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사진 속 인물 김학의 맞아도 처벌 못한다니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11.28 08:20 수정 2019.11.28 08:01

<하재근의 이슈분석> 재판부의 지적에 국민은 더욱 검찰을 지탄하게 될 것

<하재근의 이슈분석> 재판부의 지적에 국민은 더욱 검찰을 지탄하게 될 것

건설업자 윤중천 씨 등으로부터 1억 6천여만 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5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건설업자 윤중천 씨 등으로부터 1억 6천여만 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5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오랫동안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주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무죄이고, 윤중천 씨는 직전 재판에서 일부 유죄가 나왔다.

재판부는 화제가 됐던 사진과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이 2006년 10월부터 2007년까지 A씨와 지속해서 성관계나 성적 접촉을 가질 기회를 윤중천 씨에게 받은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연루됐다고 알려진 별장 성접대 사건은 미궁 속에 묻히게 됐다.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선 증거가 확실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 또는 댓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뇌물로 볼 수도 있는 돈의 액수가 줄어들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여러 건의 돈을 받은 혐의가 있지만 각각의 액수가 1억원 미만이 됐다. 뇌물 3000만원에서 1억원 미만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공소시효가 다 지났다.

윤중천 씨도 사기, 알선수재, 무고 등에 대해선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정작 핵심 혐의였던 강간치상에 대해선 무죄가 나왔다. 역시 공소시효 때문이다. 성폭행 혐의 자체로는 공소시효 10년이 다 지나 검찰은 사후에 발생한 상해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2013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는데 그게 성폭행 때문이라며 강간치상죄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성폭행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강간죄 공소시효 10년 도과로 성범죄 혐의에 대해선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검찰은 두 사건 모두 항소한다고 한다. 항소심에 대비해 검찰은 공소시효를 늘리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받은 돈의 직무 관련성, 댓가성 등을 증명해 개별 건의 액수 1억 원을 넘기면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늘어난다. 윤 씨 사건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성범죄에서 비롯됐다는 걸 입증하는 순간 공소시효가 역시 늘어날 수 있다.

이제 와서 공소시효 늘이기에 나서는 건 만시지탄이다. 애초에 잘 했어야 했다.

2013년에 별장 성접대 의혹이 떠들썩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는데 검찰이 체포영장을 반려했다. 경찰이 특수강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다. 2014년에 여성의 고소로 두 번째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검찰은 김 전 차관을 소환 한 번 하지 않고 불기소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증거불충분, 공소시효 문제로 무죄 판결한 재판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에 나선다고 하는 것이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오죽했으면 윤 씨 재판의 재판부가 ‘2013년 검찰이 적절하게 형사권을 행사했다면 그 때 이미 피고인이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지적했겠는가. 뒤늦게 공소시효를 늘릴 것이 아니라 공소시효가 살아있을 때 수사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뒤늦은 기소도 통탄할 일인데, 김 전 차관의 경우 뇌물로만 기소되고 성범죄 혐의는 빠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국 여성의 전화는 “엄연히 ‘사람’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폭력 사건을 ‘액수 불상’의 ‘뇌물’죄로 둔갑시켜 기소”했다며 반쪽 기소라고 주장했다. 성범죄 의혹 부분이 충분히 밝혀진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검찰 입장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도 불분명하고 공소시효 문제도 있기 때문에 수사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럴수록 왜 과거에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커진다.

이 사건은 검찰이 검찰 관련된 사건을 얼마나 대담하게 뭉갤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처럼 보인다.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언론에서도 연일 문제를 제기했지만 검찰은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자체도 미궁에 빠졌지만, 김 전 차관 사건이 덮인 과정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다른 사람들의 의혹에 대해선 추상같이 파헤치면서 정작 자신들이 연루된 의혹은 대충 덮는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뻔히 김 전 차관으로 보이는 영상이 나왔는데도, 누군지 모르겠다는 과거 검찰의 입장이 알려지며 그런 의심이 더 커졌다. 공소시효를 다 넘겨버렸다는 재판부의 지적에 국민은 더욱 검찰을 지탄하게 될 것이다. 이러니 검찰불신이 커진다. 국민이 검찰을 신뢰할 날은 올 수 있는 걸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