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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의사가 유튜브 보며 당신 배를 가른다면?

박영국 기자
입력 2019.12.24 12:03 수정 2019.12.24 17:10

현대차가 어쩌다 '유튜브를 보며 만드는 차'가 됐나

현대차가 어쩌다 '유튜브를 보며 만드는 차'가 됐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현대자동차

‘유튜브 보며 만드는 차.’ 사람들은 요즘 현대자동차를 이렇게 부른다. 사측의 근무시간 중 와이파이 차단 조치를 놓고 노사가 갈등을 빚으며 이런 오명이 붙었다.

그동안 품질과 안전을 끌어올리기 위한 현대차의 기술력 제고와 투자, 홍보 등의 노력들은 모두 이 한 마디에 묻혀 버렸다.

노조는 사측의 근무중 와이파이 차단이 ‘노사협의회 노사합의 위반’이라며 반발했지만 소비자들은 애초에 그게 노사합의 사안이었다는 사실을 더 놀랍게 받아들인다. 노조가 특근을 거부하며 반발하자 사측이 굴복해 근무시간에도 계속해서 와이파이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사실에도 어이없어하고 있다.

결국 사측은 다시 24일부터 근무중 와이파이 차단을 강행했다. 더 이상 회사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되고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무 중 와이파이 사용이 단지 생산성 저하를 불러오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처럼 파장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품질과 안전에 대한 우려다.

고가의 자산이자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자동차가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는 작업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데 무신경하게 넘어갈 도리가 없다.

물론 모든 근로자가 그럴 리 없겠지만, 노조가 근무시간에 와이파이 사용을 강하게 어필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그런 의심을 자초하는 셈이다.

자동차에 있어 안전 문제는 특히나 중요하다.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의 조립이 잘못돼 오작동하면 조금 불편한 정도겠지만 자동차의 조립이 잘못돼 오작동하면 사용자와 가족, 심지어 전혀 무관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 근로자들의 근무 중 와이파이 사용이 ‘의사가 유튜브를 보며 수술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 23일 노사 실무협의에서 근무 중 와이파이 차단에 대해 끝내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의견불일치’로 협의를 마감했다. 현 노조 집행부의 임기가 오는 31일까지라 사실상 공은 내달 1일 출범하는 차기 집행부로 넘어갔다.

이달 초 조합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상수 신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이끄는 새 집행부는 간만에 등장한 ‘실리·중도 성향’ 집행부로 화제가 됐다. 강성 일변도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에서 사측과 대화로 각종 사안들을 풀어나가며 조합원들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런 기대를 받는 새 집행부가 출범 후 가장 먼저 매달리는 일이 ‘근무 중 와이파이 사용 부활’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들여다보는 게 불합리한 일이라는 것을 합리적인 새 집행부라면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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