 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슈가맨’ 당시에 양준일은 잠시 휴가를 얻어 특별출연을 한 것뿐이었고, 녹화 후 바로 식당 서빙으로 복귀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이제 인기 스타가 됐다고 여길 상황이 아니었다.

양준일이 ‘이제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는 현실은 바로, 양준일이 서빙을 하면서 살고 있는 그 상황을 일컫는 말이었다. 거기에 대해 좌절, 분노,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 나타난다. 한때 잘 살았었고 스타도 꿈꿨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중에 양준일은 이 말이 화제가 된 것에 대해 "모든 게 완벽하게 이뤄질 거라고 말했던 건, 이렇게(가수복귀) 될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건 아니었다"라며 "진짜 전하고 싶었던 건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원래 원했던 게 'K팝 스타' 이런 거였다면, 그런 걸 내려놓으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뉴스룸’에서 손석희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자, “내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면서 살았다”고 했다. 과거,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행복하기 전에 불행을 먼저 버려야 한다”며 회한, 울분, 원망의 쓰레기들을 버리고 공간을 만들어야 행복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슈가맨’ 출연 당시 양준일은 “전 계획을 안 세워요. 그냥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계획을 세우며 꿈, 헛된 기대,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내 앞에 닥친 순간에 집중하며 산다는 뜻이다.

양준일처럼 좌절을 겪은 사람 중엔 우울증에 빠지거나 분노원망에 휩싸여 자학하며 지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양준일은 자기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통해 의연한 태도를 갖추게 됐다. 소박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이러니까 자신의 실패에 대해, 그리고 서빙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TV에서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꿈은 꺾였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꿈이 꺾여나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기회가 사라져가는 저성장 시대는 필연적으로 젊은이들의 꿈을 꺾는다. 좌절, 분노, 원망하는 사람들을 양산한다. 이때 양준일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그런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게 그저 말뿐이라면 울림이 약했을 수도 있지만, 양준일의 말엔 그 자신의 삶이 뒷받침되어 묵직한 울림이 있다. 팬미팅 때 양준일은 미래의 자신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미래의 나에게
아직도 니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니가 계속 알았으면 좋겠어.
이 순간 그 소중함을 놓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지 말고, 과거도 바라보지 말고,
이 순간을 바라보면서,
니가 지금 2019년 말 오늘 느끼는 이 감사함을 언제나 가지고 가면 좋겠어.‘

마치 현재의 20대에게 건네는 말 같다. 이러니까 젊은 세대가 양준일에게 반응한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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